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은 갑자기 한다.

피아노, 기회, 쇼팽, 바르샤바에 간다고 뭔가가 바뀔까

by 생강

# 피아노
고1 어느 날,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그 이후부터 내게 피아노라는 건 가지 못한 길이 되었고 거리를 두게 된 옛 친구가 되었다.
그간 눌러왔던 애증의 마음이 예고 없이 피어오른 건 여느 때와 같이 출근을 시작하는 신발장 앞에서였다.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우승한 제17회 쇼팽 콩쿠르 최종 결과를 들으며 온몸을 휘감는 무언가를 느꼈다. '피아노'는 더 이상 어쩔 도리 없이, 다시 내게 다가왔다.
가정과 일터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거쳐오니, 새 둥지를 만든 지도 10년이 지났고 사회인이 된 지도 15년이 지났다. 피아노는 종종 텅 빈 학교 체육관에서 아무 말 없이 나를 맞아줬고 걱정과 불안을 잠시 넣어두도록 해줬다. 참 고맙다.


# 기회
작년, 아빠의 심장 수술은 갑작스럽게 만난 우리 가정의 큰 위기였다. 정말 정말 정말 감사하게도 아빠는 무사히 빠르게 회복하셨고, 부모님 두 분은 건강하게 생활하시기 위해서 많이 고민하시고 노력하신다. 우리 가족의 건강과 무탈함 외에 더 이상 바랄 것은 없다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
올해는 아빠의 칠순이다. 이례적으로 긴 추석 연휴인만큼 칠순 기념, 수술 1년 후 무사 회복 기념의 의미를 담아 해외여행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아직은 체력을 올리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고, 오랜만에 집에서 푹 쉬고 싶다고 하셨다.
가족 여행을 계획했었으나 취소하게 되면서 갑자기 열흘 남짓의 시간이 생겼다. 양가 부모님들께서는 감사하게도, 직장인들에게 너무나도 귀하고 드문 긴 연휴이니 여행을 다녀오라고 독려해 주셨다.


# 쇼팽
좋아하는 작곡가가 누구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 "쇼팽입니다."라고 답하면 너무 뻔하고 시시해 보일까. 학원에서 쇼팽 작품을 다뤄보자고 책을 준비하라고 하셨던 때, 이전에 새 책을 준비했을 때보다 더 많이 설레고 기뻤던 것 같다. 바로크, 고전 작곡가들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어린 나의 감성으로 쇼팽의 작품에서는 색다른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이후 쇼팽 프렐류드(전주곡), 에튜드(연습곡) 몇 곡을 배우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공식적인 배움은 끝났다. 성인이 되어 다시 피아노를 만나고 혼자 연습을 하면 할수록 발라드, 폴로네즈, 스케르초, 바르카롤, 판타지, 마주르카 등 쇼팽 작품의 정수(精髓)를 공부해 보기 직전에 배움을 멈춘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커진다.
쇼팽이 좋은 이유를 똑 부러지게 말하기 어렵다. 익숙함 또는 멋진 작품들을 많이 배우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음악에서 느껴지는 슬픔 자체도 좋다. 들으면 귀가 음악에 붙잡혀 다른 일을 하다가도 멈추게 되는 그 현상 자체가 근거가 되는 거 아닐까. 힘겹게 연습을 하고 나면 좌절과 약간의 희열도 주는 쇼팽은 덕질을 지속하도록 만드는 매력이 있다.


# 바르샤바에 간다고 뭔가가 바뀔까
10월 추석과 한글날이 만들어 준 긴 연휴에 마침 제19회 쇼팽 콩쿠르 본선이 시작된다니(10월 3일 오전 10시부터 첫 번째 순서의 연주자 연주 시작) 여유로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봤다. '10일 정도의 연휴라면, 폴란드 바르샤바에 직접 가서 현지 콩쿠르 분위기를 잠깐이라도, 조금이라도 맛보고 올 수 있지 않을까? 직관 표는 이미 작년에 매진되었다고 하던데. 혹시 현지에서 취소표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구할 수 없다고 해도 5년에 한 번 열리는 쇼팽 축제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거 아닌가? 표를 구하지 못하면 쇼팽박물관과 바르샤바 관광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비행기 티켓을 검색했다. 10월 4일 새벽에 출발하고 9일 오후에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는 일정의 티켓이 있었다. 숙소도 검색해 봤다. 평소보다 대체로 오른 것 같았지만 아직 괜찮은 가격대의 숙소들이 몇 개 보였다. 갑자기 만들어진 질문들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고, 보이지 않았던 실현 가능성이 점점 윤곽을 드러냈다. '이 연휴에 바르샤바, 가능할 수도 있겠는데?'
검색 결과,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예산이 책정되었다. '이 정도의 예산으로 바르샤바에 간다고 뭔가가 바뀔까' 자꾸 같은 질문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다가 짝꿍이 말했다. "갈 수 있을 때 가보는 게 어때?"
'갈 수 있을 때', 그렇다. 가족들 건강을 포함한 모든 일에서 큰 걱정이 없어진 지금, 잠깐은 떠나봐도 되겠다고 조금은 안심하게 된 지금이 갈 수 있을 때일까. 지금보다 더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 있을 때를 다시 만나는 것도 언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스쳤다. 몇 날 며칠 동안의 망설임을 멈추기로 했다. 의외로, 결심은 '갑자기' 한다.
다음 날, 나는 바르샤바행 티켓을 예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