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공항을 밟자마자 쇼팽과 피아노, 예상보다 추운 날씨, 굴하지 않는다

by 생강

# 항을 밟자마자 쇼팽과 피아노

현지 시각 10월 4일 오후, 짝꿍과 나는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에 들어섰다. 제일 먼저 우리나라 유수의 기업 휴대폰 광고가 우리를 맞아주었고, 다음으로는 리가 바르샤바에 온 이유, 제19회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를 안내하는 입간판과 피아노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국가 규모의 행사로 계획하여 진행한다고 들었던 것을 바로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바르샤바 쇼팽 공항을 밟자마자 보이는 제19회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 안내 입간판과 야마하 디지털 피아노

'시 바르샤바! 드디어 도착한 거구나!' 감격과 벅참의 순간이 지나자 비 EU 국적 입국자가 거쳐야 하는 너무나도 차분한 입국 심사¹에서, 바르샤바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기차표를 사고 결국에는 기차 대신 택시를 타게 되는 과정에 여러 번 당황스러움이 몰려왔다. 근차근 준비할 여유 없이 2주 전에 갑자기 티켓을 사면서 시작한 여행이기 때문에 당연히 겪을 수밖에 없다고,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¹짝꿍은 입국 심사 줄에 서니 폴란드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지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고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한다. 폴란드는 영리 목적이 아닌 경우, 90일 이내까지는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다.


# 상보다 추운 날씨

하지만 입국 심사와 시내 진입보다 씬 더 당황스웠던 것은 예상보다 추운 바르샤바의 날씨였다. 서울은 북위 37도, 바르샤바는 북위 52도로 위도 차가 약 15도이다. 약 10년 전 신혼여행에서 유럽의 겨울 날씨를 제대로 느꼈기 때문에 안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국보다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이 10도 정도 낮은 바르샤바는 날따라 바람도 꽤 세게 불어서인지 예상보다 훨씬 웠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자마자 급히 가야 했던 곳은 현지인들이 애용한다는 시내 쇼핑몰었다.(즐로테 타라시: Złote Tarasy) 스포츠 브랜드 코너에서 재킷 안에 입을 플리스 집업을 사고, 지하 마트에 가서 저녁과 다음 날 아침에 먹을 샐러드와 빵을 산 후 지친 몸을 겨우 택시에 실어 숙소에 돌아왔다. 환승 포함 약 19시간의 긴 비행으로 이미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에서 스산하고 차가운 밤공기가 몸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바르샤바 시민들은 도시의 랜드마크로 여기지 않는다는 문화과학궁전과 쇼팽 덕질의 근거가 되었던 숙소

숙소 근처 전철역 직원의 영문 모를 불친절한 말투와, 돌아올 때 탄 택시 기사분의 선정적인 영상 취향까지 처음부터 무나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바르샤바였다. 게다가 숙소도 사진으로 봤던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고, 무엇보다 방 안의 공기가 그다지 따뜻하지 않은 느낌이어서² 걱정스러웠다. 갑자기 결정기는 했지만 우리 기준으로 거금을 들여 바르샤바에 온 것이 과연 잘 한 선택이었는지 회의감이 갑자기 폭풍같이 몰려들었다. 후에 짝꿍 말하기로는, 그때의 내 얼굴은 당장이라도 돌아가자고 말할 것만 같은 심각하고 어두운 우라 덮여있었다고 다.

²후에 숙소 전체의 라디에이터가 작동되지 않다가 퇴실 하루 전날에 극적으로 고쳐져서 깨닫게 된 점은, 처음부터 우리 방의 라디에이터는 제대로 작동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쇼팽 덕질의 근거가 되었던 숙소, Chopin Boutique. 다음에는 여기는 절대 선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돌아오니 그럭저럭 괜찮았다며 기억을 미화시켜 그리워한다.


# 굴하지 않는다

바르샤바 도착 이후 그 무엇도 한 번에 시원하게 해결되는 일이 없었고, 예상보다 너무 추운 유럽의 초겨울 일주일 생활이 너무나 걱정되기 시작했다. 급하게 예약해서 온 여행치고는 이 정도면 선방인 거라고 서로를 안심시키며 이불을 얼굴까지 바짝 올다. 여기까지 와버린 이상, 굴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이 바르샤바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결전을 벌이는 쇼팽 콩쿠르 직관 티켓 사수의 날이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줄 서러 가야 하니 자꾸 떠오르는 걱정과 염려를 눌러 담아두고 서둘러 꺼풀을 내렸다.

이전 01화결심은 갑자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