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여 찌운 살과 이별할 시간. 2-12

다이어트 -00

by 서진

이상한 꿈을 꾸었다.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난 나이 때문에 일찍 일어난 거야. 꿈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야.'라고 소리 지를 뻔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따뜻한 물 한잔을 마셨다. 그리고 머리에 맴돌던 개꿈을 발로 뻥 차버렸다.


나의 루틴. 조용한 아침을 시작하는 텃밭.

난 집 밖으로 나가봤다. 이슬이 비처럼 내려앉아 있는 걸 보니, 오늘도 날씨가 장난이 아니겠다.

오늘 스케줄이, 길동이 병원에 가야 하고, 써놨던 산촌요리생을 정리하면 일찍 나갈 수 있다.

바쁘다 바빠.


길동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월요일이라 아픈 멍멍이님들이 대기를 하고 있다. 갑자기 팔에 안겨있던 개똥이 (우리 강아지 별명)가 바들바들 떤다. 우리 개님은 겁쟁이다. 다른 멍멍이님들이 주사를 맞는 걸 보기만 해도 자기가 맞은 것처럼 깨개갱거리며 운다. 감정이입을 아주 잘하는 명배우다.

진료대 위에서 기다리던 길동이가 나의 팔 안으로 파고든다. 의사 선생님이 길동이 피를 뽑고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단다. ‘깨개갱깽깽깽. 깽깽. 깨개개갱, 깽깽’ 아주 병원이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길동이, 바늘도 안 들어갔는데. 한 번 그리고 두 번을 실패하고 세 번 만에 겨우 피를 뽑았다.

엑스레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너무 길다. 내 몸이 온통 길동이 털로 뒤덮였다.


가방이 떨린다. 두부다.

“언니 길동이 병원 갔어?” 두부가 걱정되나 보다.

“지금 결과 기다려.” 나를 불쌍한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길동이를 쓰다듬어주었다.

“갈까?” 두부 목소리가 조심스럽다.

“나올 수 있음 빨리 오고. 우리 뒤에 수술 예약 있어.”


몸 줄 하네스를 길동이에게 채워주고 리드줄을 걸어 바닥에 내려주었다. 난 길동이 새 친구들과의 사교생활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려 견주들과 멍멍이님들에게 말을 거는데, 이 녀석 내 다리를 붙잡는다. 그러더니 방향을 바꿔 몰티즈 주인에게 꼬리 친다. 다시 방향을 바꾸고 다른 여성분에게 헥헥 거린다.


막 수술을 마친 아이는 잠들어있다 쳐도 오드아이를 가진 아이, 감기에 걸린 고양이 네로, 비만 닥스훈트, 800g 하얀 몰티즈 그리고 중성화를 기다리는 아이라인이 신기한 아가씨도 있는데 길동이 너는 왜 여자 사람만 따라다니는 거니?

이 녀석은 거세를 당한 후 개들하고는 안 논다. 여자 사람만 좋아한다. 그것도 처음 보는 여자.

진짜 남자 사람이 되려나 보다.

길동이 주인 두부가 왔다.

의사 선생님이 결과를 들으라고 손짓을 하신다.

“간이 안 좋아요. 보통 먹는 음식 때문에 많이 생기는데. 밥은 잘 먹나요?”

의사 선생님이 나이에 비해 건강한 편인 길동이가 식습관 때문에 간을 안 좋은 것 같다며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짬밥을 좋아해서 그럴 거예요. 길에는 주로 썩은 음식이 많으니까요.” 난 길동이와 두부를 번갈아 보며 얘기했다.

“그러면 안 되는데 큰일 나요.” 의사 선생님은 어떻게 그런 일이 있냐는 표정이다.

“길에서 살다 온 녀석이라 습관을 버리지 못해요.” 불쌍한 길동이 몸을 쓸어줬다.

“요즘은 안 먹었어요. 한 일주일.” 두부가 자신 있게 얘기한다.

“하루 이틀 안 먹는다고 좋아지진 않아요. 사람도 먹는 습관이 쌓여 살이 찌는 거니까.” 선생님이 좋은 말씀을 하셨다.


부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선생님 말씀 들었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쌓여서 살이 찌고 병이 된다고.”

두부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이젠 몸 줄 하고 산책해야죠.”

“그렇게 해야 좋아지겠죠. 짬밥은 안 돼요.” 선생님이 단호히 말씀하신다.

나는 나오면서 쐐기를 박았다. “저 선생님 서울대 나왔데.”

“그래. 실력은 있겠네.” 두부가 이제야 인정을 하는 눈치다.

역시 학벌은 아무도 못 이긴다.

개들도 주인이 어떻게 돌보느냐에 따라 비만 멍멍이도 되고, 균형 잡힌 바디의 멍멍이도 되고, 아픈 강아지도 되고, 건강한 강아지도 되고, 행복한 견 님도 되고, 불행한 견 님도 된다.

안타깝게도 사람은 어른이 되면 본인이 스스로 돌봐야 한다.


가끔 만나는 동생이 있다.

“언니 나 날씬해졌지? 이번엔 진짜를 찾았어. 이 약 먹으면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 안 찐다.”

“안 먹으면?” 난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찌지.” 그러며 살 빠진 자신의 몸을 한번 돌아본다.

“그럼 계속 먹어야 하잖아?” 그런 건 왜 먹냐고 물어볼 수 없어 난 돌려 찬다.

“빠지면 그때부터 약 안 먹고 유지해야지.”

약 먹고 살 안 찐다고 생각하면 평소보다 더 먹을 텐데. ‘내일은 좀 덜 먹어야지. 약 먹었으니까.’라며 자신을 다독이겠지.

상황을 몇 번 겪었는지 모르겠다. 리플레이되는 쇼츠(shorts)를 계속 보는 느낌이랄까.

쇼츠가 돌아간다.

살이란 참 희한하다.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처음엔 살 2kg이 그녀에게 왔다. ‘어머! 갑자기 살이 쪘네. 내일부터 좀 빼야지.‘

그녀는 하루를 굶는다. ’와~ 하루 사이에 1kg이 빠졌네.’ 음음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낀다.

그녀의 친구가 “너 요즘 살찐다.”라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둘러본다.

“괜찮아 금방 빼.” 그녀는 자신감 있게 말을 한다.

어느새 그녀의 몸에 5kg의 살이 올라왔다. 그리고 2kg을 빼고 다시 1kg이 오고, 다시 1.5kg이 오고, 다시 1kg을 빼고, 2kg이 오고. 연신 밀고 당기는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데, 옆에 있는 친구의 맛난 음식들이 유혹한다. ‘너 정도면 괜찮아.’

그때 갑자기 그녀의 옆을 따라다니던 살이 그녀를 꽉 끌어안는다. ‘그냥 나랑 살자. 내가 너를 몇 년을 따라다녔는데.’


무섭다.

무서운 납량 소설 같다.


‘내 살들도 저렇게 온 것 같다.’ 나부터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집에 길동이를 풀어놓고 사료를 줬다.

이 시끼 안 먹는다.

내 그럴 줄 알고 훈제오리 캔을 사 왔다. 캔에 있는 훈제오리를 아주 조금 덜어 사료와 섞어줬더니 잘 먹는다. 이번엔 조금 덜어 약이랑 섞어줬다. 쓸 텐데 잘 먹는다.

길동인 사료만 싫어하는 게 맞다.


“길동아, 너의 간이 안 좋데, 그렇다고 내가 토끼를 찾아갈 수는 없어, 사료 좀 먹어주면 안 되겠니.”

혹시나 길동이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쓰다듬어주었다. 엉덩이를 내밀면 엉덩이를, 머리를 내밀면 머리를 열심히 열심히 한 30분 같이 놀아줬다.

이렇게 쓰다듬어주면 두부도 다이어트에 성공할까?

일단 아침도 못 먹은 내 배가 고프다.

남은 가지 라자냐가 어디 있지...

점심은 간단히



저녁은 두부와 나의 마지막 먹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