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큰스님이 나보고 “넌 전생에도 스님이었고, 전 전생에도 스님이었다.”라고 얘기하며 머리를 깎으라고 했다.
그때는 공양간에서 일 잘하는 내가 탐나 그럴 거야라고 생각해 “스님 그럼 이생에서는 평민으로 살다 힘들면 들어올게요.”라며 흘려버렸었다.
심어놓은 마늘을 덮을 짚을 만들기 위해, 얼마 전부터 바싹 마른 볏짚을 구하러 다니고 있었다. 동생 두부는 짚을 엮어서 그러니까 꼬아서 만들어야 무게감때문에 날아가지 않는다며, 침을 튀어가며 이야기를 하고 또 했었다.
아침부터 학교일로 바빠 정신없이 손을 놀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고, 전화를 붙들고 해결책을 세우느라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다.
일찍 들어온 동생이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를 위해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앞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아침에 볏짚 안 날랐더라? 논 주인에게는 전화해 봤어?” 두부의 얼굴을 볼 새도 없이 준비해야 하는 볏짚 이야기를 꺼냈다.
“안 그래도 낮에 전화했는데, 얼마든지 가져가래. 내일 나르지 뭐.”
“새끼 꼬는 거 힘들어?”
“아니, 두 가닥을 만들어서 돌돌 돌려가며 올리면 돼. 내가 할 테니까 언니는 걱정하지 마.”
“오냐. 이월아~ 하하하”
그리고 탱자를 따 온 그날
귀촌한 노랑집 부부댁에서 잡일 품앗이를 끝내고, 집에 온 우리는 잠시 쉬기로 했다. 그리고 두부는 탱자를 손질, 나는 노랑 집에 가져갈 김치 콩나물 순두붓국과 죽순을 볶아 저녁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갑자기 집 앞 논에서 볏단을 나르기 시작한다.
“너 안 쉴 거야?”
“언니 아무래도 바싹 말랐을 때 걷어놔야겠지?”
“그건 그렇지.”라며 난 탱자를 나르고 장 봐 온 물건을 날랐다.
부엌 뒷문으로 나가 두부가 볏짚 손질하는 것을 구경했다.
“언니 이렇게 볏짚을 쓸어주고 길쭉한 것만 추려 놓는 게 먼저야.”
“아아. 그럼 손질한 다음에 새끼를 꼬는 거야?”
“응 그래야 말끔하게 나오거든.”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녀의 옆에 놓여있는 것, 꼬다 만 새끼를 보니 몇 해 쉬었다고 아직 감이 안 잡히나 보다.
“넌 새끼 꼬는 거 어디서 배웠어?”
“언니, 전 시어머니 메주를 얼마나 쑤는 줄 알아? 그때마다 새끼 꼬았지.” 그러면서 농사짓는 전 시어머니가 배추 농사부터 판매용 절임 배추, 김치, 메주 쑤고, 간장·된장·고추장을 만들며 두부를 이월이 마냥 부려 먹던 일들을 털기 시작했다.
“내가 해볼까?”
“그냥 내가 할게, 언니는 밥 해.”
슬슬 볏짚 있는 곳으로 미끄러지듯 몸이 움직여진다. 엉덩이 방석을 깔고 그녀의 옆에 앉아 꼬다만 새끼를 들여봤다.
“이 정도 볏짚이면 돼?” 한 열 가닥 정도의 볏짚을 들고 두부를 바라보자, 진짜 할 수 있겠냐는 눈으로 날 바라본다. 그래서 난 자신 있게 볏짚을 동생의 눈앞에 들이댔다.
“조금 더 적게.”
“알았어. 요정도.”
“그냥 한 번 해봐.”
사극을 볼 때 사랑방에서 머슴들이 모여 발에 새끼를 누르고 하던 것이 생각이 났다. 일단 발로 볏짚을 누르고 반으로 갈라 베베 꼬아보았다. 생각보다 볏짚이 단단해 잘 꼬이지 않았다. 미끄러져 나오는 볏짚을 다시 단단히 밟고 두 개로 나눠 엄지와 검지로 살살 돌려 꼬았다. 우와~ 돌아간다. 그런데 이것은 동아줄인가?
줄이 조금 길어지자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잘 돌아간다. 사극을 보면 손으로 비비며 돌리던데 살살 비비고 돌려봤으나 오히려 하나로 뭉쳐졌다. 그래도 다시.
반으로 다시 갈라, 두 개의 볏짚을 넓게 벌리고 돌리며 손을 살짝 열었다가 다시 눌러주자 하나로 뭉쳐지지 않고 두 개로 나뉘어 살짝 돌아간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것을 한번 돌리고, 다시 반복.
동생이 그런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언니 길어지긴 하네. 장갑 끼고 하면 힘든데.” 칭찬 같지 않은 칭찬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손으로 비비고 돌리고, 손으로 비비고 돌리고, 손으로 비비고 돌리고, 손으로 비비고 돌리고, 손으로 비비고 돌리고, 손으로 비비고 돌리고, 손으로 비비고 돌리고를 무한반복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손이 신들린 듯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나도 내가 신기했다. 이렇게 부드럽게 돌아갈 수가 있어! 그러더니 입에서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하하하하, 깔깔깔 깔깔, 큭큭큭큭큭 소리를 내며 신기하게 돌아가는 내 손을 바라보았다.
“언니 뭔 짓을 한 거야? 진짜 처음 해보는 거 맞아?”
“하하하하하 두부야, 아무래도 언니 전생에 언년이었나 봐. 손이 기억해. 이름도 입에 착 붙는데.”
호텔경영을 공부하며 하버브리지 옆 호텔에서 하우스키핑 실습을 받은 적이 있다. 일주일에 두 번 한 달을 다녀야 했다. 당연히 시급도 나오는 실습이라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니저가 일을 잘한다며 아이들 통솔을 맡겼고 난 스위트룸 청소를 배정받았다. 그리고 실습이 끝나갈 무렵, 호텔 측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그때 아이들과 점심을 먹으며 “나 아무래도 전생에 서번트였나 봐. 요리 잘하지, 청소 잘하지. 내가 이런 능력이 있었네.”라며 아이들과 깔깔거리며 웃었었다.
난 전생에 스님이 아니라 어느 대가댁 여종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내 손은 마구마구 돌아간다. 이제는 두께 조절도 가능하게 됐다. 신기한 마음에 두껍게 얇게 조절해 가며 손을 놀려보고, 이제는 보지 않고 두부와 이야기하며 손으로 비비고 돌리고 꼬기를 반복하며 할 수 있는 경지에 다 달았다.
“두부야, 우리 민속촌에 알바 가도 되겠다. 너는 볏짚 정리하고 난 옆에서 새끼 꼬고. 굶어 죽을 일은 없겠네.” 그러다 얼마나 꼬았는지 궁금해졌다. 제법 길다. 그리고 엄청 단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