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니지만 #1

산천 요리생 마지막이 아니길

by 서진

유튜버 ‘자취남’이 오던 날, 아이들이 집으로 오기로 한 시간은 11시.


똑똑 문을 두드리고 “선생님”하고 부르는 소리에 점심 준비로 바빴던 손을 멈추고 달려 나갔다.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재범이가 꽉 끼는 얇은 후드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역시나 짧뚱하고 얼마나 입었을지 모를 운동복 바지 차림으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춥지 어서 들어와. 일찍 왔네.”

“11시 맞춰 타고 올 버스가 없어서요.”라며 들어오는 재범이.


우리 아이들이 사는 곳엔 5에서 7대 정도의 지나가는 버스가, 주말엔 가끔 마을 앞에 정차한다는 걸 생각지도 못했다. 선생이라는 사람이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던 거다.


“따뜻한 차 한 잔 줄까?”

“네.”

무표정한 얼굴로 앉을자리를 찾으며 뻘쭘하게 움직이고 있는 녀석에게 “이 녀석아, 선생님 집에 한두 번 온 것도 아닌데 아직도 어색해?” 머리를 긁적이며 거실 바닥에 앉는다.

“일찍 왔으니 선생님 도와줄래?”

나지막한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하더니 싱크대 있는 쪽으로 다가온다.


주방 뒷문으로 들어온 두부가 “언니, 재범이한테 감자껍질 까라고 할까?”라며 재범이를 반긴다.

“재범이 감자껍질 까줄래?”라며 바라보자 “네.”라며 담겨있는 감자를 들고 거실로 간다.

재범이가 감자를 조용히 벗기고 있는 중간, 1학년 불꽃이 왔다.


“불꽃아,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왔어? 도와달라는 말을 못 하겠는걸.”

“헤헤헤, 신경 좀 썼어요. 저도 감자 벗길까요?”

“그럼 선생님은 좋지. 재범이가 알려줘.”

재범이가 차분하고 다정한 말투로 불꽃이에게 설명한다.

작년만 해도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흐느적대며 심란하던 재범이가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많이 컸다.


그리고 울리는 전화벨 소리, 아이들이 독감에 걸려 못 온다는 소식이다.

고등학생이 된 디엔이가 오고, 뒤를 이어 달희가 도착했다.

도착한 아이들은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어놓는데, 재범이가 신경 쓰인다.


올 첫눈은 11월에 왔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 아이들이 두꺼운 점퍼와 코트를 입고도 오들오들 떨며 유행하는 독감에 속수무책이다. 그런데 재범이는 작년 한겨울 내내 입고 다니던 털 달린 얇은 후드를 다시 입고 다닌다.

“재범아, 받은 장학금으로 선생님이랑 옷 사러 간다는 거 잊지 않았지? 다음 주 토요일에 가자.”

국제 로터리 3650 지구 서서울로터리클럽에서 ‘요리 동아리 활동’하며 밝아지고 단단해진 아이들에게 40만 원이라는 거금이 4명의 아이 각자에게 장학금을 보내주셨다.

사실 이 장학금은 고등학교에 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과 졸업여행 때 입을 옷을 사주려 두부와 함께 신청했었다.

“네.”라고 가만히 감자를 바라보며 대답하는 녀석.


“선생님, 재범이 옷 사러 가요?” 디엔이가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재범이와 날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저번에 신청한 장학금이 나와서, 옷을 사기로 했어.”

“잘됐다. 선생님 재범이 기숙사에 들어가려면 필요한 물건이 많은데. 깨끗한 이불도 하나 사야 해요.”라며 기숙사에 1년을 살며 필요했던 물건들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선생님, 저도 같이 가도 돼요? 재범이 도와주고 싶어요.”

디엔이 고등학교 가더니 어른이 다 됐다. 물 뚜껑도 따줘야 하고 쫓아다니며 하나하나 살펴줘야만 했던 아이가 불쑥 커버렸다.

“디엔이도 같이 갈래?”

“네.”


아이들 덕에 점심 식사 준비는 수월하게 끝이 나고, 두부와 나는 유투버 ‘자취남’과의 촬영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순조롭게 마쳤다.

숫기 없는 아이들과 유튜버의 부드러운 만남을 위해, 먼저 숯불을 피워 아이들이 고기를 굽고, 반찬을 나르며 서로 부딪히며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음식을 앞에 두고, 은 마주 앉아 사진도 찍고, 가볍고도 심각하게 유튜버라는 직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과 ‘자취남’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리라는 아쉬움의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아이들의 집에 가는 길, 많이 피곤했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런데 재범이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재범아, 선생님이 기숙사에서 필요한 물품은 사줄 수 없어. 아버님이나 할머니가 준비해 주실 거야. 하지만 다음 주에 옷은 꼭 같이 사러 가자.”

“네.”

우리의 대화 소리에 잠이 깬 디엔이 “너 진짜 지금처럼 입고 다니면 안 돼. 애들이 무시해. 간지 나게는 못 입어도 깔끔하게 입어야 한다. 참! 이불은 사야 해요. 선생님. 이불에서 냄새나면 아이들이 싫어하거든요. 생각보다 준비할 물건이 많은데. 수건도 웬만하면 새 수건 가져가야 하고요. 재범이 할머니는 챙겨주지 못할 것 같아요.”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는 재범이가 안쓰러웠다.


“물건을 사도, 재범이는 가져다 줄 사람이 없어요. 집에 차가 없어서.” 디엔이는 재범이가 정말 걱정이 되나 보다.

“일단 기숙사에서 쓸 물건은 할머니와 아버지께 여쭤보자. 하지만 짐을 싣고 갈 차가 없다면 선생님이 도와줄게. 알았지?”

“네.”라는 말을 남기고 재범이가 차에서 내렸다.

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선생님, 재범이는 할머니가 나이가 많으셔서, 우리 나이에 맞는 물건을 모르세요. 그냥 선생님이 도와주시면 안 돼요?”

“선생님도 그러고 싶지만, 모든 걸 도와줄 수는 없단다. 재범이도 식구들이 있잖아. 디엔이 마음은 알겠는데 식구들 뜻도 따라야지.”

디엔이 집 앞에 도착하고 “선생님 그렇겠네요. 조심해서 가세요.”라며 인사하고 뛰어간다.


https://brunch.co.kr/@ginayjchang/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