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마음을 안아주는 아이들
산천 요리생 마지막이 아니길
수업 시간보다 늦어도 40분 전, 혹시라도 주문이 누락된 부분이 생기거나 제대로 된 물건이 오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함이 일어, 학교에 도착하려 노력한다.
도착하면 어김없이 냉장고에서 며칠 걸쳐 도착한 재료들을 꺼내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려도 언제나 수업 30분 전에 도착해 수업 준비를 도와주시는 김 선생님이 오셨다.
재료가 차질 없이 준비된 걸 확인하고 나서야 긴장했던 마음이 내려앉는다.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던 김 선생님이 “오늘은 뭘 만드나요? 못 보던 재료가 많네요.”라며 재료가 쌓여있는 테이블로 눈길을 돌리신다.
“이탈리아 요리요. ‘라자냐’라고 파스타의 일종인데 넓적한 면으로 만드는 요리예요. 시루떡 만들 듯이 오븐 트레이에 면 깔고 소스 올리고 치즈 올리고 또 면 깔고 소스 올리고 치즈 올리는 걸 반복해 오븐에 넣고 굽는 요리입니다.”
“애들은 좋겠어요. 신기한 요리도 배우고.”
“애들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네요.”라며 김 선생님과 수다를 떨고 있는 교실로 방울이와 달희가 들어온다.
방울이와 달이는 요리 동아리가 사용하는 기술·가정실 청소 담당을 맡고 있다.
“얘들아, 어차피 요리 끝나고 바닥 청소해야 해. 놀아.”
“선생님 재료 준비라도 할까요?”
“그냥 놀아. 딴 애들 청소하는데 놀면 얼마나 기분 좋은데. 놀아.”라고 말을 해도 아이들이 양파와 마늘을 씻고 재료를 둘러보고 있다.
이 동아리가 유지되고 있는 건 1학년 방울이와 달희 그리고 불꽃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년 졸업식 때만 해도 밤늦은 시간까지 진행되는 요리 동아리를 담당하고 싶어 하는 선생님이 없어, 동아리의 유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1학년 아이들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날, 과반수의 아이가 “요리 동아리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는 질문에 동아리 폐지는 무산되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볼멘소리에 힘없는 막내 선생님이 우릴 담당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요리 동아리 가입을 희망하던 여러 명의 아이 중 가위바위보로 이겨 들어온 ‘방울이’, ‘달희’, ‘불꽃’.
이 세 아이는 가끔 친구들 앞에서 “너희들이 몰라서 그래. 선생님이 얼마나 무서운데. 성적 관리도 해야 하고. 너무 힘들어.”라고 볼멘소리 하며 징징대는데 표정은 밝다.
그런 아이들에게 “너무 힘들면 친구들에게 양보할까?”라고 한마디 툭 던져본다.
그러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저희가 여길 어떻게 들어왔는데요. 못 나가요.”라며 “선생니이이이이임”하며 매달릴 때는 사랑스러워 꼭 안아주고 싶다.
1학년 아이들은 경쟁을 뚫고 들어와서인지 의기양양하며, 저 조그만 손으로 주어진 재료 손질에 싫다는 말 한마디 없이 해내는 걸 보면 대견스럽다.
언제였지?
3학년 아이들에게 “자꾸 쉬운 일만 찾으면 밀키트 가져다준다.”라며 꾸중하고 있던 중이었다.
옆 테이블에서 재료를 썰고 있던 1학년 아이들이 3학년 선배를 바라보며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어요.” 하는데, 나도 할 말을 잃었었다.
가끔은 날 부끄럽게 만드는 녀석들이, 오늘도 앞치마를 매고 내 앞에 서있다.
“먼저 당부할 말이 있어. 오늘부터는 3학년 선배들이 후배들 보조를 해준다. 너희가 졸업하고 남은 후배들이 앞으로 동아리를 이끌어가야 하니, 너희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것이 선배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3학년 어떻게 생각해?”
“좋아요.” 언제 이렇게 컸을까? 주저하는 기색 없이 대답을 해준다.
"선생님, 내년에도 요리 동아리 계속해요?"라는 1학년 아이들의 질문에 나는 답을 못하고 있다. 아이들 얼굴을 보기 미안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화제를 바꿔주는 아이들.
“선생님 오늘은 뭐해요?”
“너희가 하고 싶다던 ‘라쟈냐’ 할 건데.”
“나자냐? 나 자야 돼?” 저런 재범이 자슥, 팀장이라는 놈이 또 아재 개그로 수업 분위기 깨고 있다. 모든 아이가 재범이를 째려본다.
“래도야, 난 때릴 수 없으니 네가 한 대 쳐.”라고 하자마자 ‘윽. 윽.’ 거리며 쓰러지는 척하고 있다.
“선생님 그런데 ‘라자냐’가 뭐예요.”
“이탈리아 파스타의 일종이야.”라며 나서는 우스.
“자 이게 뭔지 알아?”
“양파…?”라고 하며 눈들이 다가온다.
“펜넬이라는 거야. 좀 있다 ‘베샤멜’이라는 소스 만들 때 쓸 거야. 요건 ‘릭’이라는 서양 파.”
“자 이제 시작합니다. 모든 채소는 손질해 씻고, 3학년 양파와 마늘 다집니다. 1학년 허브 다질 줄 알지?”
“네.”
“달희야, 전에 당근 다져봤지?” 말수 없는 달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엔 더 곱게 다지는 거야?” 또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네.” 목소리 듣기 너무 힘든 아이다.
벌써 11월이다. 3월에 수업을 시작해, 한 달 방학을 빼고 8개월을 나와 요리해나가고 있는 녀석들. 이젠 설명해 주면 척척 해내고 있다.
김 선생님도 이리저리 아이들을 돌아보며,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주며 손을 맞추는 몸짓이 자연스럽다. 참 고마운 분이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 아이들을 바라봐 주는 일을 해주고 있는 분이다.
“재료가 준비되었으면 이리 가져오세요.”
“라구소스라는 거야. 천천히 잘 볶아야 해.”
먼저 팬에 넣은 올리브 오일을 따듯하게 데우고 다진 마늘을 넣고 볶아요. 그리고 잘게 썬 양파를 넣고, 그다음 당근, 릭, 셀러리.
모든 채소가 부들부들하게 볶아지면 다진 소고기를 넣습니다. 뭉치지 않게 부시듯이 볶아요.
불을 센 불로 올려 와인을 넣어야 하지만, 패스.
다진 로즈마리, 타임, 오레가노를 넣습니다.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고 신맛이 날아갈 때까지 볶아요.
여기에 전에 끓여놓았던 육수를 넣어 끓입니다.
뚜껑을 덮고 번갈아 가며 저어주세요.
마지막으로 소금, 후추로 간을 해야겠죠.
“이번엔 베샤멜소스.”
밀가루와 버터를 1대 1로 계량합니다.
낮은 불에 버터를 녹이고 밀가루를 넣어 볶아요. 타면 안 됩니다. 하얗고 실키한 소스를 만들어야 해요.
이제 우유를 부어줄 겁니다. 조금씩. 조금씩. 저어가면서. 뭉치지 않게. 잘 저어주세요.
한 방향으로 저어주세요.
계속 저어주세요.
이제 아까 보았던 팬넬을 넣고, 양파, 릭, 허브, 통후추를 넣습니다. 안 넣어도 되지만 향과 맛이 풍부해져서 넣었습니다.
한 방향으로 계속 저어주세요. 팔이 아플 수도 있으니 번갈아 가면서 저어요.
그리고 다된 소스는 채에 걸러줍니다.
마지막, 소금으로 간을 해줍니다.
“와우! 얘들과 소스가 너무 잘됐다.”
오븐 팬에 베이킹 페이퍼를 깔고, 짜잔~ 생 파스타.
우리가 파스타를 만들 때 물에 넣어 끓인 면은 건면. 이건 생면.
생면을 잘라 바닥에 깔아줍니다.
라구소스를 펼쳐주고, 베샤멜을 올리고, 그 위에 모짜렐라 치즈를 골고루 뿌려주세요.
이렇게 여러 번 반복해 줍니다.
그리고 오븐 속으로.
라자냐를 만들고 있는 1학년, 배고프다고 라구파스타 만드는 2학년
“맛있어?”
“만들기 잘한 것 같아요.”
오늘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잘 먹는 아이들을 보니 행복하다.
수업이 끝나고 거의 탈진상태에서 집으로 돌아가지만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동아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건강하고 행복한 요리를 가르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