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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Oct 26. 2023

그 씨가 그 씨 아니었어!

귀촌이야기

길동이 배변 시간, 마당으로 나와 반려견 길동이를 바라보며, ‘너를 위해 논둑을 걸을까? 아니면 난 텃밭에서 풀을 뽑고 넌 집 주위를 돌아다닐래?’라며 눈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이렇게 향긋한 향이 난다고? 어디 꽃을 피운 곳이 있나?’라며 향긋한 향하고 고소한 향에 이끌려 길동이와 길을 나섰다.

킁킁킁거리며 걷고 또 걸어 진하게 풍기는 고소한 향에 눈을 돌렸다.

‘탁탁탁 쫙쫙’ 농로 삼거리 할머니가 깨를 털고 계신다.

“안녕하세요. 고소한 향 따라 여기까지 왔어요.”

“네, 안녕하시오. 산책 나왔는갑소.”

“깨에서 향긋한 꽃냄새도 나나요?”

“글씨 고소한 냄새는 나제, 멀리선 그럴 수도 있을랑가? 나도 모르것소. 어디 꽃 키우는디 없을 것인디. 좌우간 좋은 남새 나면 좋제. 쪽파는 다 심었다요?”

“벌써 다 심었지요.”

“마늘도 심고?”

“네, 퇴비 퍼다 섞어 심었어요.”

“팥 심을랑가?”

팥? 지금 이 계절에? 농사 무식쟁이인 내가 알기로도 완두콩은 심는 걸로 알지만, 팥을 지금 심는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어찌 되었건 우리 걱정에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려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네 심어볼까요.”

“지금 심기면 봄에 먹응께. 내가 이따 갖다줄게잉. 줘도 안 심기면 주기 싫은디, 자네들은 잘심기고 잘먹응께 주는고여.”

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길동이를 불러 집으로 갔다.


텃밭을 둘러보며 ‘그나저나 어디에 심지?’ 이미 할머니가 주신 쪽파로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쪽 땅까지 쪽파밭이 되어있었다. 그럼 감나무 옆 비틀진 경사를 개간해야 한다는 얘긴데. 나무 막대기로 덮여있던 낙엽을 뒤적거리고 땅을 파보았다. 흙보다 돌이 많다. 그리고 할머님이 계신 쪽을 바라봤다. 그새 깨를 다 털고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하고 집으로 걸어가고 계신다.


길동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와 고민에 빠졌다.

심었다고 뻥 칠 것이냐? 아니면 저 비탈진 곳을 개간할 것이냐?     


잠시 후 밖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동생 두부가 퇴근하고 돌아온 모양이다.

“두부야! 저 감나무 옆.”이라며 뛰쳐나가다 입을 닫았다.

“오셨어요?” 하며 바라본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푸른색 망을 두부에게 건네고, 두부는 황망한 미소를 띠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할머니가 파씨를 가져오셨어.” 그때까지도 몰랐다.

“벌써 가져오셨어요. 저희가 가도 될 건데. 잠시만 기다리세요.”하고 집에 들어가 아이들과 만들어 온 피칸 쿠키를 한 봉지 드렸다.

“멀 올 때마다 이런 걸 준당가. 난 줄 것도 없는디. 고맙게 받것소.”하고 돌아가신다.

두부와 난 유유히 쿠키를 들고 지팡이를 집고 돌아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약속이라도 한 듯 한숨을 쉬었다.


“언니 어디에 심어?”

“잠깐 둘러봤는데, 노랑집 아저씨 말대로 잔디를 뜯어내고 개간을 하던, 감나무 옆을 정리해야겠어! 회사에 가져간 마늘 모종은?”

“땅이 너무 단단해서 애먹겠던데.”

그렇게 집에 들어온 우리는 포장해 온 짜장과 짬뽕 그리고 탕수육을 먹으며 고민에 빠졌다.

“이러다 논도 빌려준다고 하겠다. 내년엔 나락 베고 있는 거 아니야! 어쩌지?”   

  

다음날, 비장한 각오로 옷을 갈아입고 감나무 옆 비탈진 돌밭으로 갔다. 낙엽을 주워 담고, 풀을 메고, 칡뿌리처럼 자라난 풀뿌리를 파내다 아예 주저앉았다. 날씨도 쌀쌀한데 모기들은 아직도 내 주위를 돌아다닌다. 이젠 돌을 파내고, 또 파내고, 돌을 쌓고, 올리고 이러다 탑을 쌓을 지경이다. 네 시간을 일했건만 겨우 한 평 남짓.

‘요만큼만 심고 나머진 죽었다고 할까?’라며 바지에 묻은 툭툭 털어내고 시원한 냉커피를 한잔 마시러 들어갔다.


그리고 동생에게 전화했다.

“두부야? 팥씨 어디 있어?”

“마늘 종자 있던데. 없어?”

“없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 네가 가져간 거 아니야?”

“아니야. 할머니가 가져온 건 마늘종자 꾸러미보다 작은데.”

“다시 찾아볼게.”

“그런데 언니 뭐 해?”

“개간.”

“왜? 주말에 하자. 언니 시간 없어 빨리 씻어. 저녁 약속. 문자 못 봤어?”

“못 봤는데. 잠시만. 갑자기?”

“언니가 전화를 안 받아서 그렇지.”


다시 밖으로 나가 팥씨를 찾아봤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우리 집에 새로 생긴 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지만, 쪽파 종자 같다. 그럼 이게 그건가? 설마 쪽파를 또 줬겠어?

이렇게 생긴 것에서 콩도 나와?

쪽파 아니야?

일단 동생이 돌아오면 물어보기로 하고 저녁 약속을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동생이 돌아오고

“언니 찾았어?”

“저 쪽파 종자가 팥씨야?”

동생이 배를 잡고 죽겠다는 듯이 웃는다.

“언니 사투리 때문에 팥씨로 잘 못 들은 거야. 지금 팥을 어떻게 심어?”

“그래서 나도 이상했다고.”

난 오늘 무엇을 한 것이지?


역시 아직 이 산천을 이해하려면 멀었군.

다음엔 확실하게 물어봐야지.

틈나는 대로 심은 쪽파
문제의 파씨

https://brunch.co.kr/@ginayjchang/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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