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기웃기웃 저물고 있다.
이젠 덜 뜨겁겠지, 하고 텃밭으로 향했다. 웬걸 덥다.
더는 미룰 수가 없어 방역복장착을 마쳤다.
괭이초가 잔뜩 퍼졌다. 들고양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여기저기 안 보이는 데가 없다.
바구니에 잡풀을 퍼담고 버리고 퍼담고 버리고를 몇 차례 반목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방역복을 몇 번 입어봤다고 이제는 적응이 된다. 신기하게 눈앞에 시커먼 모기떼가 날아들더니 내 몸에 붙었다, 날았다 하는데도 한방을 못 물고 있다.
방역복 이거 물건이다.
두부가 퇴근하고 돌아왔다.
길동이와 놀아주더니,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방역복을 장착하고 낫을 들고 온다.
“오늘은 텃밭 아래쪽 풀을 메야겠어.”
우린 풀들에 갇혀 지내던 꽃잔디를 살려냈다. 물고랑 옆에 풀 좀 이겨보라고 확산력 좋은 오데코롱을 심어주었는데 제 기능을 못 한다. 그래도 살려줘야지 우째.
이제야 텃밭이 개운하게 보인다.
샤워하고 에어컨 밑에 누웠다.
진짜 사우나를 한 듯, 살이 뽀독뽀독하고 부드럽다.
“언니 사우나 갔다 온 거 같지?”하며 두부가 자기 살을 만져본다. 방역복이 이런 즐거움을 가져다주다니.
“응. 텃밭에 자주 나가줘야겠어.” 두부를 쳐다보자, 그녀가 내 눈길을 피한다.
“뭐 먹지?” 두부야, 그래 이젠 밥을 먹어야지.
“파스타 하려고 세이지 뜯어 놨는데.”
“언니 힘든데 사 먹자.”
그래 며칠 안 남았는데 너 먹고 싶은 거 먹자.
우리 두부가 항상 통통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애국자로 태어났다.
자기는 겪어보지도 못한 감격스럽던 88 올림픽을 가끔 나를 위해 회상시켜 준다.
“언니 내가 88 올림픽 열리는 해에 태어났잖아.”라고 얘기하는 그녀.
"그래, 그때 언니는 고등학생이었고." 진짜 첫사랑이 있었다면 요만한 딸이 있었을까?
임신 중독이었던 어머니에게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이대로 두면 산모도 아기도 위험하다고 얘기하자, 아버지가
“아이는 괜찮으니 아내를 살려 달라.”라고 했단다.
그 이야기를 두부가 뱃속에서 들었는지, 1.6kg의 작은 몸으로 엄마 자궁을 한 달 먼저 빠져나오는 성공을 거두었다.
난 아무래도 두부가 성질이 급해 빠져나온 것 같다. 현재까지 급한 성격은 여전하다.
"언니 내가 제일 날씬했을 때야." 라며 그녀가 웃는다.
두부는 병원 인큐베이터에서 며칠을 지내고, 하루하루를 어머니 아버지의 지극정성을 받으며 자랐다.
문제는 그녀의 먹성이었다. 보통 아기가 하루에 먹어야 할 분유 분량의 두 배정도 더 먹던 두부는 태어난 지 1년이 되던 해 16kg을 찍었다고 자랑이 아닐 것 같은 자랑을 했다.
튼튼히 잘 자라준 건 자랑이니까.
그리고 연이어 두 동생이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삼 남매는 거의 쌍둥이처럼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세 남매가 생긴 것도 똑같았다.
그녀의 결혼식에서 소개받아 본 적 없는 두부의 동생들을 본 순간 “너희 두부 동생이지?”라며 반갑게 인사했을 정도로 얼굴과 몸매가 쌍둥이었다.
가끔 두부가, “언니도 조그만 애들 셋이 앉아서 먹을 것 가지고 싸워봐. 식탐이 생겨. 전투야 전투.”라며 추억에 잠겼다.
“그런데 두부야, 지금 네 여동생은 날씬하잖아.” 내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나도 살을 빼야 할까?”라고 하지만 다이어트를 결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아직도 컨티뉴다.
그건 그렇고.
두부는 넉넉하지는 않지만, '안돼'라는 소리보다 '그럼 해봐.'라고 지지해 주는 바르고 부지런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그녀는 동생들과 먹성으로 싸우며 식탐과 함께 커갔다.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오르는 두부는 중·고 1학년 이후로 맞는 교복을 입어 본 적이 없었다고 회상하며 말을 했다.
"그럼 넌 교복 줄여 입진 안았겠네? 요즘애들 딱 달라붙게 교복 줄여 입는 거 안 예뻐 보여."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댄가보다.
"언니 줄일 틈이 없어." 하하하 웃는 두부.
그리고 아주 건강한 대학생이 되었다.
부모님은 대학 첫 등록금 이후로는 자립을 원하셨고, 착한 두부는 줄줄이 달린 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받고, 용돈은 아르바이트를 충당했다.
시급이라고 해봐야 3,770원, 5시간을 일해도 18,850원 20,000원이 안 되는 돈을 30일이면 565,500원. 옷 사 입고 책사고, 친구들 만날 시간도 없는 날을 보내야 했을 것 같다.
“그땐 삼각김밥이나 편의점 음식 먹으며 살았지. 고등학교 때라고 다르겠어. 영화도 보고 싶고 친구들이랑 놀고 싶으니까 식비 아껴서 놀았지.” 먹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두부의 부모님, 두 분이 다 일을 하신 이유도 있지만,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다 보니 집밥은 거의 먹을 일이 없었다고 했다. 어쩌다 쉬는 날도 집에서 누워,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는 두부.
두부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녀가 왜 식탐이 생겼는지, 누워 있고만 싶은지 이해가 가기도 했다.
나도 두부처럼 밤 10시부터 새벽 6시 알바와 학업을 병행했다면, 꿀같이 달콤한 휴일은 오롯이 나를 위해 쓰지 않았을까? 특별하지 않지만, 모자란 잠을 자고, 발가락 까딱까딱하며 리모컨을 들고 여기저기 볼 것 없는 tv채널을 돌리고, 종일 누워 좋아하는 책을 보고, 핸드폰 스크롤링하며 만화를 보는 그런 20대.
사람은 바쁠 때나 힘이 들 때 일상의 평화를 찾는다. 두부도 그랬겠지.
난 두부를 바라보았다.
“언니 내 얘기 쓰고 있지?”
“응”
“또 뭐라고 쓰는데?” 두부가 내가 쓰고 있던 글이 궁금한가 보다.
내가 쓰던 글을 읽어보던 그녀는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 내 동생들도 대학을 가야 하고, 우리 집 형편이 줄줄이 연년생인 자식들 학비 대기도 힘들고, 부모님도 나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그래도 그 돈 모아 인도 여행도 했잖아.”
이 녀석 겁도 없이 혼자서 인도여행도 했었다. 비행기가 연착돼 기차역에 잠을 잤단다. 겁도 없이.
“나 같은 여행객이라고 착각했지. 난 기차역에서 자는 사람들이 노숙자라고 생각도 못 했어.”
두부는 어쩔 때 보면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
“안 무섭디?” 난 두부처럼 용감하지 못하다. 그래서 인도 여행은 가고 싶지 않다.
“그때는 무섭다기보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일이 많아. 언니가 좋아하는 다즐링차 재배하는 지역도 가봤는데 너무 멋있어. 또 가고 싶다.”
인도 여행을 회상하는 그녀를 보면 행복해 보인다. 어쩌면 인도 여행은 두부가 자신을 위해 만든 첫 선물이었다.
“부럽다 두부야. 언니 같으면 호텔에서 꼼짝도 못 했을 거야.”
이런 두부가 집에만 오면 게을러진다.
지금까지 알바로 힘들었던 20대를 그리고 순탄하지 않았던 결혼 생활을 보상이라도 받아보려는지, 퇴근하면 자연스럽게 옷을 갈아입고 눕는다.
“그래 언니 난 그래서 쉬고 싶은 거야.” 누워서 웃으며 종알대는 두부.
“그렇다고 먹고 바로 누우면 어떻게 해! 용종 다시 키우시려고?” 그녀의 역류성 식도염이 자꾸 재발해서 걱정이다.
“아직은 멀쩡해. 길동아, 산책하러 갈까? 안 그러면 언니가 혼내.”
나와는 너무 다른 딸 같은 두부.
더 잘해줘야겠다.
내일은 너 좋아하는 파스타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