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덥지근한 습기가 확 밀려 들어온다.
얼른 문을 닫았다.
동서남북에서 잘 자라는 풀과 벼들 사이에 있는 습기들이 뜨거운 날씨와 손을 잡고 공중위로 뛰어오르나 보다.
오늘도 문 열어 놓기는 글렀다.
길동이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하루를 굶겼다. 그리고 밥을 주었다. 이 시끼 안 먹는다.
짬밥 생각이 나나 보다. 내가 문쪽으로만 가면 따라온다.
오리주둥이를 채웠다. 길동이가 난리를 부린다.
“길동아, 어쩔 수 없다. 짬밥과의 이별이 최선이다.” 짬밥과 인사를 하고 오라고 밖으로 내주었다.
나는 고양이 노랭이님의 밥을 챙겨드리고 마당을 둘러보았다.
텃밭 작물들도 잘 자라고 있다.
잔디밭에서 길동이가 오리주둥이를 벗으려고 발버둥이다.
“길동아, 자유견으로 살고 싶다면 짬밥을 끊어내던가, 오리주둥이에 익숙해져야 한다. 강해지거라.”
나도 마음이 아프다.
나는 길동이를 못 본 척하고 텃밭으로 향했다.
호박은 지주대를 늦게 세워 준 탓인지 몸살을 앓더니, 이젠 아보카도 씨만 한 알맹이를 여기저기 품고 있다. 조만간 튼실한 조선의 호박으로 자랄 것 같다.
“호박아~ 난, 네가 빨리 크면, 듬성듬성 너를 썰어서 마른 새우도 넣어 들기름에 볶아, 고춧가루와 새우젓을 넣은 소스와 잘 버무려 호박 짜글이로 만들 날만 기다리고 있단다. 잘 자라주렴.”
그린빈은 대풍이다. 작년보다 키도 크고 튼실한 근육질을 자랑하고 있다. 아무래도 장에 내다 팔아도 될 만큼 무성하다.
비가 오기 전, 달팽이가 너무 많이 들러붙어 고생하던 파슬리를 과감히 싹둑 잘랐었다. 솔직히 제일 많이 쓰는 음식 재료가 죽어버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달팽이 껍데기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난 동서남북을 바라보았다. 저것들이 정리가 안 되는 이상 우리는 달팽이를 비롯한 많은 벌레와 싸워야 한다.
딜과 차이브, 루꼴라, 세이지, 오레가노는 여전히 자생에 성공해 보인다. 다른 녀석들은 정리가 되어 보이는데, 비 오는 사이 나무처럼 자란 루꼴라는 새로 싹을 틔우는 아이들을 위해 뽑아 줘야겠다. 그 옆에 코리앤더도 싹을 틔우는 중이다.
가지가 많이 열렸네, 가지를 구워 말려야겠다. 이렇게 말린 가지를 팬에 깔고 토마토소스를 둘러 자작하게 조린다. 그리고 치즈를 올려준다. 파르미지아노도 좋고, 고트치즈나 체다도 괜찮고, 버팔로 모짜렐라를 넣은 걸 나는 가장 좋아한다. 그 위에 바질을 가늘게 채를 쳐올리고 먹으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즐겁다.
토마토? 토마토가 가장 걱정이다.
매일 오던 비가 잠깐 멈췄을 때, 오이, 호박, 고추, 가지, 토마토 순 자르기를 했다.
“두부야, 아랫부분에 바람이 잘 통해야 병이 안 생겨.” 두부에게 순 자르기를 가르쳐 주었다.
나는 고추 순을 자르다, 옆에서 사부작대는 두부를 봤다. “너 뭐 해? 토마토는 내가 정리했는데.”
두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다. “정리가 안 된 부분이 있어서 내가 정리하고 있어.” 난 두부를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두부가 토마토 가지 한 무더기를 안고 걸어갔다. 난 얼른 토마토에게 가봤다.
'망했다.'
나는 토마토 한 대에 줄기 두 개를 만들어 주었다. 지주대 없이도 잘 커 준 토마토가 고마웠었다.
그. 런. 데.
두부가 곁가지들을 모조리 잘라놓았다.
어떻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지…. 오동통한 줄기에 키만 쭈뼛 커 있다. 햇빛에서 에너지를 받아 광합성을 해줄 잎들도, 서로 의지해줄 곁가지도 하나 없이 두부가 다 잘라 버렸다. 앙상한 가지에 파란 토마토 알맹이들이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두부야 토마토가 어떻게 된 거야?”
“언니가 바람이 잘 통해야 병이 안 생긴다며?” 두부야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내가 고추랑 가지도 잘라줄게. 과감히 잘라줘야 해!” 전지가위를 들고 있는 두부를 난 뚫어지게 봤다.
“언니 왜 그래?” 두부가 고추 쪽으로 걸어갔다.
“두부야 잠깐! 이리 와봐.” 힘없이 쓰러지고 있는 토마토 가지를 두부에게 보여주었다.
“얘가 왜 이래?” 이럴 리가 없다며 두부가 그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바람.” 난 손가락으로 바람 부는 방향을 가리켰다.
“바람이 뭐?” 두부가 바람이 불어 모기 안 물려 좋다며, 오늘은 늦게까지 정리를 할 수 있다고 연신 종알거린다. 나는 내일부터 강풍이 몰려오고 세찬 비도 내린다는데 이렇게 잘라놓으면 토마토들은 어디에 의지하고 기대냐고 물어보았다.
“토마토는 사 먹을까?” 두부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후속 조치가 필요했다. 끈으로 여기저기 동동 매어 주는 사이 토마토의 가지가 꺾였다. 두부가 얼른 가지를 세워봤다. 이미 생을 마감하신 줄기다. 난 두부가 들고 있던 전지가위를 뺏어 잘라 버렸다.
잘린 가지 옆으로 새순이 돋았고, 빨간 열매도 맺고 있다. 여기저기 꺾여 힘들었을 텐데도 잘 버텨주었다.
빨간 방울토마토가 맛있게 열렸다. 두부를 생각하며, 다 따 먹었다.
고추도 주렁주렁 열려있다. 두부에게서 전지가위를 뺏길 잘했다.
올해도 오이는 잘 자라는 중이다. 처음에 더디게 크는 오이가 걱정을 시키더니,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오늘은 늙은 오이냉채를 먹어볼까?
텃밭 그늘 쪽엔, 초봄부터 더워 농원에도 안 나오던 바질이 무성하다. 비실비실하던 타이바질도 건강해져 다행이다.
아스파라거스도 이젠 자리를 잡은 듯하다. 풍성한 잎들이 올라오며 커가고 있다. 내년엔 아스파라거스도 수확할 수 있다.
공심채, 든든합니다.
깻잎은 여전히 얼굴보다 큰 잎들이 펄럭대고 있다.
비가 많이 와, 두둑을 높게 만들어 심어놓은 쌈 채소 모종 형제들도 비에 녹아내리지 않고 우뚝 서있다.
이만하면 두부와 건강한 식단관리엔 별문제가 없을 것 같다.
우리 길동이 아직도 오리주둥이를 벗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길동아 조금만 참아 연습이 필요해.”
가위를 들고 와, 오이도 따고, 가지, 고추, 그린빈, 공심채, 깻잎, 세이지를 따놓고 루꼴라를 정리하려 텃밭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
바람이 멈췄다. 햇살도 뜨거워진다.
모기가 모여들기 시작한다.
지금 내겐 방역복이 필요하다.
따놓은 수확물을 들고 들여놓고, 길동이도 안고 들어왔다.
나는 고민이 생겼다.
'지금 나갈 것이냐. 아니면 해 떨어진 오후에 나갈 것이냐.'
분명 방역복을 입으면 사우나에 온 것처럼 땀이 흐른다. 나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햇빛이 강하면 땀을 더 많이 흘린다.
안 입으면 동서남북에서 날아드는 모기들의 밥이 되어야 한다.
해 넘어가는 오후를 기다려야겠다. 나의 빠른 포기가 최선이라 생각한다.
조용히 노트북을 열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만들었다.
'빠른 포기는 뇌 건강상 좋다.'라고 생각을 하고 '브런치스토리'에 로그인을 했다.
두부와 건강한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선 두부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녀의 생활습관을 돌아봐야 하고. 집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눕는다.
그녀의 평소 생활방식을 되짚어 보고. 예쁘고 깔끔한 마당을 만들고 정리된 텃밭을 가지고 싶지만,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텃밭에서 나온 채소보다, 할머니들의 칭찬을 더 좋아한다.
그녀의 선호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을 비교하고.
좋아하는 음식은 라면, 햄버거, 튀긴 요리, 모든 인스턴트, 모든 국물이 있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은 보양식, 녹색 음식, 두 번 먹는 반찬, 국물 없는 밥상, 조미료가 안 들어간 음식 등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건강한 음식
그녀의 건강 상태. 선천적 만성변비, 여드름, 손발 냉증, 역류성 식도염, 지방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혈압, 또 뭐가 있었지?
앞으로 많은 정리가 필요하다.
일이 점점 커지는데...
걍 되는대로 먹고살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