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옆집 할머니 새미 미역국과 얼갈이 짐치 그리고 친구의 임연수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아직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어슴푸레하면 일어날 시간이 안 됐다는 건데,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잘못 들었을 거라 믿고 다시 베개를 끌어당겼습니다.
다시 아침 일찍 찾아 올 사람 없는 우리 집 현관문을 누군가 힘껏 두드렸어요.
이불을 박참과 동시에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기어들어가 듯 소리쳤습니다.
“누구~세요?”
“나여, 문 열어봐.”
옆에 옆집 할머니였습니다.
“걍 열어, 옷 안 입어도 된당께.”라고 소리치는 쩌렁쩌렁한 소리가 모두의 새벽잠을 깨울 것 같아 얼른 문을 열었습니다.
현관문이 열자마자 냅다 들어오는 통.
“짐치. 받어. 언능.”
“이 새벽에?”
“노인네가 잠이 있당가. 어제 절여놨다 인나자마자 버무릿지.”
“들어오세요. 고생했네. 차라도 한잔 드시고 가세요.”
할머니는 “더 자. 나 인자 집 치워야 한당게.”라고 말하며 재빨리 뒤 돌아 집을 향에 앞만 보고 굽은 허리로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빠르게 걸어가시는 걸 천천히 바라보았습니다.
집 앞에 다다른 할머니가 날 바라보고 “들가. 자. 자.”라며 손을 까닥까닥 몇 번 움직이더니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셨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이제부터 동네에 게으름뱅이라고 소문이 날 것 같습니다.
집으로 들어와 싱크대에 놓인 김치통을 열었습니다.
으음~
얼갈이김치가 들어있었습니다.
하루 전이었지요. 할머니를 아파트 앞에서 만났어요. 할머니가 오일장에 다녀오시는 길이었나 봅니다. 하여간 참 부지런하십니다. 난 이제 하루를 시작하려 하는데 할머니는 한 땟거리 먼저 가시고 계셨습니다. 짐치를 담으려고 장에 갔다 오셨답니다.
외(참외)를 아주 싸게 샀다네요. 오는 길에 아는 할마씨에게 몇 개 챙겨주고 왔는데도 커다란 봉투에 가득하다며 참외 봉투를 들어 올립니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귀여워질 수 있을까요?
할머니의 장바구니를 들고 할머니 집 앞까지 오는 길 내내 오일장에 있었던 이야기,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 이야기, 다음 장날에 해야 할 이야기를 늘어놓으셨죠.
옆집 할머니들도 아침 운동 가시려는지 현관문을 열고 나오셔 유모차에 몸을 기댑니다.
“할매 외 하나 드쑈.”
제가 할머니가 봐온 과일이며 쪽파, 대파, 까만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할머니 집 안으로 옮기는 사이, 옆집 할머니께 오다가 만난 할머니에게 준 참외 이야기하며 얼마나 싸게 샀는지 자랑을 늘어놓고 계셨죠.
집으로 돌아가려던 저를 부르더니 집으로 들어오랍니다.
“바쁜가? 좀만 지둘려봐.”
할머니가 새우를 꺼내 한번 휘리릭 씻고 커다란 냄비에 담겨있는 미역에 넣어 뒤적뒤적 볶고, 물을 부어 미역국을 끓이며, “아적 밥 안 먹었지야. 새미 안당가? 새우. 실혀서 한 소쿠리 샀는디.”라더니 조그만 냄비를 꺼냅니다.
할머니가 싱크대에 기대어 바글바글 뽀얗게 우러난 미역국을 한 냄비 담아 저에게 주셨습니다.
거기에 덤으로 저의 한 주먹보다 크지만 두 주 먹이라고 하기엔 커다란 참외도 주셨지요.
할머니가 주신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고 나가면 좋으련만,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저녁밥으로 미뤄 두기로 했죠. 그러나 저녁에도 아쉽게 미역국을 먹지 못했습니다.
떡 만드는 재미에 홀딱 빠진 친구와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습니다. 그 친구와 밥을 먹고 일 보려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고, 내가 사는 읍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로 향했습니다.
‘우리 동네 짜장면은 맛이 없어’라는 말을 기억했는지 짜장면을 먹으러 가자고 합니다.
간짜장보다 일반 짜장을 좋아하는 저는 짜장면을, 밥을 좋아하는 그녀는 짬뽕 밥을 시켰습니다.
오랜만에 먹는 중국요리라 그런지 맛있었지요.
식사를 마치고 그녀를 집에 태워다 주었는데, 잠시 기다리라더니 집으로 뛰어가다시피 걸어 들어갔습니다. 스티로폼 상자를 들고 내려옵니다.
“네가 자주 오면 안 얼릴 텐데.”라며 박스를 차에 실어 줬습니다. 요즘 학원에서 배우고 있는 각종떡을 종류별로 얼려 놓았답니다.
밥은 싫어하는데 떡을 좋아하는 떡순이 친구가 생각나서 챙겨 놨답니다.
“박스 안에 너 좋아하는 생선도 두 마리 넣었다. 저녁에 일찍 들어가면 구워 먹어.”라더니 한 미소 지으며 조심해 가라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인가 봅니다.
결국 그날도 미역국도 못 먹고, 생선도 못 구워 먹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옆에 옆집 할머니 친구가 준 미역국과 직장 동료이자 상사였던 친구가 챙겨준 임연수어를 구워 먹을 생각입니다.
평소 같으면 바쁜데 대충 국그릇에 밥 말아, 조그만 김치통에 담긴 김치를 꺼내고, 구운 생선이 올려진 조그만 프라이팬 채 놓고 먹었겠으나, 나를 위해 챙겨준 귀한 음식을 귀한 그릇에 담아 먹어 볼까 합니다.
생선은 유경자 도예가 선생님 작품에 할머니 미역국과 짐치는 이천 운공방 연꽃무늬 백자에 담았습니다.
투박한 옹기그릇에 후루룩 국수를 말거나, 냉장고에서 나온 각종 채소나 나물이 들어간 보리 비빔밥도 좋아하지요. 은은한 빛을 띠는 한식과 화려한 음식을 은은한 색으로 품위를 곁들여주는 청자가 품어내는 우아함에 매료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오늘은 평범할지도 모르는 음식을 고귀하게 올려주는 백자에 나의 친구들 음식을 담아요.
다음 주말엔 할머니께 크림 파스타를 만들어 드려 볼까 합니다.
전에 살짝 여쭤보니
“없어 못 먹제.”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옆에 옆집 할머니와 베프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