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결심하셨나요? 2-11

다이어트 -01

by 서진

비가 그치더니 갑자기 더워졌다.


태양이 바통을 받아, 비가 퍼부은 어마무시한 수분을 날리며 습지를 만들었다. '더워졌다.'는 비가 안 와서 뽀송하다여야 하는데, 난 꿉꿉하다.

이젠 우리나라도 동남아처럼 되는 건가?


그래도 텃밭을 둘러봐야, 나의 아침이 시작되는 기분. 그 기분 느끼러 나가보자.

초여름부터 비가 많이 온다는 소식에 호박이네 집을 높게 만들어 주었다. 바람이 잘 통해서인지 잘 자라고 있다.

두부가 무지막지하게 잘라주었던 토마토의 싹이 여기저기에서 나와 이젠 앙상함은 사라졌다. 간간이 빨간 열매를 따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맙다. 살아줘서.’

아주 잠깐 이었다. 아주 잠깐 텃밭을 둘러보는데, 태양이 날 따끔하게 찌르며 다가오고 있다. 동서남북 푸르른 잡풀들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가장한 누기를 피해 도망가야겠다.


며칠째 두부가 조용하다.

텃밭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는데, 두부가 시들시들하다. 앞으로 다가올 다짐 때문인가 하는 괜한 내 염려인가 싶기도 하다.

우리 길동이는 시들시들하지는 않은데, 밥도 안 먹고 오늘은 또 헛구역질이다.

“언니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겠지?”

길동이가 우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니, 헛구역질을 한 번 더 추가한다.


“저 시끼 밥 안 먹어도 기운이 없지는 않은데. 길동이 응가는 잘했어?” 길동이를 째리며 두부에게 강아지 상태를 물어봤다.

“많이 쌌어. 약간 묽은 편.” 우리는 길동이를 쳐다보았다.

“사료도 안 먹는 놈이 아직도 나올 변이 많아. 도대체 어디서 뭘 먹고 체한 거야. 아주 많이 드시고 오셨었구먼. 병원에 가야지 뭐. 토요일도 한다지?”두부에게 검색해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두부가 핸드폰으로 검색을 한다. “오늘 9시에 오픈이래.”

우린 다시 의심스러운 눈으로 길동이를 쳐다봤다.

길동이가 슬슬 다가오더니 쓰다듬어달란다. 그리고 헛구역질을 시도한다.

아무래도 연기 같다.

길동이 나이가 얼추, 두부랑 10년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다 커서 들어왔다는 걸 보면 한 2~3년 길거리 생활을 하셨으니 12~13살이네. 사람 나이고 70대 할아버지, 10년을 사람이랑 같이 살아서 그런 건지, 연륜 때문인지 길동이 연기력이 늘었다. 곧 사람이 될 것 같다.


“길동이 걱정하지 말고 출근해.” 오늘 내가 길동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언니 갔다 올게. 길동이 부탁해.” 두부는 미안하다며 출근을 했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그녀의 밝은 인사 소리가 안쓰럽다.

이 후덥지근하고 꿉꿉한 기온을 받아들이며, 에어컨도 없는 폐수처리장에서 일을 한다. 긴 팔 웃옷에 긴바지 입고, 모기도 많을 텐데.

“덥다. 끓여 놓은 시원한 차라도 한 병 가지고 가?”

“언니 폐수처리장에 물 많아. 얼음도 있어.”

녀석, 레몬 하나 가져가다 물에 타 먹으면 좋으련만, 귀찮겠지.


두부를 출근시키고, 난 길동이 (한번 째리고.) 병원을 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길동이를 안아 들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사람에게 안기지 않던 녀석이 지금은 폭 앵겨있다. '좋으냐?'

뜨겁다. 이럴 때 가수 비가 생각나는 건 노래를 잘 만들었다는 거지.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가사도 제대로 모르면서.


병원 문이 닫혀있다. 아직 출근을 안 하셨나? 9신데.

의사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이젠 토요일은 진료하지 않으신단다.

그래도 간단히 강아지 아니 개의 상태를 물어봐 주시고, 월요일까지 상태가 좋아지지 않으면 피검사를 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온 길동이가 밥을 먹는다. 이 녀석 온종일 지켜봤는데 멀쩡하니 괜찮다.

두부의 차 소리가 나자 우리 개님이 달려 나간다. 길동은 멀쩡하다.

“언니 길동인 어때? 어머! 멀쩡하네.” 길동이와 두부는 산책하러 간다더니 다시 돌아왔다.

“니들 밖에서 뭐 하니 더운데? 오이 먹어봐.” 두부의 입에 오이를 넣어줬다.

“저 시끼가 덥다고 안 간데.” 두부가 길동일 째린다.

“응. 우리 길동이 멀쩡하네. 들어와 더워. 도토리묵 국수해놨어.”


오마나, 길동이가 사료를 다 먹었다. 이제 소화가 다 됐나 보다. '저 개님!'


두부가 좋아하는 묵국수를 먹는 둥 마는 둥 국물 좋아하는 두부의 숟가락에 재미가 없다. 기운이 없어 보인다. '오늘도 땀을 많이 흘렸나?'

두부가 디즈니에서 재방하는 '악녀'가 오늘 막방이라며 노트북을 열었다. 하하하 우리 집은 tv가 없다.

열심히 시청을 하며 “어머 어째 어째”하던 두부가 기운 없이 “막방은 내일까지 기다려야 되는구나.”라며 방으로 들어간다.

바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두부 오늘도 힘들었구나.


두부 차?

가끔, 집에 오면 차 창문을 모두 열어 놓는 두부. 혹시나 해서 밖을 내다봤다. 닫혀있다.

요즘 두부 차 안에 땀 냄새로 가득하다.

축축한 땀 냄새를 풍기는 축사직원들 태우고, 점심을 대 먹는 식당까지 두부 차로 이동하는 통에 그들의 냄새가 배어있다.

그 냄새는 비 온 뒤 밀려든 습기와 뜨거운 태양 덕에 냄새가 배가 됐다.

아가씨 차에서 좋은 향은 아니더라도 아저씨 땀 냄새는 내가 생각해도 좀 아니다 싶다. 털털한 두부도 신경 쓰이는지 자주 환기를 시킨다.

"모기 들어가면 어쩌려고?" 두부가 걱정이 돼 물어보면

"냄새보다 모기가 낫지."

두부의 출퇴근 길이 힘들겠다.

동생과 길동이가 자고 있다.

산책 시간은 기가 막히게 잘 아는 길동이가 일어난다.

“두부야, 두부야, 산책하러 가자. 오늘은 언니도 가려고.”

“피곤해.” 두부의 엉덩잇살을 톡톡 두드려줬다.

“아흥, 하지 마.” 두부가 콧소리를 낸다.

“오늘은 달이 밝다. 별도 많이 떴네.”

“언니 어제보다 습기도 덜해.”

우린 오랜만에 척척하지 않은 길을 걷는다.

길동이도 셋이 나오니 좋은가보다. 연신 엉덩이를 흔들며 걷고 있다.


“두부야, 부담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하는 다이어트지만,

두부도

자유를 만끽하며 마냥 올라오는 살을 반기고 주기적으로 병원을 갈 것이냐?
건강해지면서 살도 뺄 것이냐?


이 사이에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나 살을 빼야 해. 이젠 몸도 무겁고. 요즘 생각 없이 막 먹어댔잖아. 맥주도 많이 마시고, 회식도 문제야. 진짜 해보려고.”

두부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이번엔 두부가 고민 끝에 각오를 단단히 했나 보다. 두부의 표정이 다르다.

"그래 너는 회식도 문제야." 정말 회식을 자주 한다. 난 두부가 주에 3번 회식 가는 것도 봤다.

"어쩔 수 없잖아. 회사일인데." 그렇지 회사일인데.


“언니 내일은 뭐 먹어?” 목소리가 맑아졌다.

“응, 오이냉국하고 삼겹살 구이 간장조림 같은 거.”

“그게 뭐야? 그냥 힘든데 구워 먹자.” 날 걱정하는 말이다.

“어떻게 하냐면.”


삼겹살을 팬에 구워서 랙에 올려 식혀 놓은 다음, 삼겹살 구운 팬에 채소를 넣고 볶는 거야.

그다음 육수를 팬에 부어서 살포시 끓여줘.

간장, 매실액, 홍차액, 후추, 페페론치노를 넣고 볶은 채소와 육수를 잘 섞어.

삼겹살을 오븐 팬에 넣고, 잘 섞인 양념과 채소를 부어줘.

삼겹살을 낮은 온도에 맞춘 오븐에 넣어주고 우린 풀 뽑으러 가면 돼.

“두부야, 내일은 풀 뽑아야 해. 잔디밭 쪽을 정리해야겠어.”

“언니, 안 그래도 하려고 했어.”

“두부야 저것 봐. 우리 되게 날씬하게 보이지?”

“그림자잖아.”

“그래도 날씬해 보이잖아. 두부 키도 커 보인다. 다음엔 사진 한 방 찍어줘야겠다.”

두부가 웃는다.

길동이는 나이 먹어가는지 먼 길 산책이 힘들다.



“집에 가자.”


살아난 호박과 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