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입담의 반전! 박상영의 어쩐지 울고 싶어지는 사랑 3부작
믿고 보는 작가 중 한 명인 박상영 작가의 연작 소설집입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여 보기 드물게 드라마와 영화 동시 제작된 '대도시의 사랑법', 읽고 나면 어쩐지 울고 싶어지는 저의 강추 도서 '1차원이 되고 싶어' 에 이은 사랑 3부작 의 마지막 작품인데요. 표지 사진에 보다시피 어깨 동무한 두 친구 위에 창백한 한 명의 팔이 걸쳐져 있죠. 다 읽고 나면 소름 돋는 표지입니다.
특이하게 연작 소설이라서 서술자가 계속 바뀝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인데 주인공이 계속 바뀌는 거죠. 모두 코로나 시기를 살아가는 치열한 직장인 혹은 자영업자들인데요. 이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앞 이야기에서는 제 3자인 사람의 속마음을 다음 이야기에서는 알 수 있는 재미있는 구조입니다.
첫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앵커인 김남준입니다.
잡지사에서 열정 페이로 근무하다 마음의 상처를 입고 퇴사한 김남준과 황은채. 김남준은 절치부심과 운의 결과로 방송국의 정규직 기자라는 번듯한 직업을 얻게 됩니다.
황은채도 탁월한 노력으로 그 방송국을 거느린 대기업의 협력 회사에 다니게 되는데요. 이 둘은 우연히 유튜브 촬영을 통해 만나고 고단했던 열정 페이 시절을 회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첫번째 이야기의 주된 소재는 신입직장잔혹사입니다. 열정페이에 당한 PTSD가 있는 분은 읽으면 너무 괴로울 정도로 사실적입니다.
두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남준의 애인이 된 대기업 직장인 고찬우입니다.
찬우는 절친한 동료 한영이 자신과 같은 쪽이라는 것을 한영의 애인인 철우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알게 되고 친근감을 느낍니다. 찬우는 진정한 사랑을 만난 한영을 부러워하다가 우연히 데이트 앱에서 수상쩍게 신분을 숨기는 훤칠한 외모에 목소리까지 매력적인 저음의 남준을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집니다. 드.디.어. 멀쩡한 사람을 만났다는 기쁨에 찬우는 남준에게 모든 걸 다 맞춰주고 집까지 같이 사는 등 헌신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랑의 기쁨은 잠시, 결벽증인 남준때문에 생활의 마찰이 계속 일어나게 되고 급기야 코로나 확산으로 이 둘의 관계는 살얼음판을 띠게 됩니다. 코로나 초기 확진자의 동선이 모두 공개되며 조롱당하는 지경에 이르자 급기야 찬우의 격리기간동안 남준은 같이 사는 것을 들키기 싫다고 짐을 싸서 나가며 보름 후에 보자는 폭탄 선언을 합니다. 이 사랑 지속될 수 있을까요?
세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고찬우와 황은채의 직장 동료인 유한영입니다.
한영은 디지털마케팅팀으로 전출되며 엄청나게 일을 잘하는 은채와 같은 팀이 됩니다. 두 사람은 신생팀에게 주어진 특전으로 유연한 근무와 운영을 할 수 있게 되며 영상 편집에 천재적인 MZ를 고용하여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여 회사 유튜브를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유명해지니 견제를 받게 되고 윗선의 보수적인 간섭과 이간질로 팀은 해체 되고 무리한 스케줄과 스트레스로 쓰러지다시피 한 은채를 부축하며 한영은 오래전 잊혀진 인물은 리나 이모를 떠올립니다. 이 이야기는 성과를 내고 인정받지 못하고 질투와 이간질을 겪는 직장 생활 이야기와 시대를 잘못 만난 뛰어난 여성이었던 리나이모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챕터입니다.
네번째 이야기이며 표제작인 '믿음에 대하여'의 주인공은 유한영의 애인인 임철우입니다. 한영의 리나 이모 장례식장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8년 전 어떤 이의 장례식장에서 한영과 처음 만나게 된 과거로 점프합니다. 장례식장에서 어이 없게 만난 두 사람은 8년 동안이나 사랑을 이어오는데요. 포토그래퍼계의 라이징스타였던 철우는 전재산을 모두 동원해 이태원에 죽을 때까지 자신과 지인들의 아지트로 삼으리라는 마음으로 이자까야를 개업하며 위기를 맞게 됩니다. 팔천만원의 인테리어 비용을 쏟아 부으며 포토그래퍼 출신 답게 느낌 좋은 이자까야를 만든 덕에 개업 초기에는 수익이 한영을 먹여살릴 정도로 많았는데요. 코로나가 유행하며 수익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다가 확진자 00번의 이태원 클럽발 동선이 이태원 일대를 헤집으며 전국적인 조롱을 당한 뒤로 발길이 뚝 끊기게 됩니다. 마이너스 통장도 한계에 다다른 지금 남준과 찬우의 아파트 집들이에 다녀온 뒤에 한영이 우리도 번듯한 집 한 채 사서 가자며 재정 내역을 공개하고 대출 금액을 알아보라며 재촉하자 철우는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 들게 됩니다. 적자가 늘어나도 외면했던 현실을 대면하고 한 걸음씩 폐업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개인 회생 절차-가게 정리-인터넷 가게 정보지우기, 개인 사업자 폐업 신고, 배달앱 탈퇴- 부동산에 가게 내어 놓기
이 과정이 일사 천리로 진행되며 두 달만에 새로운 주인에게 가게를 넘기게 되는데요. 8천만원을 들인 세팅 시설과 인테리어가 단돈 오백만원을 받게 되며 그 돈 마저도 부동산 중개 수수료로 전부 지불하며 철우는 빈털털이로 아니 마이너스로 가게를 폐업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폐업파티를 열어 개업 초반에 자신을 도와줬던 잡지사 및 패션 업계 사람들과 고향 친구들, 대학 친구들, 그리고 이 쪽 사람들까지 모두 초대 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모종의 일이 일어나며 믿음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며 책이 마무리됩니다.
이 챕터는 가장 다양한 소재가 나오는 거 같아요. 철우와 한영의 어이없는 만남과 사랑 이야기, 코로나가 직격한 자영업자의 몰락, 그리고 마지막 충격적인 반전까지 눈이 번쩍 트이게 합니다.
박상영 작가는 방송에서 보면 한없이 유쾌하고 따스해보이고 에세이도 진짜 박장대소하며 읽게 되는데 소설은 한없이 내면을 파고들며 날카롭게 세태가 반영됩니다.
이 책은 코로나 시대의 직장인, 자영업자들의 세태를 반영한 직장 소설이면서 네 사람의 건조한 사랑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불과 얼마 전이지만 전생처럼 느껴지는 그 이상한 시기를 떠올릴 수 있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1차원이 되고 싶어'때처럼 어쩐지 울고 싶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눈은 손바닥에 닿자마자 녹아 없어졌다. 순간 나는 영원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또다시 믿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언제고 깨어지고 흩어져버릴 유릿조각 같은 믿음에 대해서. 2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