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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Sep 23. 2021

씨앗의 큰 그림

1.5평방구석 식덕 생활


레~먼 트리 베리 프리티 앤 더 레먼 플라워 이즈 스윗 ♬


레몬 먹고 나온 씨를 심었다. 90% 싹이 나왔고 떡잎 치고는 반들반들 빛이 난다. 슬릿 분에 묘목을 하나씩 나누어 심으면서 나눠줄 생각을 벌써 한다. 잎꽂이한 청페페를 받아간 이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그들에겐 빚쟁이가 된 심정이다. 나누고 남은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거의 좀비 수준이다. 죽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새 잎을 내지도 않는다.  나는 기다릴 수 있으나 설레는 마음으로 잘 키워보겠다며 화분을 들고 간 그들은 식물을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성장 속도가 제법 빠른 레몬 묘목으로 집 나간 설렘을 되돌려주고 싶다.


미니 파프리카, 수박, 아보카도, 레몬


먹고 나서 싹을 틔운 식물들이다. 파종시기도 모르고 어떤 환경에서 열매를 맺는지도 모르고 그저 싹트는 게 신기하고 예뻐서 자꾸 해보게 된다. 수박은 싹을 틔우고 기린 목처럼 길쭉하게 자라다가 죽었다. 미니 파프리카는 아래 화단에서 잎들을 풍성하게 내고 있다. 그리고 세 개의 열매를 냈다. 아보카도 키우기는 도사급인 듯. 먹고 나오는 대로 씨앗 껍질을 벗겨 물에 반쯤 잠기도록 놓아두었더니 화분이 네 개가 되었다. 두 개는 뿌리를 내고 잎을 올리려고 갈라지는 중이다. 


씨앗은 매혹적이다. 내 눈을 사로잡고 내 손을 움직이도록 해서 자신의 생장을 도모하는 비상한 존재다. 자신의 과육을 내준 대가를 나로 하여금 톡톡히 치르게 하는 것이다. 내가 씨앗을 싹 틔우는 게 아니라 씨앗의 큰 그림 속에 이미 나의 노동이 포함되어 있다는 듯. 인간의 몸은 식물에게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매개체일 뿐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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