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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Jun 22. 2023

경험이란 무서운 것이다. 2

산천 요리생 ..

요리수업 가던 날

눈에 뵈는 것도, 귀에 들어오는 것도 없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선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했다.


나에게 첫 만남이라는 건 항상 긴장되는 일이다.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요리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수업을 어찌해야 할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거듭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 첫 수업 중에도 고민했다.


첫날은 애들이 좋아하는 공룡을 주제로 '공룡알둥지'를 만들었다.

치즈와 버섯으로는 둥지를, 브로콜리로는 잔디 만들어 예쁘게 색을 넣은 계란을 놓으면 좋아하겠지?

채소는 싫어하겠지만 치즈는 좋아하니까. 

예상밖이었다. 모든 아이가 치즈를 싫어한다.

뉴트렌드를 선호하는 엄마들과 사는 아이들이 스파게티도 피자도 아닌 공룡 모양 너겟과 돈가스 소스가 최고의 반찬이었다.


한 번도 산천에서 어린 시절 보내지 못했던 난, 아이들과 유치원에서 하루를 같이 놀아보기로 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걸 힘들어하는 내가, 애들 몰래 진땀을 흘리고 있을 때.

한 아이가 말했다. "얘네 엄마는 ‘외국’에서 왔어요."

그 소리에 외국인 엄마를 둔 아이가 소리를 지르고 구석진 곳에서 혼자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순간 정적이  '이럴 땐 뭐라고 해야 하지.'


"정말! 좋겠다. 그래서 네가 예쁘게 생겼구나! 엄마 나라말도 할 줄 알아? 그럼 넌 딴 애들과 다르게 2개 국어를 하는 거잖아! 와~ 부럽다. 영어도 빠르게 배우겠다."

주저리주저리주저리주저리

당연히 당황했다. 머리가 내 의지완 상관없이 자동으로 이리저리 돌며 아무 생각이 나지 않더란 말이다. 그렇지만 생각해야 했다.  

'얼굴색 변하지 말자.' 안 그래도 무섭게 생겼다는데...

아이가 다가오며 말했다 "아빠가 베트남 말 못 배우게 해요…."

난 그냥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곤 한 아이가 말한다. "난 언니가 아파서 낳았데요."

이건 무슨 말인지

"언니가 아파서 내가 크면 돌봐줘야 한대요."아이의 눈동자에 힘이 없다.

지켜보던 유치원 선생님이 "여긴 이런 애들 많아요."

이런 애들이라….


난 어디? 여긴 어디?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그때는 도통 이해 할 수 없었다.

내가 20살 무렵부터 피자랑 햄버거 사다 줬던 절에 맡겨진 아이들이랑 오버랩되는 건 왜일까!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은 지금 부모님과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다음날 수업으로 베트남 요리를 했다. 베트남이 얼마나 한국 사람들과 인연이 많은지  아름다운 베트남 사진을 보며 설명했다.

그리고 예쁜 베트남 엄마가 있는 아이는 밝게 웃어 주며 스스로 반장이 되었다.


자~ 그다음은

난 아이들의 친구가 됐다. 그리고 아이들은 내 최고의 제자가 되었다.


그 후 다듬기, 까기, 씻기, 썰기, 다지기, 반죽하기, 튀기기, 찌기, 끓이기 시작해 한식, 분식, 중식, 일식, 제과제빵, 이태리요리 등 온갖 요리를 같이했다. 

편식을 고치기 위해 진행했던 요리교실의 마지막 시간, 아이들이 자랑했다.

"선생님 저 이제는 버섯도 잘 먹어요."

돌아가는 나의 다리에 매달려 "가지 말아요~"하던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이렇듯 경험이란 무서운 것이다.

유치원생보다 낮겠지!라고 생각한 나는 바보였다.


NO~NO~

역시 칼 안 잡아본 사람은 애나 어른이나 다 같다는 생각과 함께 불길한 기운이 내 몸을 뚫고 지나갔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다시 생각을 다잡았으나 동아리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과 만났던 날들이 영화필름이 반복 재생하듯 돌았다.  


"다 모였니? 무슨 요리가 하고 싶어?"

"중국요리요~ 짜장면, 짬뽕, 볶음밥, 탕수육 그런 거요~" 그러며 좋다고 웃는다.

말하자면 짜장면, 짬뽕이 먹고 싶어 만들 요리반이었다.

헉! 너희들 선생을 잘못 고른 것 같다.

"그렇다면 나보다는 중식 선생님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왕 왔으니 너희들 계획서를 작성하는 건 도와주고 갈게"


2달이 지났나….

문자가 왔다.

"선생님 우리 통과했어요. 요리 선생님이 돼주세요." 

학생교육원에 계획서 내고 프레젠테이션을 걸쳐 딸랑 1년 활동비 300만 원 지원받아 왔다는 것.

계획서 작성 전, 조언으로 해준 지역 농수산물을 이용한 요리 만들기, 요리축제 참여하기, 요리대회 나가기, 복지시설 찾아가 요리해 주기, 요리 기부하기 등등 이 중 몇 개만 고르라 했더니 모든 내용을 다 담았다는 이야기였다.

그 돈으로 이런 멋진 일을 한다는데 안 뽑겠어!


중식자신이 없다는 말과 함께 거절의 의사를 전했지만, 다시 울린 '톡' 소리엔 ‘중식은 하지 않는다’라며 학교에 와달라 했다.

학교에서 만난 동아리 팀장인 나범은 스스로를 뿌듯해하며 나에게 요리 선생님이 되어 줄 것을 부탁했다.

이 터무니없는 계획을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해 물어보았다.

"다 할 수 있겠어? 300만 원으로?"

그때 어디선가 들린 한마디

"계획은 수정하면 되죠?"

그건 아니지! 아이들에게 목표를 위한 꼼수 쓰는 법을 가르치려는 거야!

"그래해보자. 하지만 많이 힘들 거야. 축제 참여도 하고 요리대회도 나가려면."


그때 거절했어야 했다.

아이들이 선생님 수업방식을 따르겠다는 말에 정말 내 수업방식을 군말 없이 따라줄 것이라 믿었다.

그냥 중학생이다.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사춘기였다면 달랐을까!


첫 수업은 시작이 되었다.

첫 수업으로 8인용 가마솥을 보여주었다.

"우리 여기에 밥을 해요? 전기밥솥 아니고?"

"응~ 우리 지역 농수산물을 사랑해야지~"

구시렁구시렁 모두가 이건 아니지….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니들은 사람 잘 못 골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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