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과 수제 파스타. 2-10
다이어트 -02
“언니 다녀왔어요. 맛있는 냄새, 뭐야?”
“엔쵸비 파스타, 길동이 산책하러 가?”
“응. 한 바퀴 돌아야지.”
“오븐에 이거 넣고 가.”
“뭐야?”
“가지 그라탕.”
오늘은 두부가 싫어하는 가지 요리다.
물컹한 식감이 싫다는 그녀를 위해 가지를 철판에 기름 없이 구워 그라탕과 파스타에 넣어봤다.
고지혈증이 걱정되는 나나 두부는 많이 먹어줘야 하는데 두부는 가지를 싫어한다.
올해도 가지가 풍년인데 다 말리는 건 아깝고, 만두를 만들어야 하나?
“언니 맛있어. 손 많이 갔겠는데.” 맛있게 잘 먹는 두부.
“네가 물컹한 식감을 싫어하잖아. 그래서 구웠지.”라며 난 그녀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원래 그라탕 할 때 가지를 구워?” 두부도 요리에 관심이 많다.
“응. 구워서 넣어야 물기가 덜 생기고, 식감도 좋지. 가지도 90% 이상이 수분이야.” 아~ 나 또 선생님 같이 얘기한다.
두부는 이태리 요리를 좋아한다.
이 녀석, 인도 여행에 이어 자전거를 타고 네덜란드를 지나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에 들어갔고 이태리까지 여행을 했다.
“이태리 그레베에서 우프 할 때가 좋았어. 농장에서 치즈도 만들고, 아주머니가 음식도 만들어 팔았거든. 그때 먹었던 요리들이 어찌나 신선한지 아직도 잊히지 않아. 와인도 기가 막혀.”
유럽 자전거 여행을 하며 우프를 하다 보니, 맛난 가정식 많이 먹고 다녔다.
내가 이태리에 있었을 때만 해도 동네 할머니는 내 할머니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여행할 당시도 여전히 인심은 좋았었던 것 같다.
그레베는 토스카나에 있다. 이 지역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같은 예술가를 후원하며 예술을 발달시킨 메디치가가 있었다. 그리고 피사가 있고, 단테와 푸치니, 마스카니가 살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키안티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많은 예술가와 와인 그리고 올리브가 유명한 이 지역은 음식마저 발달했다.
올리브와 포르치니 버섯을 곁들인 스테이크가 유명한, 이런 곳들을 여행했던 두부는 희한한 입맛을 가지고 있다.
“언니 볼로네제가 볼로냐에서 만든 소스야?” 두부는 언제나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이렇게 물어봤다.
“요즘은 라구살사를 볼로네제라고 하지.”
단순 미트소스 즉 다진 소고기를 넣은 소스를 말해. 볼로냐가 유명해. 이태리 사람이 아닌 다른 외국인이 볼로냐에서 많이 먹으니까 그렇게 불렀다는 것 같아.
두부가 좋아하는 생 파스타를 넣으면 탈리아텔레 알 라구(Tagilatelle al ragu)라 표기해. 그리고 여기에 야채를 더하면 탈리아텔레 알 라구 디 베르두레(Tagilatelle al ragu di verdure).
나 또 선생질이다. 저 녀석이 저녁으로 먹고 싶다는 얘기 같은데.
“이런 얘기를 듣고 싶어 물어본 건 아니지? 왜?”
“만드는데 어려워?” 두부가 배우고 싶어서 물어보는 걸까?
“아니 그렇게 안 어려워. 배워볼래?”
“응”
로즈마리, 타임, 오레가노, 파슬리 줄기를 곱게 다져준다. 다질 때는 내려치듯 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왔다 갔다 밀 듯이 썰어주는 거야. 허브는 으깨지면 쓴 맛이나. 그리고 당근, 셀러리, 양파, 마늘을 곱게 다지고.
약한 불에 마늘과 양파를 넣어 아린 향이 날아갈 때까지 살살 볶아주고, 셀러리와 당근을 넣어 다시 무를 때까지 볶아줘야 해.
그다음 고기를 넣어 잘 풀어지게 볶듯이 익히는 거야.
불을 강하게 올리고 화이트 와인을 뿌리고 빠르게 저어줘. 알코올이 날아가지 않고 남아있으면 역시 쓴 맛이 나요.
약한 불로 줄이고 이제 허브를 넣고 다시 볶듯 저어주세요.
이제 토마토페이스트, 시큼한 맛이 나서 요것도 약한 불에서 오래 저어줘야 단맛만 남아.
난 육수를 살짝 넣고 오래 끓여주는 편이야. 송아지 고기 같이 연한 고기를 넣으면 오래 끓이지 않아도 되지만, 보통 소고기는 부드러운 식감이 나올 때까지 끓여줘야 해.
자, 이제 월계수 잎을 넣고 냄비 뚜껑을 닫고 끓여줍니다.
“언니 언제까지 해야 해?”
“적어도 한 시간. 그래야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단맛이나.”
맛있는 음식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성이 들어가고 음식을 먹을 사람을 생각하며 만든 요리는 언제나 맛이 좋다.
“이리 와봐. 향이 좋지.”
두부는 향을 맡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재료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면 달짝지근한 향이나.”
녀석이 특유의 웃음을 지어주었다.
“자 이제 면을 삶아 소스를 섞어주고, 살짝 볶은 가지, 쥬키니, 당근 그리고 토마토를 올려주면. 나왔습니다. 라따뚜올리 볼로네제 파스타.”
“맛있어. 그때 먹었던 맛이야." 녀석이 엄지 척해줬다.
"이거 왜 이래 언니가 미슐랭에서 일했던 사람이야."
"그래도 나는 못 만들겠다. 어느 세월에 만들어." 두부가 키드키득 웃는다.
두부도 안다. 내가 배우라고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 게 아니라는 걸.
녀석은 항상 내가 요리할 때 옆에 있다. 미안한 마음에 뭐라도 돕고 싶어 한다.
나는 맛있게 먹어주는 두부가 항상 고맙다.
“언니, 베트남에서 먹었던 쌀국수가 생각나.”
“언니, 인도에서 먹는 카레는 만들기 힘들어?”
“언니, 월남쌈 채소는 내가 썰어놓을게, 언니는 소스만 만들어 줄래?”
“언니, 난 도토리묵 국수 좋아하는데 여기는 맛있는 식당이 없어.”
“언니, 오늘 저녁은 뭐야?”
이렇게 먹고 싶은 음식이 많은 두부가 가끔 우울해진다.
두부는 햄버거가 먹고 싶어요.
두부는 라면이 먹고 싶어요.
두부는 참치마요 삼각김밥이 먹고 싶어요.
라는 이상한 우울의 신호를 보내며 힘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족발이 먹고 싶은 날엔 비빔면을 끓이고,
고기를 굽는 날은 라면을 끓이고.
내가 조금이라도 피곤해 보이면
“언니 내가 알아서 먹을게.”라며 잽싸게 일어나 라면을 끓이고. 이럴 땐 두부가 참 빠르다.
오늘은 신라면, 내일은 안성탕면, 다음날은 사골곰탕 라면 또 뭐가 있지?
“언니 오늘도 수업 늦게 끝나지?” 수업 끝나고 집에 와보면 라면을 끓여 먹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언니 왔어~ 나는 가끔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으로 충전을 해줘야 해. 그다음엔 배 두드리고 누워서 핸드폰 스크롤링할 때가 좋아.” 이럴 때마다 행복해하는 두부.
두부야, 언니가 달리 걱정하는 게 아니야 몇 날 며칠을 인스턴트만 먹으니까 그렇지!
이런 행보는 다시 변비로 고생하거나 여드름 그리고 역류성 식도염이 다시 재발을 해야 멈추는 우울함이다.
난 두부를 이해한다. 그녀는 20대 중반까지 삼각김밥과 햄버거, 라면을 먹다 갑자기 여행으로 신세계를 봤다. 그렇다고 먹는 습관이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생활 습관 중 가장 바뀌기 힘든 것이 식습관이다.
나도 면 종류를 좋아한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후라이드치킨. 튀긴 음식은 다 맛있으니까.
“두부야, 나도 후라이드치킨 좋아한다.”
나 또한 멀리해야 하는 음식을 절제하고, 건강한 음식을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바꿔 먹으려 노력할 뿐이다.
누가 그랬다.
‘맛있는 음식이 몸에는 나쁘지만, 행복을 준다.’
어떤 요리사가 했던 말 같은데, 내가 그랬었나?
아무튼 그래서 내 입맛에 맞는 음식만 먹고살면 좋겠지만, 건강은 해치면 안 된다는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두부에게 맞는 식단을 정리해 보기 위해, 그녀를 다시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갑자기 라면을 먹지 말라고는 못 할 것 같다.
그래도 좀 줄여 볼까 두부야.
두부야, 나도 가끔 먹고 싶어. 라면
너 이거 보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