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열린책들
꽃은 자기가 사오겠다고, 댈러웨이 부인은 말했다. 문을 열고 나서자 신선한 대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 같았다. 아침 공기가 몸을 감쌌다. 빅밴이 시종을 쳤다. 종소리가 묵직한 원을 그리며 퍼졌다. 거리는 생명력이 넘치고 모든 것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클라리사라는 원래 이름이 아닌 미세스 댈러웨이, 리처드 댈러웨이의 부인으로 남은 지금 자신이.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젊었을 때는 방 안에 들어서면 그녀의 존재로 온 방이 가득 차곤 했다.
앓고 난 후, 그녀는 다락방을 혼자 침실로 썼다. 누군가와의 접촉에 설렘이 일지 않았고, 그런 것을 혐오했다. 하지만 한 여자를 사랑했던 적이 있었다. 샐리를 처음 보았을 때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녀는 샐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게 대체 누구예요? 샐리에 대한 감정은 완전하고 순수했다. 샐리를 만나러 저녁 식탁에 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강렬함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52살이고, 리처드의 아내였다. 그래도 그녀는 삶을 사랑했다.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는 오늘 저녁 파티를 열기로 했다. 대체 그 파티들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것이다. 그건 하나의 봉헌이라고. 삶에 바치는. 글을 쓰거나 피아노도 칠 줄 모르고, 아르메니아인과 터키인을 혼동하고, 성공을 좋아하고 불편을 싫어하며, 파티가 삶의 가장 중요한 행사가 되어버렸지만, 그녀는 삶을 사랑했다.
한 청년이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파티에 초대받은 손님이 말했다. 언젠가 연못에 동전을 던진 것 말고 그녀는 아무것도 내던진 적이 없었다. 청년은 자기 몸을 내던졌다. 이상한 일이지만, 자살을 한 청년이 자신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가 자신을 대신 해 모든 것을 내던진 것 같아 기뻤다.
인생의 본질인 두려움을 벗어나 안락을 얻은 대가로 지루한 파티에 야회복을 입고 선 채 벌을 받고 있지만, 이렇게 행복해본 적이 없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은 여전히 지속된다.
그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시인은 되지 못하고, 정신이 분열된 채 자기 세계에 빠져 지냈다. 누구는 미쳤다고 했고, 누구는 균형을 잃었다고 했다. 외부세계에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자신이 곧 정신병원에 감금되리란 건 알았다.
부모는 그에게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라고 셉티머스라는 특이한 이름을 지어주었다. 부모 몰래 집을 떠나 런던으로 왔다. 런던은 그를 특이한 이름도 전혀 두드러지지 않는 그렇고 그런 사람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 그곳에서의 여러 경험이 그의 얼굴을 적개심에 찬 얼굴로 바꾸었다. 별 일 아니다. 정원사가 아침에 온실 문을 열고 자기 화초에 새 꽃이 핀 걸 발견하고 꽃이 피었군, 무심코 말하듯. 말짱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 뭔지 모른다. 밤새 꽃 한 송이가 온 힘을 다 해 자신을 꽃 피웠는데, 꽃이 피었군, 무심코 말한다.
시인이 되고 싶었고, 한 여자를 사랑했는데, 전쟁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전쟁이 중단되고, 일상으로 돌아오고, 평화가 찾아왔다. 그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전쟁을 겪는 동안 그는 자신이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군대에서 승진했고, 상관의 신임을 받았고, 진짜 우정인 동료애를 경험했고, 유럽 전쟁을 겪었고, 무엇보다 살아남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생각할 수도 있고 책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도 아무 맛이 없었으며 무엇을 봐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인간 본성이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는 전쟁에서 돌아와 머물렀던 하숙집 딸과 결혼했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결혼하고 동침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해주었다. 그가 미쳤다는 걸 알면서도 곁에 머물러 있겠다고 했다.
햇살이 웃으며 뛰어다니는데 온 세상이 그를 향해 외쳤다. 죽어, 죽어, 우리를 위해서. 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 음식도 좋고 햇살도 따사로우니까. 하지만 의사는 그를 정신병원에 감금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건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자기 곁에 앉아있는 아내가 꽃잎으로 싸여있는 것 같았다. 아내가 말했다. 어떤 일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어요. 그녀는 꽃피는 나무였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싶다고 울면서 말했었다. 그녀는 그와 결혼한 후 너무 울어서 몸이 말랐다. 손가락이 가늘어져서 결혼반지가 커져 낄 수도 없게 되었다. 결혼반지를 뺀 그녀의 손가락을 보자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묶은 밧줄이 비로소 잘려나갔다고 생각했다. 자유였다.
아래층에 의사가 찾아왔다. 그를 정신병원에 가두기 위해 올라올 것이다. 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 산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의사가 데리러 오기 전에, 그는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햇볕이 쨍쨍했다. 꽃이 피었군, 누군가 말했다.
런던을 찾은 건 오랜만이었다. 클라리사를 만난 것도. 피터는 클라리사의 옛 애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리처드 댈러웨이와 결혼해 댈러웨이 부인이 되었다. 그녀와 결혼을 하지 못하게 되어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사랑하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결혼한 여자라 현재 남편과의 이혼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클라리사를 만나 말을 주고받다가 자기도 모르게, 억누를 수 없이 솟구치는 힘에 북받쳐 울음이 터졌다. 그는 울고 또 울었다. 왜 그랬을까. 그는 항상 그녀에게는 뭐든 다 말해버리게 되곤 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특별했다. 그냥 거기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절묘한 유머감각이 있고, 삶을 최대한 즐길 줄 알며, 은유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하고, 너무도 매력적인 클라리사.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만 있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는 것을. 자신이 한심한 사내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그는 즐겁게 살았다. 골프와 브리지를 좋아했고, 무엇보다 여자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금방 싫증이 났다. 어떤 여자도 클라리사를 넘어서지 못했다. 클라리사가 그의 인생에 미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그가 알고 지낸 어떤 사람보다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인생은 간단치 않다. 클라리사와의 관계도 간단치 않았다. 그게 자기 인생을 망쳐버렸다. 젊을 때는 너무 흥분해 있어서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더 깊고 더 열정적으로 느끼게 된다. 젊을 때는 쉰다섯 살인 자신이 지금 느끼는 것의 절반도 느끼지 못했다.
두려움 섞인 황홀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나를 흥분으로 채우는 이게 뭘까.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앞에 와 있었다. 클라리사로군. 그는 중얼거렸다.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을 구상하며 적었다.
<나는 내 인물들의 등 뒤에 아름다운 동굴을 판다. 그럼으로써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을, 인간다움과 유머, 깊이 등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요는 그 동굴들이 서로 이어지고, 각기 현재의 순간에 밝은 데로 나온다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구상대로 ‘댈러웨이 부인’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 등 뒤에 아름다운 동굴을 갖고 있다. 그들이 등 뒤에 지닌 아름다운 동굴은 그들 각자 삶의 내력이다. 댈러웨이 부인이 된 클라리사와 전쟁을 겪은 후 정신이 분열된 셉티머스, 클라리사의 옛 애인 피터, 그리고 클라리사가 사랑했던 소녀 샐리, 그 외 모든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며 각자가 지닌 아름다운 동굴을 드러내 보인다. 그 동굴들은 서로 이어져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히 표현해내는 심리적 기법으로 인간의 진실을 보여줌으로서 삶의 진실에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녀는 일기에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쓸 테고’ ‘나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방법을 마침내 발견했다’고 적었다.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 울프가 자신의 목소리로 쓰고 싶은 것을 씀으로서 삶의 복잡미묘한 결들을 섬세하게 포착해낸 소설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어릴 적 어머니와 언니를 잃은 후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우울증과 대인 공포증, 환청을 겪었다. 신경쇠약은 삶의 곳곳에서 그녀를 따라다녔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시골집으로 피신한 후 그녀의 삶은 황폐해졌다. 전시의 탄압은 그녀의 영혼을 병들게 했다. 그녀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강으로 갔다.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채우고 강물로 걸어 들어가 다시 나오지 않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묘비에는 이런 구절이 새겨져 있다.
<죽음이여, 내 너에게 뛰어들리라,
패배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