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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16. 2021

'쓴다'는 행위에 대하여

나는 써야 하는 사람이다

김훈 작가의 몽당연필들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실제로는 아니고. 

김훈 작가는 연필로 원고지에 꾹꾹 눌러 글을 쓴다고 했다. 그의 책상 위에 저울이었다고 기억되고 거기 저울 접시 위에 수북이 몽당연필이 쌓여 있었는데, 더 이상 손에 쥐고 쓸 수 없을 때까지 짧아진 연필들이었다. 


손으로 써보려는 시도는 가끔 해봤다. 

문구를 좋아해서 펜도 사고 예쁜 노트도 사는데 줄어들지를 않는다. 워드프로세서에 익은 손은 펜을 쥐게 되지 않았다. 익숙한 방식이 가장 힘을 덜 쓰는 방식이라 자꾸 쉬운 방식을 택하게 된다. 어쩌다 한번 손으로 쓴 내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다. 크기도 글자마다 들쑥날쑥하고 줄 없는 노트에 쓴 문장은 하늘로 치켜 올라갈 때가 많다. 


요 며칠 작은 노트들을 손글씨로 채우고 있다. 스치는 생각을 메모하거나 기억하고 싶지만 적시에 나오지 않는 단어들을 적어둔다. 그 단어의 유사어, 반대말도 찾아서 적는다. 좋은 문장들도 적는다. 신문기사의 몇 구절도 있고, 보는 책들의 좀 길다 싶은 구절들도 적는다. 


쓰면서 알게 되었다. 한 글자와 다음 글자의 크기와 모양새가 일정하려면 숨의 속도와 간격도 엇비슷해야 한다는 것. 한 획을 그을 때 끝까지 처음과 같은 힘을 주지 않으면 글자가 힘없이 날아가는 모양이 된다는 것. 한 글자의 모양이 마음에 안 든다고 실망하면 그 실망이 다음 글자에 담기고 그래서 결국 또 한 줄이 날아가는 모양새가 된다는 것. 힘 조절이 일정하지 않아서 호흡이 고르지 않아서 글자들 하나하나가 제각각처럼 보일 때도 한 글자의 한 획에 집중했다면 글이 쓰인 한 페이지가 봐줄 만해진 다는 것.


쓰다 보니 김훈 작가의 몽당연필이 떠오른 것이었는데 그 작가는 글을 쓰면서 하고 있는 게 하나 더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숨 조절, 미세근육 조절. 그는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몸 부분 부분의 힘을 조절을 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꾹꾹 눌러쓰는 일에는 뇌뿐 아니라 그런 것이 더 필요했다. 글 쓰는 일이 머리를 쓰고 몸 쓰는 일이 되고 있으니, 쓴다는 것이 진짜 쓰는 일이 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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