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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Nov 24. 2023

없던 입 맛도 돌리는 ‘물레방아’

보리쌈밥과 불향 가득 한 돼지 석쇠 구이

우리 집에서 3.9km 거리를 천천히 1시간 동안 걸으면 ‘대흥사’가 나온다.

더 걸릴까?

사실 한 번도 걸어서 ‘대흥사’까지 가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     


처음 ‘대흥사’를 방문했을 때는 기대가 컸다.

“언니 여기 ‘일지암’이 유명하거든, 그 절 스님이 엑스 시댁에 가끔 들려하는 말이  ‘몸이 허하니, 육전이나 부쳐 보소.’라는 거야. 스님이 고기를 먹어도 돼?”

아주 오래전엔 육식을 금하라는 얘기는 없었데, 대승불교가 생기고부터인가? 살생을 안 하는 방향을 선택하다 보니 육식을 금하게 됐다는 것 같다. 왜? 그 스님 몇 살인데?”

“언니보다 나이가 많지.”

“그 스님 하고는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게 좋겠다. 40전에야, 속세의 때가 아직 덜떨어져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지만, 그 나이면 제어를 할 줄도 알아야지. 쌀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오르고,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쌈짓돈 꺼내 시주한 돈으로 공부하는 건데.”     


‘서진’은 나의 법명이자 필명으로 쓰고 있다.

남들처럼 주말이나 초파일 같은 날따라 절에 가지는 않지만, 절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다. 하지큰절은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유라면

우리 어머님과 그녀의 친구들은 하루가 멀다고 절에 간다. 아니, 거의 절에서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들은 아마 힘들어 올라가기 힘들다는 봉정암을 몇 번은 갔을 것이다.

유명한 스님이 사는 절엔 꼭 들러 글 한 자나, 그림 한 장 받아, 집에 걸어 놓고 뿌듯하게 바라보는 게 취미였다.


무슨 소원이 그리 많은지 사경에 시간 맞춰 기도도 매일 하며 지내더니, 어느 날부터 스님처럼 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스님처럼 조언 아닌 조언 같은 법문 아닌 법문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엄마, 그럼 욕심을 버려야지. 온몸에 명품 두르고 그런 소리하면 사람들이 욕해.”

“무슨 소리야. 우리는 절에 갈 때 법복 입고가.”

“그 안에 입은 웃옷은 버버리 아니야. 가방은 까르띠에네. 아줌마는 에르메스야? 큰절 말고 작은 절에 가.”

엄마와 아주머니들이 째려보든 말든

“그냥 혼자 기도해, 사람들 가르치려 말고. 기도는 마음 다스리려고 하는 거지 사람들 가르치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 스님들 그만 괴롭히고.

나에게 엄마와 친구분들은 차나 따르라며 큰스님 보러 언제 갈 거냐 물어본다.

“어머님 같은 분들이 스님들 망치는 거야. 제일 큰 죄가 스님들이 나쁜 길로 들어서게 도와주는 거라고.”     


동생 두부의 엑스 시어머니에게 스님이 찾아와 고기전을 부쳐 달라는 것을 보니. 그녀도 신앙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해남에 정착하고 어르신들의 권유로 지역에서 주최하는 ‘다도 대학’에 다니게 됐다.

'대흥사, 일지암' 스님의 수업이 있던 날, 동생이 말하던 그 스님이 강사로 왔다.

멋진 명품가방을 들고, 스님도 잘 먹고 잘살고 있다며 세속과 같은 부의 이야기와 차를 연결하는데,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마음 좁은 난 뛰쳐나가고 싶었다.      


‘대흥사’

마곡사, 법주사, 봉정사, 부석사, 선암사 등과 더불어 산지승원에 속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사찰이다.     

차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익히 알고 있는 '초의선사'가 '일지암'에 머물며 차 문화를 발전시켰다.      


대흥사에 얽힌 일화로 당대최고의 글솜씨를 자랑하던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 가며 ‘초의선사’를 만나기 위해 ‘대흥사’에 들렀다. 절을 거닐던 추사가 ‘원교, 이광사’ 쓴 ‘대웅보전’ 현판을 저것도 글씨라며 던져버리고, ‘무량수각’이란 현판을 써주고 갔다 한다.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에서 '추사체'를 완성하고 교만했던 과거와 자신을 채찍질하며 겸손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유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대흥사에 들러 자기가 써 올린 현판 ‘무량수각’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내리고, 다시 ‘대웅보전’을 올리며 지난날을 후회했다는 유명한 옛날이야기가 있다.

     

내가 들었던 ‘대흥사’는 이런 멋진 곳이었는데.

그런 스님도 있고 저런 스님도 있겠지만, 몇 년 전 대흥사 스님들의 이야기가 신문에, 뉴스에 그 이상한 스님 이름도 함께 한몫하고 난 후여서인가?

이상하리만치 ‘대흥사’는 끌리지 않는다.  

   

하지만, 대흥사 매표소 전까지는 자주 가는 편이다.

요기에 뭐가 있느냐. ‘밥 촌’이라 하여 ‘대흥사’ 맛집들이 들어서 있다.

특히, 생각하지도 따지지도 않고 ‘뭐 먹지?’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찾는 이곳 ‘물레방아’

보리밥에 돼지 숯불 석쇠 구이를 파는 곳이다.


돼지 석쇠구이는 보리쌈밥에 포함되어 나옵니다.


집에서 담근 고추장을 자랑하는 요리하는 안주인과 항상 웃는 얼굴로 “뭐든 필요하면 얘기하소.”라는 사장님은 찰떡궁합을 보여준다.

적당히 잘 삶아진 양배추를 한번, 또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요구해도 “맛나요. 모자라면 더 얘기하소.”라는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부부가 좋아서 간다.


손님상이 밀리는 일도 없고, 아무리 손님이 꽉꽉 들어찼다고, 소홀히 대하는 법이 없는 분들이다.

그리고 일 년 내내 나오는 쑥 된장국은 가슴을 따뜻하게 채워준다.

    

온갖 밑반찬 그리고 토하젓과 집 고추장을 넣어 참기름을 두르고 비벼, 비벼줍니다.


동생에게 전화가 온다.

“언니, 피곤하지, 오늘 밖에서 먹자.”

“그럴까?”

퇴근하고 돌아온 동생에게 “오늘은 물레방아다. 두부야, 밥 먹으러 가자.”   

  

맛있는 집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언제 가도 편안한 집, 없던 입맛도 돌아오게 해주는 곳이 아닐까.


채소는 살 안 찌니까?
오늘도 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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