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을 읽자, 근간에 나온 소설을 읽자, 그렇게 마음먹고 황정은, 김초엽을 만났고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과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통해서 몇몇 작가들의 중단편소설을 더 보았다. 근간에 나온 한국소설의 독서를 마음먹은 이유가 한 가지는 아닌데 가장 큰 이유는 편중된 독서로 인해 일상에서나 글에서나 사용하는 단어가 한정되고 있다는 느낌에 괴로웠기 때문이다. 쓰는 단어가 매번 똑같다는 것은 사고가 편협하다는 의미이다. 깊고 넓어지기보다 단단하게 굳어간다는 느낌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딸의 책꽂이에서 가져온 2021년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요즘 젊은이들의 관심은 정말 ‘여기’ 구나, 그런가,... 했다. 페미니즘과 성담론. 고등학교 동창을 오랜만에 만나고 들어온 딸이 ‘친구가 여자 친구를 사귄다’고 말했다가 “걔들 잠자리는 해봤대?”라고 한 아빠의 대답을 전하며 어떻게 아빠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X거품을 물었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딸의 동창은 여성이다. 그러니까 동성애 이야기다.
2021년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한두 작품 남겨두고 책을 일단 덮었는데, 피로감 같은 게 확 몰려와서 그랬다. 하나하나 따지자면 주제도 다르고 서술방식도 물론 다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여성’과 ‘동성애’를 어떤 방식으로든 다루고 있는 작품이 주를 이뤘다는 점이다. 일곱 작품 중, 넷? 다섯? 작품. 그렇게 덮고 나서 작품의 감상과는 별개의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음을 내 동년배들은 이해할까. 그럴 거라 믿고 싶다.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머리가 아픈가, 어떻게 피로하다며 책을 덮어버릴 수가 있는가. 간혹 이슈가 되는 경우에는 고민하고 생각도 정리해보고 그랬다. 짧은 시간에 융단폭격을 당(?)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니, 다른 이슈였어도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는다면 같은 반응이 나오지 않았겠나(!), 나를 용서하자.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제정하고 시상하는 젊은작가상은 올해(2022년)로 열세 번째를 맞았다. 이 상은 등단한 지 십 년 이내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며 선정 역시 ‘젊은’ 평론가들이 한다. 그래서 작품집은 수상작품과 작품에 대한 평론이 함께 실리는데 젊은 소설가를 발굴하고 응원함은 물론 젊은 평론가에게도 기회의 장이 되고 있다. 책의 말미에는 기성작가·평론가들의 독후감이 덧붙여지는데 2021년도 작품집에서 이승우 작가의 심사평의 첫대목이 이랬다.
“주제의 죽음, 의미의 해체 등으로 요약되던 최근 소설에 대한 평가가 오해이거나 잘못된 진단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독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주제에 대한 의욕을 숨기지 않는 소설들이 많았다.”(400-401쪽)
“주제에 대한 의욕”, 내 피로함의 정체가 이런 유의 것이었다는 생각에 밑줄을 그었다. ‘성담론, 동성애’ 주제가 단지 당사자들 그리고 활동가들에게만이 아니라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중요한 이슈로 느끼고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모든 주장이 그렇듯이 설득의 냄새가 나면 뒷걸음질 치게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랩을 읊듯 모호한 글과 자신의 신념을 주장하는 글 그 사이의 문학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