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니지만 #2

산천 요리생 마지막이 아니길

by 서진

한 주가 지나고, 두부와 아이들과 쇼핑을 위해 분주한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밖에서 “선생님. 선생님”하는 소리가 들리고, 재범이가 상기된 얼굴로 서 있다. 점심으로 뷔페를 가자는 말에 기분이 좋았는지, 아니면 쇼핑을 하러 간다는 것이 즐거웠는지 얼굴이 밝다.

그 뒤에 커다란 디엔이가 “헤헤헤. 저도 왔어요.”라며 재범이 뒤에서 머리를 이리 삐쭉, 저리 삐쭉거리며 웃고 있다.


들어오라는 손짓하고 따뜻한 계피차를 내밀었다.

“선생님, 저희는 커피 마시면 안 되죠?”

“마셔도 되는데, 키 안 클까 봐 안 줄래. 잠 못 자면 키 안 커.”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얼굴로 뜨거운 차를 호호 불어가며 마시는 녀석들이 귀엽다.

“언니, 출발하자.”

그래서 두부, 재범이 그리고 디엔이와 함께 목포로 나들이를 떠났다.


“오늘 점심은 뷔페야.”

눈치도 없는 재범이가 “선생님 저 그 뷔페 가봤어요.”라고 하자 디엔이가 재범이를 바라본다.

“너 언제 가봤어? 난 못 가봤어.”

재범이는 식구들과 여행 아니 지역에서 진행하는 축제도 못 가본 아이다. 그런 아이가 뷔페를 가봤다는 대답에 디엔이가 놀랐다.


“작년인가? 학교에서 목포 갔다 오다가 거기서 밥 먹었어.”라며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왜 나는 안 먹었지? 너희 학년만 간 거야? 맛있었겠네.”라며 입맛을 다신다.

“그래서 재범이는 뷔페 안 간다고? 그럼 떡볶이 먹으러 갈 거야?”

“전 떡볶이 뷔페 구경하러 가고 싶어요.”라는 말에 디엔이의 눈동자가 동글동글 굴러간다.

“떡볶이는 싼데. 뭐 선생님은 좋아.”라고 하자 디엔이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처음 나들인데, 비싼 거 먹자. 디엔이 형이 도와준다고 왔으니, 오늘은 형 먹고 싶은 거 먹자.”라고 하자 디엔이의 얼굴이 밝아진다.

“네, 형 그럼 뷔페 가자.”라며 인심 쓴다.

밥은 두부가 사는데.


뷔페에 들어서자, 자리에 앉지도 않고 음식이 즐비한 곳으로 달려가는 녀석들.

디엔이 닭튀김을 접시 가득 쌓아 조심스럽게 들고 와 앉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디엔아, 빨리 먹으면 많이 못 먹는다. 천천히 먹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릴게.”

그래도 와봤다는 재범이는 초밥도 들고 왔다. 이 녀석은 머리를 접시에 꼬꾸라질 정도로 들이대고 먹더니 다시 일어선다.

고맙게도 두부가 아이들이 미쳐 챙겨 먹지 못할 것 같은 음식들을 들고 왔다.


접시를 들고 왔다 갔다 하던 녀석들이 지쳤는지 더는 못 먹겠다며, 젓가락질이 느려지고 남은 음식을 마지못해 먹고 있다.

“너희 국수 먹을래? 선생님은 소바 먹을 건데.”

“어디서 가져와요?”

“따라와.”

우동을 안 그릇씩 앞에 두고 깨작거리던 디엔이가 “밖에 나가서 한 바퀴 돌고 오면, 다시 먹을 수 있는데.”라며 배가 불러 못 먹는 아쉬움을 한숨과 함께 밀어내고, 재범이가 옆에서 ‘형 말이 맞아.’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럼 이제 디저트 먹고 갈까? 돌아다니려면 힘들 거야.”

녀석들이 배가 부르다면서도 아쉬운지 자꾸 식당을 다시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차에 탔다.



“여기부터 들리자. 마음껏 구경하시고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말해주세요.”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재범이가 “우와~”라며 매장을 한참을 바라본다.

두부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난 세일 품목이 있는 매대에서 옷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바구니에 옷을 담아 재범이를 찾았다.

“마음에 드는 옷 찾았어?”

“선생님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럼 일단 선생님 따라와.”

바지 하나를 쥐여주고 “입고 나오세요.”

한참이 지나 쭈뼛쭈뼛 나온 재범이가 어색한 듯 몸을 배배 꼬며 서 있다.


“벗고 이거 입어봐.”

이렇게 재범이는 프리티우먼에 나오는 줄리아 로버츠처럼 탈의실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몇 개나 갈아입었을까? 겨우 바지하나 건졌다.

“바지 단 수선 해주세요.”

“네. 그런데 너무 긴 거 아니에요?”

“앞으로 키가 클 거라서. 접어 입어야죠.”

그리고 아이들을 챙겨 다음 아웃렛으로 출발했다.

도착한 아웃렛에서 무수히 많은 패딩을 입어보고, 벗고, 입어보고, 벗고, 아이가 되도록 오래 입었으면 하는 마음에 XL 크기로 고르다 보니, 입는 옷들마다 부자연스럽다. 지쳐갈 무렵 줄세개 스포츠에서 아이에게 딱 맞는 겉옷을 찾았다.

“재범아, 좀 크지? 그래도 클 거니까. 살만 안 찌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입지 않을까?”

재범이도 마음에 든다며 좋아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진다. 가격이 부담스러운가 보다.

“부담스러워? 하지만 선생님이 말했듯 따듯하게 오래 입을 옷을 사기 위해 장학금을 받은 거잖아. 아까워하지 말자.”

“선생님, 저 쇼핑이 처음이라 그래요.”

“옷 사러 한 번도 안 와봤어?”

“네, 처음 와봐서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기분은 좋아요.”

안타깝지만 어쩌겠나.


쇼핑의 끝이 보이고, 쫓아다니며 재범이를 돌봐주던 디엔이에게 두부가 재킷을 선물하고 싶단다. “우리 디엔이 많이 컸네. 동생도 잘 돌보고. 이모가 기특해서 사주는 거야.”

이렇게 디엔이도 영화의 주인공처럼 온갖 종류의 겉옷을 입고 포즈를 잡아보다 아이템 획득.

두부와 디엔이에게 정말 미안하다. 재범이에게 정신이 팔려 두 사람에겐 신경도 못 쓰고 있었다.


하늘빛 회색 반코트 같은 신상 패딩과 조끼 패딩, 바지 2개, 후드, 남방까지 구매를 마치고 산천에 있는 우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차에서 졸던 아이들이 거실에서 모두 널브러져 누웠다.

난 방으로 들어가 실과 바늘을 꺼내와 재범이의 바짓단을 줄이기 시작했다. 늦은 밤이라 마음이 급해서인지 꿰맸다 다시 풀어 다시 꿰매기 시작했다.

“재범아, 선생님이 두 번 꿰맸거든, 바지가 짧다 싶을 때 한 단씩 풀면 돼.”

아이들을 태워 서둘러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에 돌아오니 밤 9시, 두부에게 고맙다고 연거푸 말하고 맥주 한잔에 고마움을 한 번 더 담았다.

수업이 있던 날, 재범이가 점퍼를 입고 뛰어 들어왔다. 아이의 얼굴이 무척 밝아지고 웃음기가 돌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선생님은 커피 가지고 올게.”라며 동아리 방을 나섰다.

탕비실에 들어서니 선생님들이 모여 재범이 옷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너무 예쁘고 따뜻해 보여 보기 좋다는 말씀이다.

“너무 큰 점퍼를 사서 좀 속상해요.”라고 말하자 옆에 계신 선생님이 “애들은 크니까요.”라며 수고하셨다며 손을 잡아주신다.


“바짓단도 자르지 못하고 꿰매줬어요. 창피해하지 않아야 할 텐데요.”라고 하니 “재범이는 키 안 클 것 같던데.”라는 재범이 담임.

“아니에요. 클 거예요. 적어도 180까지는 커야지요. 제 소원이지만.”

“그건 엄마 마음이죠.”라는데 ‘엄마 없는 아이에게 담임이라는 사람이 뭐라는 거야’라고 소리치고 재범이 담임 입을 한 대 치고 싶었다.

“제가 엄마는 아니지만 계속 지켜봐 주려고요.”라는 말을 남기고 탕비실을 나왔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그냥 가끔 엄마 해주지 뭐.’


아이들이 떠드는 요리 동아리로 뛰어 들어갔다.

“얘들아 요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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