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웠다가 풀렸다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인지 아이들이 독감에 걸려 골골거리며 맥을 못 춘다.
그래서 따뜻한 국물 요리를 해보려 텃밭을 찾았다.
배추, 무, 당근, 청경채, 부추, 쪽파가 오늘 아이들 요리재료이다.
시골 아이들이라고는 하지만 배추, 무, 당근, 청경채, 부추, 쪽파, 상추, 오이, 호박, 고구마, 감자 같은 채소나 쌀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르고 산다. 아니 어쩌면 부모님들은 농사에 관심을 두는 것보다 기술을 익히거나 대학에 가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사무실에 앉아 편하게 일하길 바라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부모님 농사를 도와준다 해서 농사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작물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아는 것도 공부고 경험이라는 말을 해줘도 듣지 않는다.
“공부나 하래요.”라며 킥킥 웃는 아이 중 농부가 되길 원하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다.
“선생님은 농부가 아닌데 텃밭 가꾸면서 요리재료에 대해 배우는 게 많은데. 날씨에 따라 심어야 하는 작물은 무엇인지 어떻게 자라는지. 농약을 안 치고 가꾸는 방법은 없는지. 어떤 퇴비를 쓴 채소가 우리 몸에 좋은지. 새로운 걸 안다는 건 재미있는 거야. 공부도 궁금해야 한다.”
“전 공고 갈 거예요. 농사 안 지을 거라 안 해도 돼요.”
“나중에 커서 ’채소란 이런 거야. ‘라고 잘난 척 할 수도 있고. 결혼해서 너희 아이들에게 ‘채소는 이렇게 자라는 거란다.’라고 알려줄 수도 있잖아. 어차피 우린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하는데.”
“선생님 인터넷으로 시키면 와요. 택배로 시키면 되지요.”
예전에야 노비가 양반 대신 농사를 짓고, 가난한 서민이 텃밭을 가꾸었지만, 지금은 농사도 배움이라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 없나 보다.
“얘들아, 시간이 더 흐르면 인큐베이터에서 기르는 채소보다 노지에서 땅 힘으로 기르는 것들이 주목받는 시대가 올 거야. 그리고 그런 재료들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이 더 인정을 받을걸.”이라고 말하지만, 알려주는 어른이 없다면 애들이 뭘 알겠어.
그래서 난, 우리 집 텃밭에서 자란 채소를 자주 학교에 가져와 요리한다.
역시나 오늘도 아이들이 양파와 마늘을 까놓고 간 흔적들이 남아있다.
“배추가 좋네요.” 오늘도 여지 없이 일찍 와준 김 선생님.
“실하죠. 이번 배추는 학교 텃밭에서 제일 좋아 보이는 놈으로 따왔어요.”
쟁반에 늘어놓고 보니 튼실하니 보기 좋다.
아이들 말처럼 인터넷으로 시키면 좋지. 그러나 텃밭에서 채소를 키워 본 사람으로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자라는지 설명도 할 수 있고 부모님의 노고가 얼마나 들어있는지 알려줄 수도 있다고 강조할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욕심 많은 이 요리선생이 돈을 아껴 고기 한 점 더 사보려 꼼수도 들어있다.
감기로 콜록거리는 아이, 감기가 지나간 아이, 이제 막 으슬으슬 감기기가 오고 있는 아이가 흐느적대며 서 있다.
“감기가 심한 재범이는 미술 선생님이랑 수업하고, 끝날 때쯤 와서 저녁 먹자.”
재범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흐느적거리며 문을 열고 나간다.
“다른 친구들은 괜찮아?”
“네, 할 만해요.”
“자 그럼 시작.”
“텃밭에서 따온 재료들입니다. 배추, 무, 당근과 같이 십자 식물은 더울 때 키우면 잎이 웃자랄 수 있어서 선선한 가을에 씨를 뿌려요. 우리가 사는 이 산천은 따뜻한 곳이라 다른 지역보다 늦게 키우는 특징이 있지요. 부추 한여름이 되면 잎이 뻣뻣해지며 꽃대가 올라오지요. 그 외에는 잘자라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도 몰랐는데 청경채가 추운 날에도 강하더이다. 오늘은 요 채소를 이용해 육수를 끓이고 유부·만두전골을 만듭니다.”
불판 두 개와 도마, 칼, 육수 냄비가 필요하다고 말이 끝나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아이들.
다시마를 젖은 행주로 닦는 방법을 알려주고, 멸치 똥 따는 걸 알려주려는데. 김 선생님과 모여 앉아 재잘거리며 멸치 손질을 하고 있다.
다시마, 멸치, 무, 양파, 마늘, 대파, 통 후추를 넣고 물을 부어 끓이고 있는 냄비에서 배고픈 냄새가 올라온다.
“얘들아, 전에 만들어둔 ‘라자냐’ 데워줄까?”
“넹. 넹. 넹.” 그러며 고양이 눈을 하고 날 쳐다본다. 어쩜 저리 귀여울까.
당면을 삶아 자르고, 두부를 으깨고, 마늘을 다지고, 양파와 당근을 잘게 다져 볼에 넣고 다진 돼지고기까지 넣어 꼭꼭 눌러가며 치대고 있는 아이들.
끓는 물에 소금을 넣어 부추와 쪽파도 데쳐냈다.
이번엔 유부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기름기를 빼고 한 김 날리고 면 보자기에 쌓아 꼭꼭 눌러 물기를 짜냈다.
“자 이제 봐봐. 유부를 들고 찢어지지 않게 사이를 벌리세요. 그리고 당면, 두부, 돼지고기가 들어간 소를 넣으세요. 그다음 부추나 쪽파로 말아 묶어줍니다.”
“선생님 묶는 게 어려울 것 같은데요.”라더니 꼭꼭 넣어 쪽파로 묶는 솜씨가 나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