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지가 주인을 산책시키는 시간. 2-7

다이어트 -05

by 서진

'두부야, 길동이가 3번째 구토를 했는데.’

한참이 지나도 문자를 보지 않는다. 바쁜가?

길동이가 4번째 노란 물을 뱉어낸다.

이럴 땐 답답하다. 동물하고 대화할 수 있는 통역기는 없나?

길동이는 이름 그대로 길에서 살다 들어온 강아지다.

두부는 길동이를 10년째 키우고 있다.

10년 전 두부 결혼식 날

드레스가 아닌 한복을 입고 전통 혼례를 한 두부.

보통 전통 혼례라 하면 신랑이 두부 네로 장가를 가야 했다. 하지만 MZ세대 두부는 절차를 깨고 신랑네로 먼저 시집을 갔다.

두부가 시댁 앞마당에서 전통 혼례를 하던 날, 그녀가 와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거금을 들여 시골 미장원에서 올림머리를 해줬다. 그리고 한복을 입고 두부의 한쪽 팔을 잡는 수모 역할을 했다.


두부 시댁 마당엔 많은 사람이 다 모였었다. 옆동네, 앞동네, 뒷동네.

진짜 동네잔치를 했다.

시골 총각과 대학 나온 서울 처자의 전통 결혼식을 취재한다고 지역 신문사 기자도 왔었다.

그날, 길동이도 있었다.


길에서 눈칫밥 꽤 먹은 길동인 화려한 옷을 입은 두부가 주인공이라는 걸 대번에 알아본 것 같았다.

결혼식 후 두부를 따라간 길동인 아침저녁으로 그녀의 집을 찾았다.

처음엔 길동이가 고양이 사료를 뺏어 먹다 두부가 던진 돌을 피해 도망을 갔다. 길동인 점점 돌을 피하는 능력이 생기더니, 아침저녁이 아닌 시간에도 자주 오기 시작했다고 두부가 그때 일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했다.


어느 날부턴가 두부도 돌멩이 던지는 실력이 늘었는지, 요리조리 피하는 길동이를 맞췄다고 했다. 똥손 두부가 어떻게 맞췄는지는 나도 의문이지만 어쩌면 길동이가 일부러 맞아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그날부터 고양이 사료그릇에 있는 사료를 같이 먹을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싫다더니 왜 밥을 준 거야?” 내가 물었었던 적이 있었다.

“돌 던진 게 미안해서.” 그때쯤 두부의 결혼 생활이 힘들어지기 시작하고, 불쌍한 길동이에게 감정이입이 되며 두부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길동이는 두부의 집을 열심히 찾아가 본견의 밥그릇도 장만했다. 그리고 두부네 집 안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밖으로 놀러 나가기 시작하며, 두부네 집은 길동이 집도 됐다.

내가 볼 때는 두부가 길동이를 길들이고 있다기보다 끈질긴 길동이의 인내심이 두부를 길들인 것 같았다.


어쩌면 길동인 시집살이로 힘들지 모를 두부의 시간을 같이 해주기 위해 따라왔었다고 난 생각했다.

길동인 두부가 시댁에서 나올 때까지 두부 곁을 지켜줬다. 이젠 두부와 길동이는 서로의 의지가 되어주는 둘도 없는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두부와 길동인 둘이서 이 집으로 이사를 했다.


길동이의 끈기로 인해 일어난 일화들이 많지만 일단 접고. 먼저 길동이의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

두부에게서 아직도 문자가 없다. 난 그냥 길동이를 들고 병원에 가야 할지 아니면 두부를 기다려야 할지 갈등하고 있다.

만약에 길동이를 들고 병원에 갔다가, 보기보다 성질 드런 두부에게 한소리 듣지 싶다.


길동이 뱃속이 탈이 나는 날은 여지없이 녀석 혼자 산책을 갔다 온 날이었는데.


두부는 하루에 세 번 이상 길동이와 산책을 했었다.

길동이가 대소변을 집안에서 해결하지 않아, 그녀가 데리고 같이 산책하던지, 길동이 혼자 볼일을 보고 들어와야 했다.

내가 이사를 오고, 나랑도 한 번씩 산책하러 나가기 시작하며 두부가 길동이와 같이 산책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언제부터인가 길동이 혼자 돌아다니다 오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더니 두부는 살이 찌기 시작하고, 길동이는 자유견이 되었다.


자유견 길동이는 혼자 나갔다 오는 날이 많아지면서 사료를 안 먹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온몸에 고춧가루나 소똥으로 범벅을 해서 들어왔고 네 발이 시꺼멓고, 몸에서 짬 냄새가 났고. 들어올 때마다 입을 쩝쩝댔다. 이 시끼 짬밥을 먹고 다니고 있었다.


우리 길동이는 짬밥으로 위를 단련시켰다.

이제는 유박(거름)을 먹어도 멀쩡하다. 의사 선생님도 길동이의 소화력에 감탄하신다.

길동이가 사람 나이로 치면 한 75세 할아버지쯤 된다. 조심해야 할 나인데.

두부는 길동이 몸에 좋다는 사료와 영양제, 간식을 사다 주면서 관리는 뒷전이다. 두부의 게으름이 길동이의 간을 망치고 있다.

작년 한밤, 자는 두부를 깨웠다.

“두부야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길동이가 노란 물을 뱉어내는데 심상치 않아 벌써 9번째야. 잠을 못 자고 계속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며 사시나무 떨듯 떠는데. 빨리빨리.”

“많이 그래?” 두부는 졸려 죽겠다며 귀찮아했다.

“거품도 나오는데, 네 개이니까. 네가 판단해.” 두부의 행동에 난 화가 났다.

내가 화를 내자 두부는 부스스 일어났고, 그 길로 우리는 광주 동물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새벽에 동물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길동이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히 눈치만 보고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꾸벅거리며 존다.


길동이가 의사 선생님 품에 안겨 가면서 '나는 이제 죽는 거냐'는 얼굴로 깨개개개갱 거리며 처량하게 진료실로 들어가고, 진료실에서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길동이가 우리를 불렀다.

그 옆에 누워있던 암에 걸린 강아지가 길동일 얼마나 한심하게 봤을까.

진료실에서 나온 길동이가 부들부들 떨며 두부의 가슴에 안겼다. 사시나무 떨듯 떠는 길동이에게 무슨 일은 없는지 걱정이 돼 바라보았다. 이 시끼 눈빛이 멀쩡했다.

의사 선생님이 엑스레이를 보여주며 물으셨다. “낮에 뼈를 주셨나요?” 하며 길동이 위에 있는 커다란 것을 가리켰다.

“저렇게 큰 뼈를요!?” 쟤는 조그맣게 잘라줘야 먹는 앤 데.

그렇다 길동이가 두부에게 잘게 잘라주는 법을 가르쳤다.

“그럼 모래를 먹었나?” 의사 선생님이 갸우뚱하며 말씀하셨다.

“선생님 개가 모래도 먹나요!? 그것도 이렇게 많이요?” 개를 키워본 나도 저렇게 큰걸, 개가 삼킬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가 키우던 진돗개와 레트리버 믹스견이 길동이보다 몇 배는 컸지만 저렇게 큰 뼈다귀를 삼키는 건 보질 못했다.

“우리 개가 길에서 들어온 애라 짬밥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큰 덩어리는 못 먹던데.” 선생님 무슨 일일까요? 우리도 난감하다는 표정만 지었다.

의사 선생님은 멀쩡한 길동이 진료비를 받기 미안하셨던지, 진돗개 유전자를 14% 가졌다는 도표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며칠 응가를 잘하는지 살펴보고 변을 못 보면 다시 병원에 오고, 변을 잘 보면 소화가 다 된 거라고 말해주셨다.

그렇게 진료비 36만 원을 지불하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언니 온 김에 나주 곰탕 먹고 갈래?”

“출근 시간은?”

“괜찮을 것 같아. 언니 수업은?”

“난 오후야. 한숨 자고 나가면 돼.”

우린 길동이를 째려봤다. 길동인 소화도 되고 피곤한지 잠이 들었다.


아침밥으로 36만 원짜리 곰탕을 먹었다. 밥값 플러스 기름 값하면 더 비싸겠구나.

“언니 길동이 다음에 또 토하면 나한테 먼저 연락해. 가끔 밖에서 상한 음식 먹고 오면 그럴 때 있어. 또 36만 원 나가면 안 되잖아.”

"그래도 길동이가 완전 똥개는 아니라는 걸 알았잖아. 진돗개 14%."


그래서 난 병원도 못 가고 두부를 기다리는 중이다.

두부에게 연락이 옴과 동시에 길동이가 노란 물을 두 군데에 많이도 뱉어놨다.

“어 두부야. 6번. 병원에 갈 준비하고 있을게.”


두부가 왔다.

“언니! 길동이 여기에다 똥 쌌어!”

우리 길동인 절대 집안에서 똥. 오줌 안 싼다.

세상에 조립식 마루 틈에 많이도 싸놨다. 마루 반은 뜯어내야 할 것 같다.

뭘 먹고 왔는지 냄새가 아주 고약하다.

“너 아침에 산책 갔다 왔어?”

“아침에 길동이 오줌만 싸고 들어왔는데, 어제 많이 싸서.”

병원에 갔다.

아무 이상 없다. 차 타고 밖에 나오니 길동인 좋단다.


“똥이었네.”하며 두부를 쳐다봤다.

“앞으로 산책하러 같이 나가야겠어. 똥 쌀 때까지 걸을 거야.” 두부가 작정한 듯 말은 하지만 요럴 때마다 하는 말이라 난 듣지 않는다.


아마도 길동이와 두부는 이삼일 정도 같이 나가다, 두부는 또 방바닥에 눕고 길동이는 혼자 자유견으로 돌아다닐 텐데.


5일 남았다.

다이어트할 생각이 있으면 이제 매일 나가겠지.


길동이 화이팅!

금식용 오리주둥이 착용 연습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