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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Jun 22. 2023

쿠쿠와 가마솥. 3

산천 요리생 ...

"선생님 제가 밥을 하면 밥이 설어요."

콩나물밥을 하던 날 시무룩한 표정으로 우스가 툭툭거리며 돌아다닌다.


 우리 요리동아리는 가마솥에 밥을 한다.


밥을 퍼 담아 반찬 놓고 밥상 차리는 걸 귀찮아하는 아이들은 요리라곤 끓여본 라면이 전부고, 하루에 한 번은 라면을 끓여 먹는다는 재범이도 있다.

그것도 귀찮아 물만 부으면 조리되는 라면을 먹는 아이들이다.


재범인 아침 거르고, 점심엔 급식 먹고, 저녁은 라면으로 때운다 했다.

몇 년째 식구들과 밥을 먹은 적이 없다는 재범이는 매번 라면으로 간단히 때우며 게임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밥을 해주는 사람이 없냐고 물어보자.

할머니가 계시지만 나이가 많아 그런지 어른 음식만 만들어 주셔 같이 밥을 못 먹는다는 핑계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밥 하는 걸 가르치는 거야! 너희들이 부모님이랑 할머니 대신 밥하면 되겠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밥은 쿠쿠가 한다며 웃기 시작한다.

쌀을 사 먹을 일이 드문 이 아이들에게도 솥에 밥을 한다는 것은 어른 못지않게 당황스러운 일이겠지.


왜! 우리에겐 쿠쿠가 있으니까!

시간 맞춰 밥 해주지, 언제나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온도를 유지해 준다. 

그래도 쿠쿠는 밥은 한다.

쌀 씻는 것도 귀찮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유튜브 요리방송에서도 햇반을 이용해 간단히 요리하라 설명해 주니 말이다.

사실 조리실에도 '쿠쿠'가 2대나 있다.


그러니 처음에 가마솥을 들이댔을 때, 아이들의 표정은 '이 귀찮은 것을…. 왜!'


“얘들아~ 우리가 누구니? ‘밥이 보약이다.’라고 생각하는 민족이잖아. 그래서 열전도율이 좋다는 무쇠솥에 밥 하는 법을 알려주려고. 신기하겠지? 보통 어른들도 솥 밥하는 거 힘들어한다. 앞으로 너흰 어른보다 밥을 잘하는 중학생일껄.”

나는 또 주저리주저리 아주 친절하게 말했다. 안 할까 봐!


이젠 어른들도 홈쇼핑에서 곰탕 세트를 사고 시장에서 반찬을 사 오는 시대다.

음식 인문학을 진행하면서,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 사람 같았다. 내가 시대 뒤떨어진 사람인지 산천에 사는 사람들은 계절 반찬이나 김치 종류와 같은 한식을 잘 알고 있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여기도 홈쇼핑 채널은 도시와 같은 번호를 누르면 나온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들이 내게 배우고 싶은 건 일명 '뽐나는 요리', '유행하는 요리'다.

나는 이런 요리들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조리고를 나와 조리과를 다니던 4학년 학생들에게 요리 실무교육과 실습을 가르칠 때가 있었다.

하루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육류 중 닭을 한 마리씩 주고 부위별로 분해를 요청했다.

닭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덩어리 고기썰 듯 칼을 대는 녀석들과 때려 찍으려는 녀석들로 나뉘었다. 그리곤 말한다 “칼이 잘 안 들어요.”

얘들은 7년 동안 뭘 배운 거지???

“잘 봐!”

난 닭의 관절을 뚝뚝 꺾었다. ‘어머, 어머’ 여자 학생들이 소리를 내고 남자 학생들이 '우오오~' 감탄사를 보냈다.

꺾인 관절에 칼을 넣어 사뿐히 부위별로 분해하고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4학년이면 수십 군데 알바를 거치지 않나?”


요즘 요리 실습생들은 설거지부터 시작해야 하는 힘든  레스토랑보다 간편한 '프랜차이즈 푸드 바'나 '카페'를 선호한다.

식당에서 설거지부터 시작해 재료 다듬는 과정을 거쳐야 멋진 요리사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대학 나오고 화려한 테크닉만 몇 개만 배워가면 바로 불판 위에서 프라이팬을 멋지게 흔들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아무리 너희가 요리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더라도 실전은 틀리다" 매 강의마다 설명하고 학생들에게 매 수업 1시간씩 빡쎄게 조리실 청소를 시켰었다.


 4년에서 7년을 요리를 배운 학생들도 기본이 없으면 뽐나는 요리는 힘들다.  

나는 요리를 수강한 것을 내기 위해 뽐나는 요리패키지 수강을 많은 이들이 찾는다.

그렇게 배운 수강생들은 많은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

그 수강생들은 집에서 가족이나 친구들을 위해 요리를 해줄까? 궁금하다.


쿠킹스튜디오에서 2시간 만에 뚝딱 만들던 멋진 요리가 집에 가면 하루를 소비해도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장 봐야지 생각보다 배울 때 썼던 신기한 재료가 없는 경우도 많고 한 곳에 팔면 좋으련만 여러 가게를 전전해야 한다.

1인분, 2인분 분량의 조미료는 대용량 병에 담겨 한티, 두티 숟가락에 담는 것도 손이 떨리는 일이니 말이다. 우리는 몇 분 안에 만들어내는 멋진 유튜브 요리만 보고 그 안에 담긴 과정은 관심이 없다.


나도 처음 보는 음식은 멋지게 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이해하려 한다.

엄마가 장 봐온 반찬과 밀키트로 상을 차리고 한쪽에서 쿠쿠가 ‘넌 신경 지 않아도 돼 내가 취사가 끝나면 말해줄게’라며 늠름하게 칙칙 거리는 간편한 주방이 익숙하다는 걸.

어쩌면 어른들은 생활에 필요한 과정을 생략하는 기술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공부는 기본기가 필수라 가르쳐 준다.

아이들은 생활에서 기본을 배우고 그것을 익혀 하나하나에 적용하는 것이 아닌가.


또 하나, 내가 솥 밥 하기를 우기는 이유를 들자면, 우리가 사는 지역은 둘러보고 또 둘러봐도 가장 많이 보는 풍경이 논이다.

봄이면 보리가 샤르락 거리며 춤을 추고, 모내기 철부터 개구리가 울기 시작하며 시작된 모기와의 사투가 끝날 때쯤, 누런 벼들이 살랑거린다.

추수 때가 되면 쌀 수매를 위한 집회나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밥이냐! 빵이냐!’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밥은 아시아의 주식으로 밀보다는 쌀이 지역적으로 잘 자라서 주식으로 자리를 잡았고, 기후가 좋지 않은 유럽에서 밀이 잘 자라 밀이 주식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도 나오는 이야기)

쌀로 상을 차려야 하는 한국인이 보았을 때 빵은 간단하고 밥은 반찬, 국, 찌개 등도 만들어야 하는 귀찮은 식사였다. (빵 만들려면 오랜 시간 발효과정을 몇 차례 거치는지 아는지...)

내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아침 먹기 싫어하는 나와 동생들을 위해 엄마는 갓 지은 밥으로 볶은 김치와 멸치나 장조림을 넣은 김밥을 입에 물려주셨다.

지금 우리는 토스트에 마트표 잼이라도 발라주나!


어찌 되었든 덕분에 나는 별이 많이 보이는 동네에 살고 있다. 벼들이 잠을 자는 시간을 지켜주기 위해 가로등을 켜지 않는다. 그 덕에 우린 많은 별을 볼 수가 있다.

내가 산천으로 이사를 오기 전 “넌 좋겠다. 별 많은 동네에 살아서~” 동생에게 말하면, “언니는 별도 보고 살아?”라고 답을 하곤 했다.

지금은 “난 이 집이 좋다. 별이 많이 보여서~“라고 말을 하면 동생이 대답한다. “오늘도 별이 많네~“

어쩌면 난 물 좋고 산이 좋아 온 것이 아니라 별을 보러 온 것은 아닌지. 별을 지켜준 벼가 고맙다.


나도 안다. 아이들이라고 다를까. 

흔하디 흔하게 보는 쌀이 아니라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나 빵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SNS에나 나올 법한 간편 요리 키트에 들어있는 음식을 배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이 좋아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 요리 한다고 멋들어진 말을 계획서에 퍼 담았으나, 편의점 음식을 좋아하는 이 아이들에게 우리 주위에 있는 재료를 스스로 다듬고 썰고, 볶고, 끓이며 밥 짓는 과정을 몸에 익혀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갓 지은 밥으로 상을 차려 둘러앉아 먹고 싶었다.


이젠 밥을 지은 지 1년이 지났다.

항상 수업 전 점심시간에 부장인 재범에게서 전화가 온다.

"선생님 오늘은 쌀 몇 컵 씻어 불릴까요?"

"그럼 솥은 하나면 되겠네요!"



(우스- 머리를 보면 테리우스가 생각난다. 갑자기 긴 머리가 멋있다며 기르더니 윗머리를 묶어, 흔히들 말하는 겉멋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자기는 전 부장을 히어로로 보고 따라 한다는 2학년 부부장. 뭐가 됐든 잘한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애쓴다. 그런 이유로 플레이팅이 늦다. 그래선지 살이 안 찐다. 살이 안 찐다는 이유로 실습 후 식사 시간에 오래오래 밥을 먹으며 청소를 안 하려 잔머리를 굴리는 특징이 있다.)

(재범- 현재 요리부 부장. 동아리가 생기기 전 요리를 가장 많이 해본 3학년. 라면도 요리라며 가스레인지를 많이 켜 봤다 한다. 집에서 나오질 않는다. 편의점 음식을 먹으며 게임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 작년까지 모든 활동을 ‘귀찮다.’라며 ‘싫어요.’라는 부정적인 말을 반복적으로 해 설거지를 가장 많이 했다. ‘미남축제’ 이후 뿌듯함을 느꼈는지 올해 부장을 자청했으나 한 번도 책임감과 성실함을 가져 본 적 없고 귀차니즘을 버리지 못해 의욕은 앞서나 동아리 활동에 가장 문제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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