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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Dec 22. 2023

동지에 팥죽은 먹어야지만, 새알대신 칼국수는 어때?

땅끝 정인숙 칼국수

잠에서 덜 깬 두부가 이불속에 앉아 핸드폰 속을 들여다본다.

“언니, 오늘은 애동지래. 팥죽을 먹으면 안 된다는데. 올 동지엔 팥떡을 먹어야 한다는데.”라며 핸드폰을 들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내 귀엔 떡을 좋아하지 않는 두부가 팥죽 먹을 바에야 떡을 먹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팥떡을 사다 먹을까?”

“나 떡 안 좋아하는데.”

“그럼 팥죽을 먹자고?”

“여기 나와 있는데 ‘애동지에는 팥떡을 먹는다.’라고”

일단 몸에 좋은 음식은 무조건 거부하는 두부를 달래려 “목욕탕부터 갔다 오자.”며 같이 나가기를 서둘렀다.     


따뜻한 욕탕에 앉아 “애동지엔 왜 팥죽을 안 먹을까?”라는 녀석에게 “음력 11월 초에 동지가 오면 ‘애동지’라고 해서 어린아이에게 좋은 날은 아니라고 했다네, 애들 액땜시키려고  팥떡을 만들어 먹었다는 전설이 있지. 집에 아픈 사람이 있어도 죽보다는 떡을 해서 먹었데.”라고 설명을 했다.

“난 시루떡 안 좋아하는데….”라며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고민에 쌓인 녀석.  


“너 팥이 살 빼는데 얼마나 좋은 음식인 줄 알아? 너 한때 유행했던 팥 다이어트차 몰라?”라는 말에 얼굴이 일그러진다.     


팥은 피부에 나쁜 영양을 주는 노폐물을 제거하는 효능이 있어, 세안제나 정제수로 만들어져 맑은 피부로 거듭나게 한다미용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몸에 쌓인 나트륨을 밖으로 배출하는 효과로 부기가 올라오는 것은 막아준다고도 했다.


붉은팥엔 안토시아닌도 풍부해 유해 활성산소 생성을 막고 제거하는 기능도 있다더라는 말을 들은 척도 안 하고 달달한 매실 음료만 빨대로 쪽쪽 빨아먹고 있다.     


“두부야, 간 해독 작용에도 좋다는데.”라는 말에 살짝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본다.

“간이 좋아야 피부도 좋아지고, 살도 빠지고. 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도 알지? 해독을 해주는 곳이야.”하고 동생을 바라봤다.

녀석이 고민 중이다.


“언니, 팥칼국수 먹을 거지?”

“우린 갓난아기 없어서 먹어도 돼. 아픈 사람도 없잖아.”

“언니, 아들 있잖아.”

“20살이 넘었는데.”

“그래도 애잖아.”

“그냥 먹어.”라는 말에 물속으로 들어간다.   

  

내가 이 산천으로 온 첫해 “전라도 사람들은 팥칼국수를 좋아하더라.”라는 두부를 위해 팥을 꺼냈다.


팥을 깨끗이 씻어 물 위에 동동 떠다니는 속 빈 팥은 제거하고, 찬물을 부어 거품이 올라오도록 삶았다. 아린 맛을 낼 수 있는 삶은 물을 버린다. 다시 찬물을 부어 팥이 무를 때까지 삶아낸다. 다 삶아진 팥은 채에 걸러 내리거나, 믹서에 곱게 갈아 다시 한번 끓인다.

이때, 불린 멥쌀을 같이 넣어 끓이기도 하지만, 찹쌀가루를 따뜻한 물로 익반죽 한 새알만 넣어 끓인 걸 좋아하는 두부가 있고, 국수가 들어간 팥죽을 좋아하는 나도 있다.

찰지게 치댄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어 넓게 펴고 또 펴서, 칼로 썰어 만든 국수를 넣어 먹는 팥칼국수를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러나 이번 동지엔 11월에 접어들며 주말에도 쉬지 못했던 날 위해, 집에서 팥죽을 끓이지 않고 ‘땅끝 정인숙 칼국수’를 찾아갈 거다.    

  

두부와 마음을 달래기 위해 향하는 미황사로 가는 길, “언니 저 집 팥칼국수가 맛있어.”라는 동생의 말에 들린 ‘현산’이라는 작은 면에 있는 ‘땅끝 정인숙 칼국수’.

별 기대 없이 팥죽을 한 입 떠먹고 “진하네.”라며 두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날 이후, 요런 저런 핑계 대가며 미황사 가는 길에 팥칼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팥칼국수 먹는 김에 살짝궁 시원한 바람과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 미황사로 향한다.     


주유소에 딸린 작은 국숫집을 시작해, 지금 자리를 잡은 곳으로 이사를 하기까지 부지런함과 성실함 그리고 한결같음으로 지내왔다는 사장님 부부.

같이 동석하게 되는 지역 분들마다 ‘정인숙 사장님’의 성공담을 이야기해 주시는데 ‘저 조그만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올까?’라는 마음으로 그녀를 한 번씩 훔쳐보게 된다.

주방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맛을  찬사를 듣는 ‘정인숙 사장님’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늦은 시간에 도착했는지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사시사철 진한 팥 국물로 끓인 동지죽과 팥칼국수 그리고 바지락 칼국수가 ‘땅끝 정인숙 칼국수’의 메뉴다,

자리를 잡고 앉아 두부에게는 미안하지만, 팥칼국수 두 개를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비어있는 수저통이 한 테이블에 몰려있는 것이, 한바탕 잔치를 끝내고 난 뒤인가 보다.

맨 안쪽에 지역에서 재배한 질 좋은 팥, 콩, 쌀, 차조, 보리 등의 곡식과 콩이 줄지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저쪽에서 칼국수 두 그릇이 나오고 “11번”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굵은 손칼국수가 들어있는 자줏빛 팥죽이 내 앞에 놓였다.

팥칼국수 떠 호호 불어 한입 넣고 진한 팥의 향을 느끼고 눈을 감았다.   

  

앞에 앉은 두부가 칼국수에 설탕을 한 수저 넣는다.

“두부야, 국수야! 동지죽이 아니고? 너도 전라도 사람이 됐네.”

“팥죽엔 설탕을 넣어야 해!”라며 살살 죽을 돌려가며 설탕을 녹이는 두부.

두부의 팥칼국수 국물을 한입 먹었다. “으웩. 달아. 난 그냥 내 거 먹을게.”  

   

해남 특산품인 배추로 매일 담는다는 겉절이와 무침을 올리고, 시원하고 아삭한 물김치에 담긴 무를 집어 베어 물면, 그릇이 비워가는 것이 아쉽고, 배가 불러오는 것이 서운하다.

앞에 앉은 두부가 국수를 옆으로 밀어가며 팥 국물만 먹고 있다.

“국수가 달아서 이상해.”라며 밀가루 귀신 두부가 국수를 마다했지만 국물은 다 먹었다.


두부야, 빨간 팥으로 만든 팥칼국수 먹고 액땜했으니, 내년엔 더 건강하고 복 있는 날이 되기를 기원하자.  

    

오늘 밤, 쥐불놀이는 못 해도 두부가 일찍 잠들면 눈썹에 밀가루 발라 볼까 생각 중이다.

밤아, 빨리 와라.


좌: 각종 곡식과 콩 판매, 우: 메뉴 3개


팥칼국수와 반찬 트리오
좌: 이름 걸고 장사하는 사장님, 우: 물통이 아닙니다. 설탕통입니다. 여기는 전라도.
반조리 동지죽을 출시했다. 작년 부터인가 아드님이 식당에 출근 하더니 이젠 대가족이 모여 가족 기업을 추진하는 모양이다. 잘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팥칼국수는 계속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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