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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Nov 29. 2021

인생 2회 차, 나도 원해

소소하게 철학적인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첫 번째로 사귄 친구가 있다. 딸은 그 친구를 보고 "인생 2회 차, 아무개"라고 부른다고 했다. 언제나 들들 끓는 마음 때문에 속상했다가 즐거웠다가를 오르내리는 자기와는 다른 종자로 보였던 것 같다. 학교 다니는 내내 딸이 했던 말을 종합해보면 그렇다. 친구는 무심하고 뭐든지 별일 아니라는 태도를 잘 취했다. 딸은 그런 친구를 서운함 반 부러움 반으로 바라보았다. 


두 번째 인생을 사는 사람은 첫 번째 인생에서의 유치함과 부적절한 판단들을 반복하지 않을 거라는 상상은 누구라도 할 법하다. 이 상상은 하나의 큰 전제가 있을 때 완성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삶이 아주 똑같이 흘러가야 한다는 전제다. 첫 번째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면 두 번째도 같은 사건이 있어야 하며, 그러려면 그 사건의 발생 조건들이 완벽하게 같아야 한다. 그런 식의 동일한 반복은 우주적 질서가 허락하지 않을 테지만. 


두 번째 사는 것 같은 삶에 대한 열망은 딸만큼이나 나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인생 2회 차는 아마도 동일한 삶의 반복으로서 두 번째가 아니라 다르게 살고 싶은 우리들의 욕망일 테다. 비슷한 사건을 만날 때 이전과는 다른 성숙함으로 혹은 적절한 판단을 내리며 사는 삶에 대한 열망.         


정혜윤의 책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이 주는 직접적인 메시지는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즉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고전을 읽어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많은 자기 계발서가 말하듯 교훈을 얻고 실천하라는 그러면 두 번째 인생이 열릴 거라는 식의 얘기는 아니다. 


고전으로 열어가는 두 번째 인생은 천천히 삶이 끝날 때까지 '진행되어 갈' 여정이다. 우리는 배워가며 자기의 두 번째를 창조해 나갈 수 있을 뿐이다. 정혜윤은 고전을 읽는 시간은, 과거와 읽고 있는 현재와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진행되고 있는 세계는 과거를 참조하고 현재 배우며 미래를 꿈꾸는 시간이다.  


고전을 잘 읽어내기가 힘들다는 사실은 경험한 자라면 누구나 안다. 다 알 것 같은 이야기, 그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이상한 사람은 이상하고 비범한 사람은 비범하고 그래서 너무 낡고 닳은 것 같은 이야기, 어떻게 새롭게 읽어야 할지, 왜 이런 책이 고전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책들. 그 속에서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오히려 길을 잃게 되고 마는... 그뿐인가 잘 읽어보려고 하면 의지도 필요하고 체력도 필요하다. 다른 쪽으로 머리를 굴려보려는 시도로 휴식시간도 산책도 간간히 넣어줘야 한다. 


정혜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오래 읽고 많이 생각하고 쓰고 배우는데 고전만 한 책이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왜냐하면 고전은 소비하고(읽어 치우고) 마는 사물로서가 아니라 나와는 다른 '어떤' 삶들을 보고 느끼고 배우는 시간을 나에게 마련해 줌으로써 다른 삶을 만들어나가도록 돕는 동무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세계는... 반복하는 세계가 아니라 창조해가는 세계다. 다르게 살고 싶은 자에게 두 번째 세계는 반드시 온다. 그 열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만약 우리에게 세계가 한 번만 진행된다면(보이는 그대로만 보는 데서 멈춘다면) 우리는 매 순간 과거의 자신"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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