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와 나는 얻어 온 쇠지주대 몇 개를 제외하고는 고추, 가지, 토마토, 호박, 오이, 그린빈의 가지와 줄기용 지주대로 대나무를 이용한다. 이번 주 안에 열심히 자라는 채소에게 지주대를 세워줘야 자리를 잡는데, 장마인지 그냥 비인지 줄기차게 오는 바람에 대나무 장만이 늦어 버렸다.
두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부야, 대나무 어떻게 하지?”
“언니, 나 지금 왕대 자르고 있는데.” 헥헥 거리는 두부 소리와 대나무 잎사귀들이 스치는 소리가 같이 들린다.
“혼자? 힘들게? 어떻게?” 변덕스러운 날씨 좀 보고 자르자 했더니, 두부가 그새 자르고 있다. 성격 급한 것도 병이다.
“비 안 오길래 하고 있어. 그런데 대박이야.” 두부가 뭔가 신기한 걸 발견했나 보다.
“방역복 입고 대밭에 들어왔거든, 모기가 못 물어. 나 지금 한방도 안 물렸어!” 흥분한 목소리로 방역복의 우수성을 설명한다.
“진짜?” 이건 대발견인데.
작년에 텃밭을 가꾸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모기와의 혈투였다. 두꺼운 긴팔 웃옷과 바지 입고 양말을 종아리까지 올리고도 모기는 어떻게든 우리의 피를 빨아먹었다. 집에 들어와 씻고 나면 뻘겋게 올라온 부위가 가려워 잠을 못 잤었다.
몸에 뿌리는 모기퇴치제를 온몸에서 합성 오렌지 향기가 풀풀 풍길 정도로 뿌렸지만 모기는 물러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우리 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한숨을 지을 수밖에 없다.
동: 시멘트 벽돌 담장 안에 봄이 시작되면 풀들의 사투가 벌어진다. 먼저 머윗대가 빼곡히 자리를 잡는다. 그러다 보면 돼지감자 싹이 올라오면서 머윗대를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한다. 돼지감자가 알을 품으며 자리를 잡는 동안,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싯대가 휘젓고 다니며 남은 머윗대와 돼지감자를 쓰러뜨렸다. 옆집 마당은 집보다 세배나 크고 정리 안된 나무들 사이에 펼쳐진, 정글인지 폐허인지 모를 야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모기가 숨어있기엔 최적의 환경이다.
서: 마당을 버린 지 오래됐다. 온갖 잡풀들과 전에 키우던 호박, 화초들이 뒤엉켜 허리 높이까지 잘 자라고 있다. 들고양이들이 아주 좋아한다. 마당에 있는 수돗가와 풀밭을 오가는 모기들도 잘 지낸다.
남: 논이다. 모기가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우기 너무 좋은 환경이다.
북: 엄청난 크기의 밭이 있다. 처음엔 소작농을 주어 깔끔한 밭이었는데. 땅주인이 수확량을 더 달라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소작농이 떠났다. 봄마다 돌아오지 않는 소작농을 기다리며 밭을 잘 갈아놓아서인지, 강아지풀이 빼곡히 자라 갈대처럼 흔들거리고 있다. 그 사이를 우리 강아지와 고양이가 뛰어다닐 때마다 모기들이 떼 지어 날아오른다.
이런 이유에 우리가 텃밭에서 풀을 좀 뽑을라치면 동서남북에서 '밥 왔다.'하고 모기가 떼거지로 모여든다.
틀어놓은 슈퍼 윈드머신도 소용이 없다. 바람을 뚫고 우리에게 달려와 엉덩이와 팔다리 온몸에 엄청난 공격을 퍼붓는다. 그럼 결국 우리는 후퇴를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린 바람 부는 날을 잡초 뽑는 날로 정했다.
그런데 방역복을 입으면 모기에 안 물린다고?
그건 그렇고
“너 혼자 괜찮겠어? 언니가 지금 갈까?” 15개 정도의 왕대를 잘라와야 하는데, 두부 혼자 어떻게 한다는 건지.
“언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싣고 갈 수가 없겠어.” 가끔 대책 없이 일을 하는 녀석이 걱정된다.
“두부야, 그럼 철부지에게 전화해 봐.” 전에 퇴비 실어다 준 착한 놈.
“그럴까? 그럼 언니 올래?” 아무래도 녀석이 일을 크게 벌인 것 같다.
“지금 갈게.”
전화를 끊자마자 선크림을 바르고 장화와 장갑을 싣고 두부가 있는 대밭으로 향했다.
도착한 대밭에 두부가 안 보인다. 쓱싹쓱싹 소리가 나는 걸 보니 그때까지도 왕죽을 베고 있었다.
“언니 몇 개만 더하고, 나 이제 톱질 잘해. 톱을 몇 번 왔다 갔다만 해도 잘려.” 잘 보니 녀석은 대나무에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니다. 톱질에 빠져 귀신에 홀린 듯 대나무를 베고 있다. 톱은 두부의 제2의 드릴이 된 것 같다.
“두부야, 진짜 모기 안 물려?” 그런데 방역복이 너무 더워 보인다.
“응. 안 물려, 그런데 땀이 너무나. 땀복보다 더 많이 나와. 모기 물리는 것보다 낫지. 언니 나 진짜 많이 잘라놨지?”
"응, 길동이 집, 노랭이 집 만들고 마당도 만들어 줄 수 있겠다. 조금만 더 베면 우리 살 집도 짓겠네."
두부야, 고생했은 했다만, 그나저나 저 많은 대나무를 어찌하나, 집 한쪽 구석에 대나무 모셔둘 공간을 찾아봐야겠다.
“언니 여기에 놔둘까?” 대나무를 들고 이리저리 옮기며 눈동자를 굴리는 두부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난 알 수 없다. 그리고 뭐가 그리 다급한지 갑자기 서두르기 시작한다.
"일단 잔가지부터 자르자." 일은 순서대로 해야지 급하게 서두르면 안 된다고, 난 잔소리를 시작했다.
"나 폐수처리장에 올라가 봐야 돼."라며 생각보다 대나무를 자르느라 시간을 지체했다며 두부가 걱정하고 있다.
"이따 아는 분이 오셔서 전기톱으로 잘라준대서 정리를 해놔야 하는데. 여기가 좋을까 언니?" 그래서 두부가 더 많은 대나무를 잘라놨구나. 도우미 오지, 트럭 기사 오지, 전기톱 오지.
우리 두부 손 정말 크다.
“그건 그렇고 그 방역복 짱이다. 원피스네. 입고 벗기 편하겠다.” 두부가 입고 있는 방역복을 요리조리 살폈다. 난 방역복을 처음 본다.
“언니 안 그래도 한 박스 샀어. 잘했지?” 라며 자기가 입고 있는 방역복을 살펴보고 만져보며 뿌듯해하는 두부.
그런데 대나무를 자르기 좋게 모아놓고 보니 정말 많다. 조금만 더 베오면 그늘막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다음날,
철부지가 왕대를 포터에 싣고 왔다.
“누님, 나 죽겄는디. 시원한 거 좀.”
와이프와 아이들이 없어, 오랜만에 축배를 들었다는 철부지는 얼굴이 허해져서 왔다.
“자 여기 생강 에이드.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와이프가 친정 갔당께. 이런 날은 마셔 주야제. 근디 이번엔 뭔 대나무를 이렇게 많이 했다요?”
“두부에게 물어봐~아. 두부는 말해봐~아. 너 퇴비 생각 안 나?”
철부지가 ok. ok 하며 손을 휘젓는다.
“같이 밥 먹고 가야 허는디, 난 가서 자야것소.”
“그래, 어서 가. 술 좀 작작 마시고.”
예 예 대답을 하고 철부지는 유유히 사라졌다.
약속이나 한 듯 두부와 나는 대나무를 뒤로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책상에 앉아 심각하게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오이, 기둥 2개에 못을 박고 그물을 걸친다.
호박, 기둥 6개에 왕죽을 반으로 갈라 X자로 기둥 사이를 잡아주고 지붕을 올린다. 골대처럼 생긴 지지대에 그물을 친다. 기둥 6개, 가른 왕죽 14개
그린빈, 기둥 5개에 반으로 가른 왕죽으로 X자로 기둥을 잡아주고 그물을 두른다. 기둥 5개, 가른 왕죽 5개
가지, 방울토마토, 고추는 기둥 6개씩, X자로 잡아주고 줄을 친다. 기둥 18개, 가른 왕죽 28개
“올해는 이렇게 해보고…. 내년엔 실력이 더 늘겠지?”
“언니 우리 이 정도면 잘하는 거야!” 우리는 서로 칭찬을 참 잘해준다.
우리는 옆 창고 집으로 가서 방역복을 입었다. 그리고 호기롭게 모기가 둥지를 틀고 있는 풀밭에 방석을 깔고 앉아 풀을 메기 시작. 모기가 눈앞에서 윙윙 거리다 다리 쪽에 4마리나 앉았는데 물지 못한다. 방역복 이거 물건이네.
텃밭을 정리하며 모기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잊고 풀을 뽑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비가 온다. 비가 눈으론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많이 오지는 않겠다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 똑똑 한 방울씩 비를 맞는 기분이 든다. 비가 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 다시 일을 시작. 잠시 후 또 빗방울을 맞았다. 손바닥 펴 들어 비가 떨어지는 보려 했으나 떨어지지 않아, 다시 하늘을 봤다. 비는 안 오는데.
난 가만히 서서 다시 비가 떨어지길 기다려 본다. 그런데 방역복 안으로 물이 떨어졌다. 방역복 안쪽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대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