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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Dec 15. 2023

육회가 나오는 닭요리코스, 신선함의 차이를 보이다

해남 '일미정'

“저놈의 닭 또 우네.”     


해가 떠오르기 전부터 닭이 울어댄다.

옛날 사람들이야, 닭 우는 소리를 알람으로 사용했지만, 시간 맞춰 울어주는 핸드폰 알람이 있는 나와 동생은 가끔 “아우우우우…. 지금 몇 시야!”라고 짜증을 내며 다시 잠자리에 든다.   

  

지금이야 ‘가끔’이라 말하지만, 5년 전만 해도 매일 아침 ‘꼬끼오 오오~ 꼬꼬대에엑, 꼬꼬, 꼬꼬오오오오대엑.’ 소리에 부스스 일어나, 소리가 나는 방향을 한없이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그러다 닭 소리가 멈추면 다시 누워 “우쒸! 잠 안 와.”를 연신 내뱉으며 머리를 베개에 문지르고 다시 잠을 청하려 하지만. 정전기가 일어나 산발이 된 망나니 같은 머리를 늘어트리고 벌떡 일어나 거실 식탁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리고 상상을 다.

옆집 닭장으로 달려가 두 손으로 수탉의 목을 부여잡고 흔들며 “7시에 울어주면 안 되겠니?”라고 애걸하는...     



오늘도 어김없이 해도 뜨지 않았는데 저놈의 수탉이 운다.     


거실엔 1년에 한두 번 오시는 두부의 부모님이 주무시고 계신다. 수탉 소리에 부모님이 깰까 걱정이되 귀를 방문에 기울여보았다. 서울에서 해남까지 운전하고 저녁을 먹으며 늦게까지 수다를 떤 탓인지 잘 주무시고 있는 것 같다.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느지감치 일어나신 부모님께 간단히 과일과 식빵 한 조각 그리고 따뜻하게 탄 모닝 커피믹스를 식탁에 차려드렸다.

나는 점심 드실 식당을 예약하기 위해 여기저기 둘러보고, 두부는 부모님을 모시고 갈 완도 ‘해양 치유센터 체험’ 리서치에 한창이다.


수영복과 수경, 수영모 그리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수건과 속옷까지 챙겨 두부와 부모님은 집을 나섰다.

나는 낯을 가림이 심한 부모님이  나와 수영복을 입고 다니는 걸 부담스러워하실까 걱정돼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집에서 잠이나 자기로 했다.     


두부 부모님과 나의  나이 차이는 8살 정도, 두부와 나는 17살 차이.

나이차이를 보면 내가 두부의 엄마와 아빠에게 언니 혹은 오빠라 불러야 마땅하다. 하지만 나와 두부가 나이 구분이 덜한 타국에서 먼저 만나, 언니, 동생으로 친분을 맺은 탓에 그녀의 부모님과 어색한 호칭으로  부른다.

아버님은 나의 호칭을 생략하고 눈이 마주쳐야 말씀하시고, 어머님은 '서진 씨'라 부르며 서로 반존대하는 어렵지만 어색하지 않게 지내고 있다.


4시가 되고 5시가 다가오는데 두부에게서 연락이 없다. 부모님과 즐겁게 지내나 싶어 다행이라 생각은 들었지만, 저녁 준비를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다.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일단 쌀을 씻고 텃밭에서 야채를 따 집으로 들어와 핸드폰만 물끄러미 바라봤다.


핸드폰에서 음악소리가 흘러나온다.

“응, 재미있게 놀았어?”

“응, 언니 밥은 어떻게 해?” 두부의 목소리가 안 좋다. 혹시 부모님이랑 다툰 건 아니겠지?

“어떻게 할까? 쌀은 씻었는데.”

“언니 시간도 늦었고, 힘드니까 나가서 먹자?” 진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었다.


어제는 부모님께 서양요리를 해드리고 싶다며 피곤한 나에게 ‘라쟈냐’를 해달라고 졸라, 난 종일 소스를 만들고 ‘라자냐’를 오븐에 구웠다.

오늘 저녁은 엄마가 먹고 싶다던 서진 표 ‘조기조림’이나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대접하고 싶다던 녀석이 사 먹자고 한다.


“그럼 가까운데 가자. 일미정 어때?”

“OK~”     


‘알쓸신잡’과 ‘맛있는 녀석들’이라는 방송으로 다시 재조명을 받는 ‘닭촌’이라는 곳에 ‘일미정’이라는 식당이 있다.

이곳에서 닭육회, 닭 고추장불고기, 백숙, 닭죽을 기본으로 한 ‘닭 코스’를 판매하고 있다.      


예전부터 지역적으로 벌판이 많고 큰 산이 없는 지형을 이용해, 울타리를 고려닭이라 하여 우리나라 토종닭을 작은 언덕에 풀어 키웠다고 한다.

이것을 잡아 닭백숙을 전문으로 판매하던 상인이 한두 집 모이며 토종닭 요리 촌을 만들었다.

대흥사에 찾는 사람이 많았던 시절엔 덩달아 토종닭 요리 촌에 더 많은 식당이 생기며 호황을 누렸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부터 손님들이 적어지고, 닭 잡던 사람들이 먹던 모래집과 닭발 육회 요리를 서비스하고 닭 고추장 불고기를 개발해 코스요리로 다시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엔 해남 토종닭요리 촌에 원조라 알려진 ‘장수 통닭’ 먼저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어머니가 “네 입에선 닭똥 냄새가 날 것 같아. 닭 좀 그만 먹어!”라는 말을 할 정도로 닭을 좋아하는 나.     

한해 5억 마리 이상의 닭을 소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사는 두부도 닭을 좋아한다.     


두부와 내가 한 달에 한번 이상은 먹는  후라이드 치킨.

우리나라에 후라이드 치킨 프랜차이즈가 하나둘 생기며 닭을 찾는 인구가 많아졌다고 알고 있다.

전 세계 204개의 나라 중 우리나라 닭고기 소비량이 1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달리 22위로 랭크되어 있다.

어쩌면 중국, 인도와 같은 인구가 많은 나라가 우리 뒤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인구 대비로 따져 본다면 더 올라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다.


그래서 우리는 일 년에 몇 번 못 오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해남 맛집 투어 코스로 ‘닭코스’결정했다.     


예약하고 식당에 들어서면 식탁 가운데 고추장 불고기가 놓여 있고 주위로 반찬이 놓여있다.


부모님께 자리를 권하고 두부와 나는 조용히 자를 잡고 앉아 불고기를 익히기 시작한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 주방에서 닭육회를 들고 나온다. 신선한 닭육회가 나온다는 건 신선한 닭을 쓰고 있다는 걸 말한다.

가슴살을 기름장에 찍어 드시라고 부모님께 권해드리고 우리도 한 젓가락 들어 쫀독쫀독한 닭 모래집을 음미한다.


전라도 물김치를 한 숟가락 떠 입맛을 다시고, 구운 달걀 껍데기를 까 오물오물, 다시 김치 국물 숟가락으로 입에 있는 달걀을 적셔 목 뒤로 넘기며 고소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느껴본다.


불고기가 거의 익어갈 즈음, 손두부에 전라도 볶음김치를 척 올려 한입 가득 넣고 “음. 음. (너도 먹어)”이라며 젓가락으로 동생 두부에게 두부를 가리킨다.


부모님이 불고기를 상추에 싸 드시는 것을 보고 맵찔이인 두부와 나도 고추장 불고기판으로 젓가락을 들이댄다.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기분 좋은 달콤한 매운맛이 “이모 상추 더 주세요.”라고 소리 지르게 만든다.


어느새 상에 놓인 닭 오븐구이. 

요놈 때문에 우리가 ‘일미정’을 고집한다.

적당히 노릇노릇 익은 내 팔뚝만 한 닭다리와 날개는 부모님께, 우리는 닭발을 하나씩  두 손으로 부여잡고 조그만 뼈를 하나씩 발골하며 백숙을 기다린다.


닭이 얼마나 큰지 반 마리 백숙이 후라이드 치킨집에서 나오는 한 마리보다 크다.

포크 두 개로 닭순이는 사사삭 움직임을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뼈를 제거해 나간다. 닭가슴살을 소금에 찍어 한 입 넣고 '이 부드러움 어쩔 거야.' 하며 뼈를 들고 훑어낸다.


마지막 녹두가 들어간 닭죽에 백숙을 잘게 찢어 넣고 마무리.


닭 한 마리를 어른 넷이 처치하지 못한다니, 너무 배가 불러 일어나질 못할 것 같다.     

아무래도 남은 백숙은 우리 반려견 길동이와 반려묘 노랭이 차지인가 보다.

    

그제야, 두부가 입을 뗀다.

“나 오늘 너무 열심히 논거 알아? 우리 모든 체험을 다했다규.”

“목소리가 안 좋아서…. 부모님이랑 싸운 줄 알았잖아.”

“다음에 언니랑 가려고. 너무 좋아.”

“서진 씨, 치유센터 너무 좋았어요. 같이 못가에서 아쉬웠네. 두부랑 다음에 꼭 같이 가요.” 어머님이 마사지받은 이야기부터 야외 수영장 이야기와 딸과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래 오랜만에 부모님이랑 잘 지냈으면 됐지, 그리고 흡족한 표정을 한 부모님을 보니 내가 빠져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으로 함께하니 얼마나 좋아.     


“두부야, 다음엔 부모님 모시고 뭐 먹으러 갈까?”

     

좌 고추장불고기, 우 육회, 오븐 소금구이
좌 백숙, 우 녹두 닭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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