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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Nov 17. 2023

주모, 다산 밥상 주오

‘동문매반가’ 주막, 방 한 칸 '사의재'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모, 저희가 너무 일찍 왔죠.”

“우린 아침밥은 안 하는데. 인자 밥 안쳐.”

“그렇죠. 그래도 온 김에 들러봤는데. 아쉽네요.”

드르륵 문을 열고 나갔다.

“두부야, 우리 너무 일찍 왔나 봐.”


드르륵 문이 열리더니 이모님이 나오신다.

“너무 일찍 왔어. 근디 어제 한 밥이라도 괜찮으면 차리고.”

이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이모님이 우리를 다시 불러 세웠다.

“저희야 고맙죠. 두부야 들어가자.”

“쪼매만 기둘려, 전은 있어얀께. 오늘부터 굴전인디.”     


이곳은 다산 정약용이 머물던 ‘동문매반가’ 주막이다.     


조선 후기 1801년 신유박해, 천주교도로 몰려 형 ‘정약전’은 우이도에 절도안치되고, 동생 ‘정약용’은 기거할 방 한 칸 없이 강진으로 유배됐다.

천주교도로 유배 온 다산을 따듯하게 맞아준 이는 없었다.

에서 떨고 있던 다산에게 방 한 칸과 아욱국이 올라간 소박한 밥상을 내민 유일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동문매반가’ 주막의 주모다.


이 주막의 주모는 흐트러진 몸가짐에 술만 마시며 허송세월 보내는 ‘정약용’에게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다산이 지은 ‘아학편’)라며 모진 소리를 해대면서도 그를 극진히 보살폈다 한다. 주모의 정성 때문이었는지 다산은 동내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다시 옛 모습을 찾아갔고 지난날을 후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생각을 바르게 하고, 용모를 단정히 하며, 언행을 조심하고, 행동을 반드시 하여 자신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기거하던 방의 이름을 ‘사의재’라 칭하였다.

이곳에서 4년을 살며 ‘경세유표’를 집필했다.    

 


오늘날 사의재는 강진의 작은 민속촌이라 불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한옥 체험으로 머무르며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를 담은 마당놀이 공연을 볼 수 있다. 강진의 전통을 경험할 수 있는 차 체험관과 강진 청자 도자기 공방 그리고 즐길 거리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명심하고 꼭 들려야 하는 이곳 ‘동문매반가’ 주막.     


우리는 따뜻한 주막 방바닥에 앉아 TV를 보며 주모와 수다를 떨고 있다.  

   

내가 여기에 처음 왔던 날이 2019년 4월이었다.

해남에서 음식 인문학 강의하며 두부와 같이 산 지 두 달쯤 됐나?

우리는 대판 싸우고, 난 이번 강의만 끝나면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두부와 서먹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두부가 “언니, 미안해. 내가 아직 마음에 화가 많이 남아서 그랬나 봐.”라더니 나들이를 가자며 나를 강진에 있는 ‘사의재’에 데려왔었다.


그러다 우리는 허름한 주막을 기웃거렸고 “저긴 분명 막걸리나 동동주 같은 술 파는 델 거야!”라며 안을 들여다보는데 하얀 저고리에 까만 한복 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무표정한 얼굴로 요리하고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이왕 왔는데 파전이라도 하나 먹고 갈까?”하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밥도 팔아요?”

우리의 질문에 주모는 매서운 얼굴로 “메뉴판 보면 되잖소.”라고 퉁명스러운 말을 던졌다.

그 기에 눌린 우리는 그냥 나갔다가는 욕을 얻어먹을까 봐 일단 앉아서 두리번거렸다.


속삭이듯 두부에게 “저기 봐 ‘다산 밥상’이라는 게 있는데. 먹을까?”라고 하자 동생은 아주머니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한 상이 차려졌다. ‘가을 아욱국은 사립문 닫고 먹는다.’는 국을 한술 떠 입에 넣었다. 두부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그래 이 맛이야. 이제부터 여기는 우리 단골집 한다.’라고 말은 안 했지만 우린 서로 통하고 있었다.


‘아니 전은 왜 이렇게 고소한 거야.’

먹느라 말은 안 했지만 우리의 눈이 다시 마주쳤다.

여기서 ‘어머 너무 맛있다.’라고 호들갑을 떨면 혼낼 것 같은 얼굴을 한, 주모가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그 주모가 전을 부쳐 가져왔다.

“오늘 새 메뉴여. 굴”하고 턱 놓고 간다.

오. 오. 맛있어. 맛있어. 호들갑을 떨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웃기 시작했다. 아까 마트에서 어묵에 떡볶이까지 먹고 온 우리가 맞나 싶다.


역시 시원한 아욱국.

동치미같이 생긴 무 김치가 너무 시원하다.

내가 좋아하는 들깻가루를 넣은 토란대.

묵은지와 같이 나온 섞박지는 가능하다면 사 가고 싶다.

이 계절에 빠질 수 없는 파김치 달달하다.

새콤달콤 톳무침에 쌀쌀해져야 맛 나는 시금치 그리고 고추장아찌까지.    

 

반찬을 골고루 집어 먹고 있는데, 주모가 밥그릇을 가져와 우리 상에 턱 놓고 “덕분에 나도 한 술 하세.”하며 씨익 웃는다.

“오늘도 국물까지 다 먹을게요.” 전에 왔을 때 국물을 안 먹는다고 주모에게 혼이 난 적이 있었다.

그라제 국물을 먹어야 약이 되제. 파김치 먹어봐 맛나제?

“저는 이 섞박지요. 혹시 안 파세요?” 주모가 묵묵부답이다.

“괜찮아요.”

우린 5년째 이 집을 다니고 있지만, 아직도 주모가 무섭다.

밥을 한술 떠드시던 주모가 “저장고에 좀 있는디.”라며 국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신다.


“식당을 오래 하셨나 봐요. 음식이 다 맛있어요.”

“내가 말이여. 중국집을 했었어. 신랑은  배달 난 홀 서빙”이라며 회상에 잠기신 주모.

“그러다. 어느 날 내가 웍을 잡고 있더라고. 그게 시작이었어.”

“7년 동안 교통사고 난 신랑 병간호하며 식당 했지.”

그렇게 시작한 주모의 이야기.

웃음과 침울 그리고 화가 들어간 이야기를 털어놓는 주모의 모습은 우악스럽지도, 무뚝뚝하지도, 퉁명스럽지도 않은 소녀였다.     


배도 부르고 따땃한 바닥에 누워 주모와 더 놀고 싶었지만, 점심 장사를 시작할 시간이 되어갈 무렵 우리는 또 오겠다는 약속하고 주막을 떠났다.

    

“두부야,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는 모르는 거야.”

“그런 것 같아 언니.”

“헉! 섞박지 안 샀다.”

“그 핑계로 다음에 또 가지 뭐.”     


그런데 난 왜 자꾸 옛날 다산이 만났던 주모와 저 무뚝뚝한 이모님이 오버랩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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