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엔 밭보다는 논이 많다. 오죽하면 양쪽 집 사이에 끼인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머리만 빼꼼 내밀어도 논이 보인다.
밤엔 벼가 숙면할 수 있게 가로등을 켜지 않는다.
말인즉 가로등이 꺼져 있다.
불빛이 없는 덕분에 우리는 수많은 별을 보며 산책한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도 무수히 많은 별이 보여 좋았다. 그리고 살고 싶었다.
별을 보며 내일 날씨를 점치기도 하고, 밝은 달이 비춘 길을 걸으며 내 동생 두부와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그런 우리에게, 긴 밤 둘이서 뭘 하고 지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우린, “와 봐. 전혀 심심하지 않은 시골 밤을 보여줄게.”라고 대답한다.
전주 전부터 시작된 저녁 작업이 이제야 끝이 났다.
집 앞 논에서 베어 낸 볏짚을 얻어, 새끼를 꼬았다. 처음엔 더디고 더뎠고 한자씩 늘어가는 길이에 뿌듯했다. 그러나 이제는 볏짚 사이에서 알맞은 줄기를 골라 두께를 조절하며 안 보고도 꼴 수 있다.
내가 새끼를 꼬는 동안 두부는 볏짚이엉을 만들었다.
“언니 이러다가 진짜 집도 지을 것 같아.”
“그런 일이 벌어질까?”
처음 이 집을 인수하고 텃밭과 잔디밭 그리고 집 보수를 동생과 단둘이, 온몸을 두들겨 맞으면 이런 상태일 거야라며 끙끙거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도 틈만 나면 미장, 톱질, 괭이질, 호미질, 삽질하고 밥그릇을 앞에 두고 숟가락도 들기 싫었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한편으론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난 변태일까?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여유만 되면 바로 시작할 것 같지?” 아무리 생각해도 저 말을 하는 내 동생 두부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하긴 많은 분이 집에 놀러 왔다, 항상 질문처럼 남기고 가는 말이었다.
“니들 이러다 집까지 짓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열심히 엮고 또 엮었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길동이 산책을 시키고 돌아온 두부가 다시 앉아 이엉을 엮고 있다.
“언니 이게 뭐라고 말도 안 하고 최선을 다해서 하는 거지?”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하는 거야? 그냥 난 아무 생각 없이 하는데. 그래도 신기하지, 되게 단단하다.”
“남들은 우리가 수다 떨며 재미나게 일하는 줄 알아. 그때 못 들었어? 둘이 일하면 재미있겠다고?”
“난 재미있는데.”라고 말하는 나는 신기하게 손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
“저 봐. 저 봐. 손이 쉬질 않잖아. 언니 완전 잘한다.”
“나도 그런 것 같아. 너도 잘하는데.”
“응! 나도 내가 잘하고 있는 것 같아.”라며 우리는 서로를 격려해 주고, 자신이 스스로 터득해 낸 기술을 브리핑하고 전수해 준다. 이 맛에 두부와 나는 이 낡은 집을 가꾸고 돌보나 보다.
“난 새끼꼬기 끝!”
“그럼 이엉만 끝내면 되네.”
“무슨 소리 이제 구슬을 끼워야겠지요. 두부 정신 차리세요!”
“이힝.” 저 작은 실눈을 뜨고 날 쳐다보고 있다.
휴~ 비료 포대 1/4보다 조금 담긴 구슬을 꿰어 발을 만들 계획이다.
사실 구슬발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날, 탱자를 줍던 날.
노랑집에 앙증맞게 달린 구슬발이 있었다.
“어머 만드셨어요? 색이 예쁘네.”라고 두부가 말을 꺼내자.
“좀 드릴까?”라고 물어보는 아저씨에게 “네.”라고 대답하고 모양 삼아 처마에 달아둘 참이었다.
그런데!
“저기 물탱크 위에 올려놨으니 가져가요.”라는 말에 쳐다봤다. 생각보다 큼직하다. 난 직감했다. 며칠 두부를 달래며 밤일을 해야 하는구나.
이것도 운명인가? 얼마 전 거울을 걸기 위해 낚싯줄을 샀다. 아마도 오늘을 위해 준비해 둔 재료였나 보다.
낚싯줄을 잘라 구슬 하나를 들었다. 어떻게 했더라?
구슬 안으로 낚싯줄을 돌리고 돌려 묵고 다시 잡아 빼니 이음새가 말끔하다. ‘난 이것도 잘하는 거야.’라며 크크크 웃으며 그녀를 돌아봤다.
“왜? 왜? 봐봐.” 밑부분이 될 낚싯줄이 걸린 구슬은 본 두부가 “오오. 잘하는데.”라고 칭찬을 해준다.
난 열심히 구슬을 들어 꿰기 시작했다.
“언니 정신 차려. 나 다했어.”
우린 만들어진 이엉을 들고 마늘밭으로 갔다. 그리고 그 위에 덮어 주었다. 완벽하다.
사실 남들이 보면 엉망으로 보이겠지만, 내다 팔 것도 아니고, 선물을 할 것도 아닌데 우리 마음에 들면 장땡이지.
뿌듯한 마음으로 남은 짚을 두부가 청소하고 난 계속 구슬을 끼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동생이 소리를 지른다.
“그만해, 벌써 1시 30분이야. 자자.”
“벌써?”
저녁 수업도 있고, 손님도 오고, 저녁 약속도 있고 일주일이 마냥 지나가고 있다. 저 구슬은 언제 꿰나?
오늘이다.
들어온 두부에게 굴밥을 해서 무청과 상추를 텃밭에서 뜯어 와 총총 썰어 올리고, 시원한 콩나물국 한 사발을 준비해 주었다.
“두부야 오늘은 마무리해야지?”
동생의 입이 앞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대답은 안 하고 핸드폰만 보고 있다.
“쉬고 싶어?”
“응.”
“그럼 쉬어.”라고 말은 하고 나왔지만 난 알고 있다. 녀석이 날 쫓아오리라는 걸.
문을 박차고 길동이와 들어온다.
“얼마나 할 거야?”라며 구슬을 보고 서있다.
“하는 데까지.”라는 날 보지도 않는다.
그러더니 주저앉아 구슬을 꿰고 있다.
“두부야, 나 인형 눈 붙이는 거 잘할 거 같던. 한번 해볼까?”라며 주접을 떨어보는 날 쳐다보지도 않는다.
“얼마나 해야 하는지 대볼까?”라고 밖으로 데리고 나오자, 너무 촘촘하다며 띄엄띄엄하자고 퉁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