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이 배변 시간, 마당으로 나와 반려견 길동이를 바라보며, ‘너를 위해 논둑을 걸을까? 아니면 난 텃밭에서 풀을 뽑고 넌 집 주위를 돌아다닐래?’라며 눈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이렇게 향긋한 향이 난다고? 어디 꽃을 피운 곳이 있나?’라며 향긋한 향하고 고소한 향에 이끌려 길동이와 길을 나섰다.
킁킁킁거리며 걷고 또 걸어 진하게 풍기는 고소한 향에 눈을 돌렸다.
‘탁탁탁 쫙쫙’ 농로 삼거리 할머니가 깨를 털고 계신다.
“안녕하세요. 고소한 향 따라 여기까지 왔어요.”
“네, 안녕하시오. 산책 나왔는갑소.”
“깨에서 향긋한 꽃냄새도 나나요?”
“글씨 고소한 냄새는 나제, 멀리선 그럴 수도 있을랑가? 나도 모르것소. 어디 꽃 키우는디 없을 것인디. 좌우간 좋은 남새 나면 좋제. 쪽파는 다 심었다요?”
“벌써 다 심었지요.”
“마늘도 심고?”
“네, 퇴비 퍼다 섞어 심었어요.”
“팥 심을랑가?”
팥? 지금 이 계절에? 농사 무식쟁이인 내가 알기로도 완두콩은 심는 걸로 알지만, 팥을 지금 심는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어찌 되었건 우리 걱정에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려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네 심어볼까요.”
“지금 심기면 봄에 먹응께. 내가 이따 갖다줄게잉. 줘도 안 심기면 주기 싫은디, 자네들은 잘심기고 잘먹응께 주는고여.”
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길동이를 불러 집으로 갔다.
텃밭을 둘러보며 ‘그나저나 어디에 심지?’ 이미 할머니가 주신 쪽파로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쪽 땅까지 쪽파밭이 되어있었다. 그럼 감나무 옆 비틀진 경사를 개간해야 한다는 얘긴데. 나무 막대기로 덮여있던 낙엽을 뒤적거리고 땅을 파보았다. 흙보다 돌이 많다. 그리고 할머님이 계신 쪽을 바라봤다. 그새 깨를 다 털고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하고 집으로 걸어가고 계신다.
길동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와 고민에 빠졌다.
심었다고 뻥 칠 것이냐? 아니면 저 비탈진 곳을 개간할 것이냐?
잠시 후 밖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동생 두부가 퇴근하고 돌아온 모양이다.
“두부야! 저 감나무 옆.”이라며 뛰쳐나가다 입을 닫았다.
“오셨어요?” 하며 바라본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푸른색 망을 두부에게 건네고, 두부는 황망한 미소를 띠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할머니가 파씨를 가져오셨어.” 그때까지도 몰랐다.
“벌써 가져오셨어요. 저희가 가도 될 건데. 잠시만 기다리세요.”하고 집에 들어가 아이들과 만들어 온 피칸 쿠키를 한 봉지 드렸다.
“멀 올 때마다 이런 걸 준당가. 난 줄 것도 없는디. 고맙게 받것소.”하고 돌아가신다.
두부와 난 유유히 쿠키를 들고 지팡이를 집고 돌아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약속이라도 한 듯 한숨을 쉬었다.
다음날, 비장한 각오로 옷을 갈아입고 감나무 옆 비탈진 돌밭으로 갔다. 낙엽을 주워 담고, 풀을 메고, 칡뿌리처럼 자라난 풀뿌리를 파내다 아예 주저앉았다. 날씨도 쌀쌀한데 모기들은 아직도 내 주위를 돌아다닌다. 이젠 돌을 파내고, 또 파내고, 돌을 쌓고, 올리고 이러다 탑을 쌓을 지경이다. 네 시간을 일했건만 겨우 한 평 남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