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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Nov 19. 2023

이젠, 밥을 해주는 사람입니다 4

서진 요리사 되다.

“진짜 요리하려고?”

“직업으로 한다는 건 아니고, 한식 자격증 한번 따보지 뭐.”

“언니가?”

“누나가?”

“왜? 못할 거 같아?”     

나도 알아. 해주는 밥 좋아하고, 빨래, 청소, 설거지 집안일은 '나 몰라라' 하는 난데.

누가 요리사 된데!


난 그냥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 친구에게 수강 신청을 해달라 부탁을 했다.

한 두어 달 다니다 시험 보고, 붙으면 좋고 떨어지면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으로 결정했다.

웬걸 친구가 수강 신청을 해 온건 한식 조리사가 아닌 출장 요리였다.


“이건 뭐냐?”

“시험 안 본데, 그리고 잘하면 알바도 할 수 있다.”

이 녀석이 신청해 온 출장 요리반은 6개월 코스, 일주일에 두 번 수강, 3번 빠지면 수료증 없음이었다. 대신 출장 요리 의뢰를 받아 돈일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설거지, 청소, 빨래 같은 집안일을 싫어하는 내가?” 난 신중하고 똑바른 정신으로 그녀를 노려보듯 바라봤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끌고라도 같이 다닐게.’라고 단호하게 힘을 주어 말하는 친구를 거절하지 못해 첫 수업에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모여계신 수강생들 나이가 나보다는 한 10살 정도 아니 아주 많아 보이는 비주얼이었다. 우리를 보자 갑자기 떠들썩하게 인사하던 그들이 조용해졌다.

나이가 조금 많으신 듯한 분이 “출장 요리 수강하셨어요?”라는 질문을 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를 배워 본 적은 있어요?”라는 질문에 얼굴을 들어 그녀를 찬찬히 훑어봤다. ‘이분이 선생님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우리를 둘러싼 어머님들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어 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사회성 좋았던 친구가 나서서 “전 엄마가 식당 하셔서 좀 배워봤어요. 얜 요리 잘해요.”

‘헉! 저놈에 지지배 거짓말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선생님이 오시고 돌아가며 인사를 하는데, “저는 00입니다. 한식, 양식, 중식 자격증 있고 경력 5년 차입니다.” 그다음 “00입니다. 한식, 양식, 일식, 중식 자격증 있고 10년 차입니다.” 모두 자격증 2개는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요리사였다. 그때도 자격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급여 차등이 있었으니 출장 요리 수료증도 받으려 수강을 한 것이었다.

‘내가 왜 여기 와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뱅뱅 돌고 내 옆에 앉은 친구를 흘겨봤다. 그녀는 연신 손바닥을 비비며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이 공간을 나가고 싶다는 몸이 들썩거렸고, 그런 날 친구가 꼭 붙들고 있었다.


“저는 서진이고요. 요리는 처음 배워봅니다. 아무래도 저는 이 수업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나에게 ‘괜찮아 우리가 가르쳐줄게.’, ‘귀엽네! 여길 다 오고.’라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러게요.’라고 맞장구를 치고 싶었지만, 친구만 툭툭 쳐댔다.


그런데 웬걸 재미있다. 친절히 가르쳐주는 나이가 한참 많은 분을 언니라고 부르며 따라다녔다. 난 6개월 동안 지각 한번 하지 않고 수료증을 받았다.

그리고 언니들을 쫓아다니며 알바도 했다. 받는 시급이라 봐야 얼마 되지 않았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 난 두 갈래 길에 서 있다.     

요리사로 접어들 것이냐?

취미로 요리를 할 것이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어선다.

책상 위엔 정리가 된 레시피가 놓여있다.

아이들이 일어나지 못하고 침대에서 이불을 끌어안고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다.

테라스로 나가 마당을 둘러봤다. 아이들이 벌써 식사를 마치고, 커피잔을 들고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buon giorno”  좋은 아침

“come?”             어때?

“tutto bene”      응 다 좋아


“니들 안 일어나? 밥 먹어야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조리복은 다려놨어?”

아이들 기다리다 나까지 늦을 것 같다.


식당으로 내려왔다.

벌써 아이들이 나와 다리미 대에 조리복이 줄을 서 있다.

“Gina, vieni qua.” (지나 이리 와.)

루카가 다림질을 마쳤는지 나를 부르며 내 조리복을 흔들고 있다.


다비드가 다가와 인사를 한다. “Good morning Gina. come stai?” 미국에서 온 데이비드의 느끼한 인사를 피해 다리미대로 도망치듯 쏜살같이 걸었다.

기숙사 식단 앞에서 미국에서 온 무리가 모여 뭔가 작당 모의를 하는 것 같다.

저 시끼 자꾸 우리 쪽을 쳐다본다.


일본 아이들은 얌전히 삼삼오오 앉아 아침 식사에 집중하며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한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한국 아이들은 어제의 숙취로 비몽사몽 속을 달래기에 정신이 없다.   

  

기숙사의 아침은 항상 분주하다.     


밥도 먹었고, 조리복도 챙겼으니 학교로 출발해 볼까!     


조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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