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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Dec 01. 2023

시원하고 향긋한 황칠 갈비탕 한 그릇

강진, 목삼정

국물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계절.

역시 나도 한국 사람이다.  

   

5년이나 해남에 눌러앉아 그럭저럭 잘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가고 싶은 식당’이다.     


동생 부두와 찾은 첫 집은 ‘알쓸신잡’에 나왔던 순댓국.

생선의 비린내는 참을 수 있지만, 육류의 비린 맛엔 민감한 내 입맛에도 잘 맞았다. 유명해지자 땅 주인과의 마찰로 멀지 않은 곳으로 새집을 지어 이전했다.


전엔 아침 바닷가를 바라보며 내장탕을 먹겠다고 입만 헹구고 눈곱만 뗀 자태로 부러 달려갔었는데, 이젠 그럴 일은 없어진 것 같다.

갓 지은 현대식 건물은 깨끗했으나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맛은 사라졌다.


서둘러 음식을 준비했는지 비린 맛이 가득한 뚝배기가 나왔다. 후추를 넣고 양념장을 넣어도 사라지지 않았고, 반찬으로 나온 콩나물도 무슨 고생이 많았는지 시들시들 질겅질겅 아삭한 맛은 남아있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의 국밥집이 사라졌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찾아 나선 길.

길바닥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시간만 낭비하며 다니던 어느 날

“선생님, 국밥, 맛나게 하는 집 없나요?”

둘째 주 토요일마다 영암에 모여 ‘논어’ 공부를 같이하던 맛집을 잘 아는 선생님께 여쭸다.

“읍에 짱뚱어탕도 있고 많지 않소?”

“여긴 국밥 파는 집이 별로 없네요.”

“내가 하나 소개하요?”

저는 좋지요.”

옆에 있던 같은 해남분을 툭툭 다. “자네 내일 시간 된당가?”

“저야, 선생님이 부르시면 언제라도 달려갑니다.”     


그리하여 찾아간 ‘황칠 코리아, 목삼정’, 식탁에 앉아 뜨끈하고 시원한 갈비탕 한 사발을 바라보고 있다.


갈비탕에서 진한 황칠의 향긋함과 갈비의 향이 어우러져 내 코끝을 자극했다.

후추도 소금도 치지 않고 국물을 한 숟가락 떠 입에 호로록 빨아드리자 향은 더욱 진해지고, 두 숟가락 세 숟가락.


국물 요리는 소금기가 많아 건더기만 건져 먹고, 국물은 입가심 정도로만 떠먹는 내가, 벌써 반이나 비워버렸다.      


시원하고 삼삼했던 깍두기와 금방 절여 나오는 겉절이 그리고 텃밭에서 따온 듯한 상추 무침은 국밥을 한술 더 뜨게 하는 충직한 보조이자 주빈 같은 반찬 때문이었다.

    


그제야 집게와 가위를 들고 뼈에서 살점을 도려내 잘게 자른 고기를 국물에 풀고, 붙어있던 살점을 먹기 위해 갈비뼈를 들고 뜯어먹기 시작했었다.


“서진 선생, 맛있소?”

아차차, 아무리 학우라지만 내 앞에 앉아계신 남성분들께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제 입엔 딱 맞는대요. 갈비는 뜯어야 맛이지요.”

그래도 어쩌겠어, 이 시원하고 향기로운 갈비탕 한 그릇의 바닥을 보고야 말 것인데.

“서진 선생 입맛에 맞아 다행이네요. 그럼 저도 염치 불고하고”라며 웃고 계신 분도 갈비를 집어 들었다.     


황칠은 남쪽 해안을 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예전에 나무껍질에 상처를 내, 노란 황금색 액을 받아 ‘황칠’이라는 도료로 사용했는데, 옻칠과 같이 천연도료이며 기능 면에서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될 것이다.

옻나무를 오리에 넣어 먹는 것처럼, 황칠 또한 음식에 넣어 먹을 수 있다.

옛사람들도 황칠의 기능을 알고 있었는지, 중국에 조공으로 바치는 물품에 빠지지 않았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나무가 해를 입었을까.

다산 정약용이 무자비한 황칠 공납을 빗대 ‘황칠’이라는 개탄의 시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자, 황칠의 효능을 보자면

외국에서도 만병통치약(Dendropanax)으로 불릴 정도로 해독에 좋은 성분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성인병 예방에 탁월하며 면역 강화, 항산화 작용으로 항암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예전부터 잎을 차로 우려 마시면 향과 김으로 아로마세러피를 하며 심신을 안정시켜 주는 성분을 섭취하고 지방분해에도 탁월해 찻상에 빠지지 않는 차종 중 하나였다.     


그런 황칠  왕갈비탕을 먹었으니 몸에 시원한 땀이 흐르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학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여서인지 첫맛을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식문화는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갈수록 비어 가는 자리에 마음이 쏠린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식문화가 많이 바뀌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리가 없어 기다려야 하는 일도 많았고, 재료가 떨어져 돌아가야 하는 일도 다반사였는데, 이제는 손님을 기다리는 그릇만이 줄을 서 있다.  

   


이곳뿐 아니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국 전통이라 불리는 음식을 파는 곳이 그렇다.

다들 어디에서 밥을 먹는지?     

    

외국에서 한식을 먹는 사람을 애국자라 하고, 한식을 좋아라는 외국인을 친한파라 부른다.


한국인에게 요즘대세는 매운 중국음식, 인도 카레나 탄두리, 수제버거, 일식 오마카세, 태국 톰얌꿍 같은 외국 요리들이다.

한국에선 유행하는 음식을 못 쫓아가면 뒤처진 사람이라 부르던데.

그럼 난 뒤처진 사람?


어느 나라를 가던 전통 음식은 변하지 않는다.

유행하는 음식만이 바뀔 뿐이지.

다시 사람들로 북적대는 날이 오겠지.


“두부야, 쌀쌀한데 갈비탕 한 그릇 먹으러 갈까?”

“응, 나도 가고 싶었는데, 언니가 국물을 안 좋아해서 말도 못 하고 있었지.”

“쌀쌀한 날, 몸 데우려면 먹어줘야지.”

“가자, 칠 왕갈비탕 먹으러.”


오늘도 행복을 주는 사람과 같이 밥을 먹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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