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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Nov 03. 2023

빠삐용이 되어 자유를 만끽하고 돌아온 길동이

귀촌 이야기

길동이 이야기는 되도록 쓰지 않으려 했다. 그들도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으니까.


동생 두부에게는 글을 올리기 전에 미리 이런 이야기라고 체크도 받고, 미리 스토리를 이야기하며 양해도 구한다.

그러나. 우리 길동이에게선 어떤 대답도 받지 못해, 이따금 그것도 아주주주주 가끔 눈치를 보며 쓰고 있다.

하지만 오늘 길동이의 만행은 용서가 되지 않았다!    

 

저쪽에서 뭔가가 폴짝 올랐다 내려간다. ‘어디서 하얀 고양이가 왔나?’라고 생각했다. 다시 폴짝 뛰어올라 나비를 잡으려 한다. ‘고양이는 아닌데.’ 또 폴짝폴짝 올라오더니 뛰어간다.

풀숲으로 들어가 버린 개인지 고양인지 모르겠지만, 뒤태가 길동이 같다.

‘에이 설마?’를 외치며 집을 들어왔다.

아무리 찾아도 길동이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집엔 반려인 one과 two가 있고, 반려견 ‘길동이’, 반려묘 ‘노랭이’ 그리고 새로 태어나 잘 자라고 있는 반려목 ‘아보기’가 있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two를 위해 one이 반려견과 반려묘 그리고 가냘픈 반려목을 돌봐줘야 한다.  

밥만 주고 물만 주면 되는 반려묘와 반려목과 달리 반려견 길동이는 놀아주고, 산책시키고, 감시까지 해야 한다.


아침에 산책시키고 놀아주는 것까지 잘했다.     

아무래도 잠깐 열린 문틈을 머리로 받아 열고 탈출을 한 것 같다.

밖으로 나가 불러보았다.

“길동아, 길동아, 이 시끼 길동아” 목이 터져라 불러도 오지 않는다.

혹여나 간이 안 좋은 노령견 길동이가 아직도 음식물 분리수거가 잘 안 되는 이 시골에서 짬밥을 주워 먹고 다닐까 봐 걱정이 앞섰다.

다시 “길동아, 길동아.”부르며 길을 나서 돌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계속 목놓아 불렀다.

“길동아, 길동아, 이 시끼야 빨리 와, 길동아, 길동아.”   

  

O. M. G.

산과 들을 헤치며 사냥하러 다니는 인디언인 마냥 얼굴 반쪽과 왼쪽 앞다리 그리고 오른쪽 엉덩이와 다리에 까만 칠하고 늠름히 텃밭에 길동이가 서 있다.

나를 발견한 길동이가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더니 달려온다. 향긋한 시골 향을 품고 달려온다.

허어억! 난 뒷걸음질을 치고 길동이를 한 손으로 제지한 후, 문을 먼저 열고 두 손으로 들어 올려, 가장 먼 거리를 유지하며 욕실에 넣었다.


난 잽싸게 뛰어가 보일러를 켜고 온수를 돌렸다. 그리고 욕실 문을 열고 길동이를 바라보았다.

입을 쩝쩝거리는 것이, 동네 어딘가에 차려진 뷔페를 즐기고 오신 듯했다.

“길동아 내 손길이 그리웠어.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물을 끼얹고 몸에 묻은 소똥인지 퇴비인지 알 수 없는 검댕을 씻어내자, 몸에 발라둔 향긋한 향기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듯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샤워기를 떨어트렸다.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전용 샴푸를 짜고 벅벅 문지르니 다시 몸을 비틀어 도망가려 한다. 평소에는 거품 목욕을 좋아하는 놈이 거부한다.


아무래도 몇 달 동안 짬밥에서 멀어지게 하려 하네스를 하고 산책하고, 오리주둥이를 입에 차고 돌아다니다 오래간만에 맛본 자유를 잊지 못하나 보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라며 길동이의 몸통을 돌리려다 샤워기를 떨어트렸다.

샤워기 호스가 타일 바닥을 튕기며 코브라 춤을 추고, 뿜어져 나오는 물이 천장에서 벽으로 목욕탕 여기저기에 갈겨대고 있다. 나도 물세례를 받고 겨우 호스를 잡는 순간 길동이가 내 손을 빠져나가 거품이 묻은 몸을 털며 나에게 비벼대고 있다. 이 녀석이 마지막까지 향긋한 향을 나에게 전해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내 몸에 자신이 좋아하는 향을 비벼대며 전해주는 길동이가 안정감을 찾았다.

“나에게도 그 향을 전해주고 싶었어?”라고 말하자 그렇다는 듯 두 눈을 나의 눈에 고정하고 있는 내 강아지.

물을 잠그고 호스와 샤워 노즐을 들어 살펴보았다. 두 개를 잊고 있던 부분이 완전히 부서졌다. ‘뭐 어쩌겠어. 나도 씻어야지.’

일단 길동이를 여러 차례 박박 문질러 씻기고 나와 드라이기로 정성스레 털을 말려주니 길동이의 눈이 가물거린다. 피곤하기도 하겠지, 나비를 잡겠다고 그렇게 팔짝팔짝 뛰어댔으니.

집에 누워 고양이 마냥 털 고르기를 하는 길동이가 다가와 나도 핥아주려 한다. “길동아, 인제 그만. 너 입에서 똥내나, 아직 이빨은 안 닦았다고.”     


가만히 옆에서 길동이를 지켜보니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너를 생각하면 밖에서 뛰어노는 것이 맞는데, 집에서 인간과 맞추려니 얼마나 힘들겠냐. 나갔다 오면 발도 닦아야지, 좋아하는 두엄에서 뒹굴지도 못하지, 산책하러 나가야 대소변도 해결하지, 아무 때나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지.     

동물들이 좋아하는 이 광활한 산천에 살면서, 우리의 길동이와 같은 애완동물들은 마음껏 누리고 살지 못하고 있다.


주인에게 버림받아 길에 내쳐져 들개 신세가 되어버려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이 문제가 되고, 관리가 안 되는 도둑고양이들도 점점 도시화하여 간다는 시골에 들어선 4차선 도로에 지나다니는 차에 치여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다. 산에 있는 먹이까지 채취하는 사람들을 피해, 먹을거리 찾아내러 온 산 짐승들은 도둑 취급을 받으며 다시 사람을 피해 다녀야 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우리는 고심 끝에 집 밖에서 키워보는 건 어떠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도로로 나갈까 걱정이 돼 매일 갑갑한 몸줄로 묶어둘 수도 없고, 더군다나 산짐승을 만날까 조바심이 난다. 그렇다고 피곤하면 집에 들어가자고 낑낑대는 길동이를 밖에 재우는 건 쉽지 않았다.


동물이 시골에서 살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도 그냥 TV에나 나오는 얘긴가?     

길동이가 뛰어놀던 여운이 가시지 않는지, 날 따라다닌다.

그래도 검댕을 묻히고 들어온 강아지를 끌어안고 산다는 건, 음... 할 수 없을 것 같다.

“길동아, 네게 무슨 죄가 있겠니. 문단속 잘 못한 내가 잘못이지. 우리가 너랑 더 많이 산책하러 가고, 놀아줘야지. 하지만 검댕은 제발.”     


이젠 내 차례다.

목욕탕 정리를 해야지. 에구구.


부셔진 샤워기, 오리주둥이 벗으려는 길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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