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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못난 글

옆에 옆집 할머니 무숫잎 짐치

김치 몇 개만 있어도 반찬 걱정은 없지.

by 서진


현관문을 열고 닫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오늘도 역시나 옆에 옆집 할머니는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할머니가 고개를 숙이고 텃밭에 또 어떤 채소를 심을 준비하는지 종묘 판에 상토를 담고 계시네요.

“오늘도 바쁘시네. 뭐 심으시려고요?”

“깻순, 오늘은 한가하당가? 앉지 말어야. 나 혼자 해도됭께”
“몇 판 안 되네 같이해요. 아! 장갑, 장갑 가져올게요.”

앞에 새 유모차는 나들이 용, 뒤에 낡은 유모차는 텃밭용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날이 계속되면서 할머니는 동네 친구들과 아파트 너머로 보이는 텃밭에 종자를 심고 수확하며, 그 수확한 텃밭 채소로 장아찌, 김치 그리고 자식들에게 줄 나물을 준비합니다. 굽은 허리를 유모차에 기대, 텃밭으로 아래에 있는 아래층 출입구나 경로당으로 오르락내리락, 현관문이 닫힐 새가 없습니다.


“요 의자. 쪼글티고 있으면 다리저린께”

“몇 개나 한다고. 내가 구멍을 낼 테니까, 할머니가 씨 넣으셔요.”

“안 피곤혀?”

“오늘은 종일 집에 있다가 동네 한 바퀴 돌러 나오는 중이었어요. 다리 운동도 해야지.”

“요즘 아들은 잘 안 오는가? 안 비데.”

“벌써 대학교 4학년이에요. 학교기숙사에서 지내요. 여기랑 학교가 멀어서 제가 일 있을 때 나가서 만나고 와요.”

“그려, 시가집에 있는 게 아니고.”

“시댁이 여기가 아니라.”

“시가집이 여가 아녀? 바깥양반은?”

“하하하, 없어요.”

“없어?”

“이혼한 지 오래됐어요.”

“아이고 난 시가집이서 가져다 먹는 줄 알았지이. 짐치 좀 챙겨 줄 것을. 반찬은 어떻게 해 먹는가? 전번에 무숫잎 봤지야. 짐치 담았응께 이따 가지고가이.”

“아이고, 저도 명색이 요리산데 김치 담고, 반찬도 해 먹어요. 저번에 드린 딸기잼은 다 드셨어요. 달지 않아서 안 좋아하실까 봐.”

“나 당거 별로 좋아하지 않어. 할마씨들 불러 맛나게 잘 묵었지.”

처음 작업실을 얻었을 때는 한 1년 지내볼까 했는데 벌써 5년입니다.

할머니와 이웃으로 5년을 살았습니다.

그 흔하디 흔한 호구조사 한번 안 한 사입니다. 으레 할머니들이나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 고향이 어디냐?, 아이는 몇이냐?, 나이는 몇이냐? 등등 시시콜콜 알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물어보는데, 할머니는 '이사 왔는갑네."라는 말뿐이었고, 얼굴을 마주치면 "잘 지내는가? 바쁜가 보네."가 전부였어요.


그동안 지내면서 할머니와는 시골집 텃밭에서 나오는 채소도 나누어 드리고 캐 온 죽순도 나누어 드리면 할머니는 텃밭에서 나온 푸성귀로 만든 김치를 문 앞에 두고 가셨더랬죠.

출근길에 만난 허리 굽은 옆에 옆집 할머니가 지팡이 집고 마실 가실 때 마주치면 태워다 드리고, 집 앞에서 마주치면 짐 가방도 받아 들고 같이 걸어가고, 아이들과 만든 요리도 가져다 드렸다. ‘맨날 받기만 해서 미안헌디.’라는 나의 외할머니 닮은 옆에 옆집 할머니랑 마주치는 게 좋습니다.


종묘 판 10개에 깨를 심고 상토를 사르르 올려 꾹꾹 눌러 담고, 현관 앞 복도에 흩날린 흙을 쓸고 정리하며, 네가 해라? 내가 할게? 말 한마디 없이 끝냈어요.


“할머니, 종묘판은 밭으로 가지고 갈 거게요?”

“아니. 베란다에 좀 날라줄랑가?”

나는 종묘 판 반을 들고 할머니 집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들어섭니다. 예쁜 꽃들이 환하게 피어있는 화분대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고, 세탁기에 살림살이가 깔끔하게 정리된 베란다엔 놓을 곳이…. 아무리 10개밖에 안 되는 종묘 판이지만, 저 좁은 곳에 어떻게 펼쳐놓는다는 것이지 묘판을 들고 할머니를 바라봤지요.


“내가 넘어가서 받을랑게. 넘기바.”라고 하시더니 베란다 커다란 통창을 열고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된 곳을 가리킵니다.

“이 난간을 넘어가신다고요? 위험한데. 제가 갈게요.”

“아녀, 내가 가야햐. 지둘러바.”


할머니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가볍게 실외기에 올려진 나무 널빤지를 밟고 넘어가 몸을 훽 돌리시더니 두 손을 내미네요.

“언능 줘바.” 할머니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두 손을 흔들며 ‘어여, 어여’ 날 재촉했어요.

종묘판 10개를 아슬아슬한 아파트 입구 처마 위에 펼치고 다시 베란다로 넘어오시더니, “고맙네.”라며 항상 그랬던 것처럼, 물주는 호스를 들고 수도꼭지를 돌려 종묘 판에 물을 주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종묘 판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나는 빠른 속도로 집으로 돌아가 얼마 전에 담은 오이지와 며칠 전에 만든 사과잼을 챙겨 나왔지요.

고새 할머니가 보물창고로 쓰는 복도 보일러실에서 무언가 꺼내고 계셨습니다.

“비니루랑 덮게도 있어야제. 그건 뭐데?”

“딸기잼 다 드셨다 해서요. 사과잼이랑 오이소박이요.많지는 않아요.”

“또 줘. 뭘 맨날 줘.”

“잠깐만, 잠깐만, 이거 할머니 집에 두고 나와서 내가 비닐 꺼낼게요.”


할머니가 제법 두툼하고 기다란 멀칭 비닐 두루마리를 낑낑대며 꺼내려 몸을 이리 돌렸다가 저리 돌렸다가, 꺼냈다 넣었다, 휜 허리를 뒤로 젖히고 씨름하고 있네요.

내가 들어도 묵직했던 비닐 두루마리를 아파트 복도에 펼쳐 잘라내고, 할머니가 베란다 난간을 넘어 비닐과 채광용 그물망을 종묘 판 위에 덮고 다시 넘어오셨습니다.

내 친구가 그랬더라면 손뼉을 쳐주며 ‘대단해! 대단해!’를 외쳤을 텐데. “할머니 조심하세요.”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을 거예요.

“더 할 일이 있을까요?”

“끝나붓네.”

“그럼 저 가요.”

“얼레, 잠깐 기둘러, 무숫잎 짐채 가져가라니까. 한나는 못 줘도 요 통으로 하나 담가 줄랑게. ”

할머니에 조심조심 움직이시라는 인사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나갔던 건지 잃어버렸네요.

아! 맞다. 산책 겸 슈퍼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지나갑니다.



할머니의 무숫잎 김치.


열무가 나오는 봄이면 열무로 담고 무가 나올 때는 어린 무잎으로 담아낸다.


내가 전라도 음식 중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입이 시원하고 개운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새우깡에 손이 가는 수보다 손이 더 많이 가는 느낌!

일반적인 열무김치나 무잎으로 담은 김치와 확실히 차이가 난다.


양념은 학독에 넣고 갈아서 믹서에 간 것보다 거친 양념을 사용한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것을 나는 좋아하지만, 매운 김치를 좋아하는 분들은 고춧가루를 쓰기보다 생고추나 마른 고추를 물에 불리고 갈아서 넣고 있다.

무잎이나 열무는 자르지 않고 보통 통으로 소금에 절여 통으로 담아낸다.

다른 전라도 김치보다 젓갈이 덜 들어간다.

내일은 할머니에게 부탁해 같이 만들어보자고 해야겠다


학독은 항아리 뚜껑 같은 그릇인데 그 안에 오돌토돌하게 만들어 짧고 넙데데하게 생긴 공이로 곡식이나 양념을 갈아 때 쓰는 기구이다. 원래는 옹기가 아니라 돌절구처럼 돌로 만들었으나 무거운 돌보다 가벼운 옹기로 구워 만들었다.

지금은 간편하게 사용 수 있는 믹서나 푸드프로세서 같은 양념을 갈아 쓸 수 있는 전자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보기 힘든 물건일 것이다.

학독, 확독,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나의 백오이소밖이.


오이는 적당한 크기?? 6cm 정도로 토막을 내고 세워서 열십자로 자른다. 주의할 점은 조각이 나지 않게 끝까지 자르지 않도록 노력한다.

소금을 자른 부위까지 골고루 넣어 골고루 절여준다.

잘 절여진 오이를 자른 부위가 아래로 갈 수 있게 뒤집어 체망에 올려 수분을 빼준다.

무, 양파 그리고 당근을 씻어서 껍질을 벗기고 곱게 채 썬다.

부추는 씻어 물기를 제거하고 무, 양파 그리고 당근 채와 같은 크기로 썰어준다.

사과, 배 그리고 무즙을 믹서에 넣고 마늘, 생강, 새우젓, 까나리 액젓 그리고 설탕 약간 넣고 믹서에서 곱게 갈아준다.

곱게 갈아놓은 양념에 채를 썬 채소를 넣고 살살 버무려준 후, 십자로 썰리고 물기가 빠진 오이 속에 채운다.


이로써 우리 집엔 파김치처럼 만들어놓은 부추김치와 무와 배추로 만든 겉절이, 오이지, 김장김치, 동치미 그리고 할머니가 주신 무숫잎 김치까지 한동안 김치 걱정은 안 하고 살아도 될 것 같다.




사진 출처

옹기민속박물관 소장 확독과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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