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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Dec 29. 2023

코로나 팬데믹도 이겼던 '전주비빔밥'

전주 '한국관'

2년 만에 들린 전주 '한국관', 두부와 나는 육회 비빔밥을 선택하고 파전을 추가 주문했다.  

   

대전에 올라가는 길, 약속 시간이 어정쩡하게 점심시간에 걸려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두부야, 전에 못 먹었던 짬뽕 먹으러 공주에 들를까?”

“음...”

“그럼 금산에 들려 도리뱅뱅이에 어죽 먹을까?”

“음...”

“너 좋아하는 추어탕은 어때?”

“음...”


먹고 싶다던 공주 짬뽕도, 민물고기에서 비린 맛이 어떻게 안 날 수가 있냐며 먹던 도리뱅뱅이와 어죽도, 국물에 소면까지 말아먹고 포장까지 해갔던 추어탕에도 반응이 없다.

“오랜만에 전주에 들러 비빔밥은 어때?”

“비빔밥? 그럴까?”

오래전에 먹었었던 비빔밥이 맛이 있었나 보다.    


그때가….

한참 코로나 팬데믹으로 힘들었던 2021년이었다.


한참 사춘기보다 무섭다는 갱년기를 앓고 있던 지인이 집에 자주 찾아왔다. ‘혼자만의 여행’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와 결혼 생활의 푸념을 늘어놓기에 “언니, 우리가 같이 가줄까?”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지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나 이내 어두운 얼굴을 한 그녀가 “남편이 안 보내줄 거야!”라며 마시던 차만 홀짝거렸다.

“우리가 얘기해 줄게.”라며 그녀의 손을 잡아주자 “정말? 진짜 갈 수가 있을까?”라며 지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지인의 남편을 만나 좋아하지도 않던 소주를 한잔 하며 “언니, 잘 데리고 갔다 올게요. 우리 아들 만나러 가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요.”라는 말로 안심을 시키고, 어린 두부가 재롱까지 떨어가며 허락을 받아냈다.    

 

“서진아, 그런데 우리 어디가?”

“언니, 차 도구 사고 싶다며, 이천 도자기 마을갈래? 갔다 오는 길에 대전에 들러 차도 마시고, 우리 아들도 보고. 대전에서 하루 자고 오자.”


그렇게 하여 우리는 먼 길을 떠났다.

도자기 마을을 구경하고,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지인을 위해 아웃렛 구경도 같이했다.

너무도 즐거운 하루였다.


그런데, 사건은 항상 뜻하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고 했던가?

대전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주유하고 출발하려 하는데, 차가 쌩하고 다가와 브레이크를 밟고 멈추었다.

차가 앞으로 살짝 튕기더니 앞뒤로 흔들거리고, 내 몸이 앞으로 튕겼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순간 옆에 타고 있는 두부를 잡았다. 그리고 뒤에 앉은 언니를 돌아보았다.


이 두 분이 나를 쳐다보며 “무슨 일이야. 앞에 뭐가 지나갔어?”라며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앞이 아니고 뒤에 뭐가 있어!” 일단 그녀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먼저였다.

주위를 둘러보던 두부와 지인은 “뭐가?”라며 다시 날 쳐다보며 몸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뒤를 보라고, 우리 사고 났어.”

“무슨 소리야?”라며 두 여인은 뒤를 돌아보고,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본다.

“일단 진정하고, 차에 있어. 내가 가볼게.”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그녀들에게 ‘나도 심장이 콩콩 뛴다고.’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차에서 내려 사고를 낸 차주와 마주 바라봤다.

이 상황에 ‘안녕하세요.’라고는 못하지만 ‘괜찮아요?’하고 사고 난 사람들을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는 차만 살펴보더니 한숨을 쉰다.     

각자 보험회사에 전화하고 보험회사 직원을 기다리고 있는데, 지인과 두부가 차에서 내렸다.

언니가 차만 둘러보고 있는 사고 낸 차주에게 “괜찮아요.”라고 하는데 그대로 차만 보고 있었다.

“아니, 인사는 못 해도 서로 안 다쳤냐는 걱정은 해줘야 하는 거 아녜요?”라고 언성이 높아지는 지인을 차에 태웠다.

“언니 보험회사에 맡기자. 철없는 젊은 애 같은데 걱정이겠네.”

보험회사 직원이 도착해 사고처리는 금방 끝이 났고, 우리는 해남병원으로 내려가 진료를 받기로 했다.

    

늦은 시간이고, 가슴이 콩닥거려 누구도 운전을 못 할 것 같아, 예정대로 대전에 들렀다. 몸살이 난 나를 아들이 꼭 안아 재워줘 포근한 밤을 보내고, 병원에 가야 하는 나는 아들과 아쉬운 인사하고 길을 나섰다.


겁이 나 있는 두 여성에게 운전을 못 시키고 또 내가 해야 하는 상황.

3시간 30분을 운전해야 했다. 가는 길목에 “전주에 들러 비빔밥이라도 먹을래? 좀 쉬었다 가야 할 것 같지? 밥도 먹어야 하고.”

“맛있어?”

“음...”     


1971년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식당.      


예전에 골동반이라고 불렸던 음식.

전주에 피란을 온 임금을 위해 밥을 짓고, 그 위에 나물을 올리고 나라님이 좋아하셨다는 순창 고추장을 올렸다는 설과 음식이 부족하던 시절에 소를 잡아 밥 위에 나물을 올리고 잘게 자른 소고기를 장에 비벼 나누어 먹었다는 전설.

그리고 동학군들이 그릇이 부족해 한 그릇에 밥과 반찬을 같이 넣어 먹었다는 힘들던 시절의 이야기들이 담긴 ‘비빔밥’을 팔고 있는 식당이라고 설명했다.    

 

언제부터 갔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외가가 있던 군산에 갈 때 들렸었고, 커서는 친구들과 드라이브 삼아 밥을 먹으러 왔었지만 한 번도 맛없었던 기억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부와 지인이 핸드폰으로 신중히 검색하더니 “언니, 나는 전주 하면 가고 싶은 곳이었어.”라는 말에 지인도 “그럼 나도 콜.”이라며 둘이서 좋아 좋아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가도 될까? 코로난데.” 하며 그녀들을 곁눈질해 보았다.

“밥은 먹어야. 차 사고로 여행도 무산되고, 밥이라도 맛있는 거 먹자.”라며 눈빛을 반짝였다.

그래 언제 다시 셋이서 돌아다녀보겠어! “그래 가자.”      


전주 ‘한국관’에 도착한 그녀들은 “이렇게 사람이 많아? 코로난데!”하며 자리를 기다리는 손님들을 훑어보더니 “진짜 맛은 있나 보네.”라며 기대에 찬 얼굴로 불편한 몸을 추스르며 기다렸다.    

 

식당에 앉은 두부와 지인은 시그니처 메뉴인 ‘한국관 전통 육회 비빔밥’을 난 ‘돌그릇 비빔밥’을 주문했다.

 

‘한국관 전통 육회 비빔밥’은 놋그릇에 사골육수로 지은 밥을 콩나물을 넣어서 한번 비벼내고, 그 위에 계절 채소와 엿고추장을 올리고, 노란 치자 물이든 녹두 황포묵과 한우 육회로 비빔밥에 맛있는 오방색을 입혔다.


‘돌그릇 비빔밥’은 돌그릇에 ‘육회 비빔밥’과 같은 밥과 황포묵, 콩나물, 채소 그리고 엿고추장이 올라가고, 한우 대신 양념한 육우가 올라간다. 60년대에 전주의 한 비빔밥집에서 개발했던 방식대로 한번 불에 올려 따뜻하게 내어준다.  

    

“오길 잘했네. 맛있어. 우리 다음에 또 오자. 한옥마을 구경도 하고.”라는 수다를 떨며, 코로나도 접촉사고로 시큰시큰하던 무릎과 팔목의 통증 그리고 구부리기 힘든 목 뻐근함도 잃어버렸다.    

 

코로나! 그래 코로나.

산천으로 돌아와, 진료를 받으러 종합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쫓겨났다. 이유는 우리가 너무 많은 지역을 돌아다녀,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하고 격리기간을 가지며 “그래도 재미있었네.”라는 철딱서니 없는 이야기로 하루를 보내고,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이런 일로 인한, 더없는 맛의 기억이 있어서일까?

비빔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 두부가 파전을 앞에 두고 “밀가루를 좋아하는 내가, 기름진 걸 좋아하는 내가 이걸 다 못 먹네.”라며 파전 반 조각을 바라보고 있다.   

  

이번 식당 방문에 두부는 만족해하지만 난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부끄럽게 꺼내본다.


내가 한국관을 한참 다니던 때, 밀려드는 손님들로 인해 북적대던 속에서도 반찬 개수는 많지 않았지만 정갈하고 담백했는데, 담음새가 달라지고 담백함보다 인위적인 단맛이 돌아 반찬에 손이 가지 않았다.

파전은 안쪽에 온도가 잘 전달이 안 됐는지 기름져 집에 와 다시 데워 먹어야만 했다.     


전주 ‘한국관’50년이 넘어간 식당이다.

어려서부터 당연히 전주에 들리면 찾아야 하는 식당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앞으로 내 손주를 데리고 “이 식당은 할머니와 나이가 같단다.”라며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맛의 고장 전주, 멋있는 맛과 전통을 이어나가길 빌어본다.     


그래도 두부가 맛있게 먹었다니 이번 여행길도 즐거울 모양이다.     


예전 사진이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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