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반에 담고 햇빛들은 창가에 놓아줄래. 그리고 교실 히터도 틀어놔. 선생님 지금 갈게.”
부랴부랴 이만 닦고 텃밭에서 허브를 따서 봉지에 담고 학교로 출발했다.
창가에 놓여있는 두꺼운 고기들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화를 낸다고 다시 고기가 살아나지 않을 것이고, 먼저 오븐을 켜 15도로 맞췄다.
비닐에 쌓여있는 고기를 꺼내 해동지에 일일이 돌돌 말아 싸고 다시 티타월에 감쌌다. 그리고 오븐을 열어 손을 넣어 온도를 확인한 후 티타월로 감싼 고기를 넣었다.
아이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고기는 어떻게 됐어요?”
“선생님이 심폐소생술 중이야.”
“살아날까요?”
“걱정하지 마! 선생님 실력을 믿어줘.”
“네에~”
“얼른 가. 수업 끝내고 오면 살려 놓을게.”
쌓여있는 택배 상자를 하나씩 열었다.
요리 수업 마지막 날이다. 김 선생님도 마지막 수업을 같이했으면 좋았겠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나와 아이들만의 수업을 하는 날이다.
1년 동안 자린고비처럼 수업을 했었다.
이웃에서 얻어오고, 텃밭에 열심히 키운 채소를 따오고, 집에 있는 고기며 재료를 가져다가 수업을 했었다.
그 결과로 생각보다 많이 남은 재료비로 아이들이 궁금해하던 재료들을 샀다.
냉장고 문을 열고 꺼내 포장지를 열자마자 풍겨오는 향긋한 향을 풍기는 송로버섯.
잘 숙성된 발사믹 비네거.
진한 올리브향을 머금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
요놈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걸뱅이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두툼한 한우 등심 2+ 스테이크와 티본스테이크 그리고 토마호크가 살아나야 제대로 된 스테이크를 만들 텐데 큰일이다.
오븐을 열어 등심을 꺼냈다. ‘오호!’ 언제 얼었냐는 듯 튼실하니 잘 살아났다.
이번엔 티본을 감싸고 있던 티타월을 벗기고 해동지를 펼쳤다. 핏물도 빠지지 않고 잘 녹고 있다. 다시 티타월에 싸서 오븐에 넣었다.
아이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어떻게 됐어요?”
“등심은 잘 살아났습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그런데 선생님 누가 고기를 냉동실에 넣었을까요?”
“글쎄, 어쨌든 잘 녹여서 잘 먹으면 되지.”
“선생님, 택배가 많이 왔어요. 뭐예요?”
“비밀이야. 오늘 할 일이 많으니까. 서두르자.”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3학년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 오늘 그리의 수업 태도가 안 좋아서 상담이 필요하네요. 끝나면 보낼게요.”
뒤돌아 나가는 선생님을 쫓아 나갔다.
“저 선생님, 안 그래도 추석 때부터 말수가 적어져서 저도 많이 걱정하고 있어요. 그나마 요리 수업에선 말도 하고 아이들과 장난도 쳐서 다행이라 생각은 하지만. 얼마 전 그리 어머님과 장학금 문제로 통화를 했는데 아이에게 너무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으면 하시네요.”
“그리 집에 문제가 있지요?”오히려 선생님이 나에게 물어본다.
“집 문제는 잘 모르겠고. 항상 혼자 있는 듯해요. 음... 다그치면 말을 안 하니까. 처음엔 살살 달래 보세요.”하고 선생님을 그리에게 보냈다.
아이들이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그린빈, 양파, 당근, 마늘을 다듬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가 들어왔다. 가방을 의자에 올려놓더니 말없이 바닥만 바라보고 서있다.
“그리야, 네 맘을 이해 못 해주는 세상이 원망스러워? 지금은 모든 게 그럴 수가 있어. 그렇게 말 안 하고 투정 부리면 세상이 더 안 들어준다.” 아마도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선생님 이야기만 듣다가 끝이 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스테이크 한다고 들떠있는 아이를 붙잡고 “넌 오늘 수업 태도가 안 좋았으니 상담이 끝나면 가.”라고 말을 했으니 더더욱 입을 꼭 다물고 원망스러운 마음만 품고 있었을 거다.
“그리 얼른 손 씻고 이리 튀어와.”
앞치마를 매고 나이트릴 장갑을 끼고 내 앞에 서 있는 녀석은 아직도 바닥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