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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Oct 06. 2023

밥, 살기 위해 요리했다. 2

못난 글

난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고 착각했다.

    

나의 긴 웨이브 머리가 엉덩이 근처에서 더욱 찰랑찰랑하게 흔들렸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시스루 원피스에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가 나면 모두 나를 향해 인사를 했다.

“이제 출근하시나 봐요?” 장사 준비하고 있는 분주한 손을 멈추고 인사를 해줬다.

“네 오늘 좀 늦었네요.” 난 오늘도 어김없이 조회가 끝나고, 맨손체조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백화점에 들어섰다.


적잖이 까칠하게 쳐다보던 여점원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매장으로 들어갔다.

“영희 안녕.”

“나오셨어요. 물건은 창고에 옮겨놨어요.”

“잘했네. 음료 사다 줄까?” 시원하게 갈린 오렌지 주스를 손에 쥐여주고, 창고에서 조금 쉬라고 들여보냈다.

“좀 일찍 와. 사무실 직원들이 아침마다 인상 쓰고 가는 거 알아?”

“알지요. 내가 휘청거리며 맨손 체조하는 게 보고 싶으세요? 보기 흉할걸! 많이 팔면 돼. 사장님 우리 아랫집 이웃이야. 괜찮아.” 내가 생각해도, 난 부끄러울 정도로 버릇이 없었다.

매장 옆, 곰돌이 같은 포장 코너 사장님이 웃으시며 찡긋찡긋 다. 점장님이 우리 매장을 향해 오시고 있었다.

"점장님 안녕하세요. 우리 매대 언제 가져가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곰돌이 사장님에게 윙크해 드렸다.  

   

매일 하는 루틴, 영희가 매장으로 다시 나오고 나는 3층으로 올라가 옷을 구경하듯 매서운 눈으로 찾아 헤맸다. ‘어떤 옷이 좋을까?’ 둘러보며 걸었다.

“서진아! 오늘은 우리 옷 입고 있을래?” 내가 애용하던 브랜드 사장님.

난 눈을 반짝이며 “새로 내려온 거 있어요?”

이것저것 입어보고 하나를 골랐다. 오늘은 바지 투피스, 신발이랑도 잘 어울리겠네, 라며 오늘 팔 신상 구두를 상상해 본다. 요리조리 둘러보고 머리도 묶었다, 풀었다, 다시 올림머리를 하고 매장으로 내려왔다. 뒤에서 사장님이 많이 팔아달라 부탁하는 소리가 들렸다.


“영희야, 신발이랑 잘 어울려?”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 방그레 웃어줬다.


영국에서 조용히만 지내고 살던 나는, 20살이 넘어 친구들과 클럽도 다니고 블링블링한 옷도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한국은 놀이의 천국, 정말 화려했다.

매일 청바지나 긴 스커트에 티셔츠 아니면 니트를 걸치고 다니던 난, 특별한 날도 아닌데 드레스 같은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그리고 이내 난 그들과 합류했다.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시선도 싫지 않았다.


난 한국에 돌아와, 절에 들어가 잠깐 쉬다,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에 고가 브랜드 잡화 매장을 열었다.

‘그래 난 요리하고 빨래에 청소하며 궁상맞게 사는 것보다, 요렇게 화려하게 사는 게 더 어울리지.’

난 예쁘지는 않지만, 장사에 소질이 있는 듯했다. 164cm, 48kg 나의 몸에 두르고, 발에 신겨있던 상품은 모조리 품절이었다.


그래도 변하지 못했던 한 가지, 원이었던 영희의 식사만은 부족하지 않게 챙겨줬다.

아무래도 귀했던 음식 탓이었는지, 애틋함이 생겼다.

구내식당이 맛이 없다는 영희를 위해 매장 시식이 불법이었지만, 음식을 사다 나르고, 회식도 자주 했었다. 우린 언니 동생 사이로, 내가 매장을 그만둘 때까지 함께했다.    

  

장사의 미학과 화려함에 빠져 살던 중, 아버지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서진아, 네가 매장을 맡아줘야겠다.”

“월급은?”

“이제 시작이니 많이 못 준다.” 아버지를 째려봤다.

부탁이 아닌 일방적인 협박과 함께 난 아버지와 매장을 찾았다.


신축 주유소 안쪽에 있는 매장, 인테리어도 필요 없이, 청소하고 필요한 물건들만 들여놓으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아버지에게 4촌이니까, 나에겐 5촌 큰아버지가 장사를 배우러 오신다는 거였다.

성질 급하고 고지식한 아버지와 군인 출신 큰아버지, 두 상전을 모시고는 할 수 없다고, 짐을 싸 절로 들어가 버렸다. 큰아버지가 제대 후 출판사를 하다 폭삭 망했다며 도와달라는 말에 난 열심히 매장청소를 했다.

대신 매장 안 매대 하나 소유권과 6시 퇴근을 약속받았다.


난 미쳤었다.

군인이 어디 가겠어!

매장 오픈전 큰아버지는 어디서 커다란 사장님 책상을 가져왔다. 큰아버지를 째려봤다.

일도 내가 다 하는데! 손님들은 어디서 쉬라고?

영수증 하나 건네는대도 일어서서, 곁에 다가와 달라고 요구하신다. 큰아버지를 째려봤다.

내 책상이 바로 옆에 딱 붙어있는데!


블링블링한 옷은 던져버리고 움직임에 어울리는 창바지와 티셔츠나 니트 그리고 운동화를 찾았다.


장사는 초기비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난 다시 큰아버지와 직원을 먹이기 위해 밥 하기 시작했다. 운명일까?

매일 점심 메뉴 고민을 해야 했다. 김치찌개도 끓이고, 된장찌개, 생선구이, 달걀찜, 달걀말이, 달걀 프라이, 콩나물국, 시금칫국...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집에서 퍼 나를 생각을 못했을까?


제법 큰 거래처도 생기며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우리 매장 근처 타사 타이어 브랜드 대리점을 찾아가 상부상조하자는 제안을 했다. 대답은 OK였다. 그간 팔아주길 잘했던 것 같았다.  당시 카센터나, 자동차 공업소가 아니고선 판매할 수없던 외국 타이어와 국내 타이어를 동시에 팔았다. 제일 핫했던 BBS 3피스 휠부터 저렴한 휠까지 조인 판매하던 우리 매장은 사람들로 항상 붐볐다.


그렇다. 난 운수업에 종사하는 아버지 덕에 타이어 대리점을 운영했었다.

월급 45만 원, 아버지는 겨우 내 곗돈 45만 원과 차량 유지비만 주었던 자린고비였다. 그 돈 받고 밥까지 해댔던 내가 미련스럽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자수성가한 아버지 영향이었을까?


그나마 얻어낸 매대에 남대문 도깨비시장에서 떼어온 수입 자동차 액세서리로 진열판매했다. 내가 얼마 벌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큰아버지가 쏠쏠하게 들어오는 내 부수입을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차. 차. 자리를 잡고, 어린 나이에 겁도 없이, 다른 부업을 계획했다.  

정비가 필요한 차를 공업사로 소개해주는 일이었다. 차량 기종이나 차주의 자금 정도를 파악해, 저렴한 곳부터 1급 정비 업소까지 다양한 곳으로 손님의 형편에 맞게 보냈다. 소개비 10%, 처음엔 받을 생각이 없었다. 손님들을 더 받아 볼 요량으로 서비스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차를 받는 정비소에선 그렇지 않았는지, 고맙다며 봉투를 들고 찾아왔다. 그 당시 내가 부업으로 얼마나 벌었는지 아버지는 지금도 모르고 계신다.

배달에 수금 그리고 부업으로 바빠진 난, 더는 밥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와 제안했다.

그때는 없었던 타이어뱅크 같은 회사를 차리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친구가 찾아왔다.

“서진아, 나랑 요리 배우러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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