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Nov 04. 2021

혹시, 넌... 좀비?

1.5평 방구석 식덕 생활

페페로미아(Peperomia)를 키우기 어렵다고 소개하는 사람은 한 명도(식물유튜버나 식물블로거 중) 보지 못했다. 페페로미아는 실내 원예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첫 경험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권하는 식물이다. 나의 식덕 생활에서도 페페로미아 중 청페페(Peperomia Obtusifolia)가 초반부를 차지한다. 청페페에 이어 필레아페페, 아몬드페페, 수박페페. 이들 4종은 그러나 나에게는 사실상 말썽쟁이다.


페페로미아! 정체를 밝혀라. 너희들 좀비지?!


청페페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딸은 동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잎이 동그래서였을 거다. 동그랗고 딱딱한 잎들은 아주 건강해 보였다. 얼마지나지 않아 페페 잎들은 작은 화분을 넘칠 만큼 무성해져 몇 사람에게 분양해 주었다. 나누고 난 후 날씬해진(?) 동옥이는 이후 예상치 못한 풍파를 모질게 겪었다. 한 여름 뙤약볕에 잎들의 80%가 화상을 입은 것이다. 볕도 쐬고 바람도 쐬라 잠시 내놨던 건데···(ㅠㅠ). 응급처치로, 잎들을 잘라내 앙상하게 남은 줄기는 물꽂이로 돌렸고 그나마 성한 잎은 흙에 심는 잎꽂이를 해주었다. 수박 페페처럼 드라마틱 하게 번식하지는 않지만 - 나의 경험은 아니다- 청페페 역시 잎꽂이로 번식이 가능하다고 내가 들었던 대부분의 식덕 온라인 선배들이 말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다림... 기다림.... 오늘도 기다림.....


뿌리가 달려있어 물꽂이로 돌린 줄기에서는 손톱만한 새 잎이 나오다 떨어지고 나오다 떨어지고, 흙에 꽂은 뿌리 없던 잎들은 기다리니 정말 뿌리가 생겼다. 그러나 그 뿐.   


해도 해도 너무하다.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여름이 가고 갈(짧은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코 앞인데. 식물 파워블로거에게 댓글을 달아 직접 물어봤다. 답글이 달렸다.


"잊어요, 잊고 지내세요, 없다~ 생각하고 그냥 지내세요."


"헉!" 


뿌리 내리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새 잎은 몇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뿌리만 내리면 '번식'에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왜 식덕님들은 번식이 쉽다고 했을까? 오직 뿌리만 내리고 생장을 멈춘 것 같은 청페페들. 잎 크기가 커지지도 않고 새 잎을 내지도 않는다. 다만 남은 잎 하나가 싱싱한 초록이기만 하다. 죽었다고도 살았다고도 할 수 없는 좀비같다. 플라스틱 같았던 호접란 잎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크는지 알 수 없는 다육식물, 선인장보다 더 안 변한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 분갈이를 한 번 더 해준다.

배수성 좋게 흙 배합을 하여, 실내등 아래 좋은 자리를 내주고 다시 기다린다.

 

페페로미아 옵투시폴리아(청페페)여~, 난 너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가습기 너만 믿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