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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09. 2021

글 쓸 때는 구심력

나는 써야 하는 사람이다

반절만 읽은 책을 챙겨서 독서 토론하러 가는 길. 


'할 말이 있다. 이 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나는 갖고 있다.' 


"이 책 글맛이 좋지 않아요?" 

"그지 그지, 진짜, 어떻게 역사책을 이렇게 쓰지?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혀." 


"그 글맛이란 게 뭐야? 왜 난 못 느낄까?"


글맛을 느낀 두 사람은 글맛을 모르는 한 사람에게 팔을 겉어 붙이고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눈에서 빛이 나온다. 미세하게 떨리는 눈동자는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고르는 중이다. 점점 높아지고 빨라지는 목소리는, 쏟아지는 말을 하나라도 놓칠까 봐 조바심치는 마음이다. 


어깨가 내려가고 얕은 숨을 몰아내 쉬면 몰아치던 말의 파도가 잠시 멈췄다는 뜻이다. 


"쾌락에의 가장 큰 장애물은 고통이 아니라 망상이다."

(스티븐 그린블랫, 이혜원 『1417년, 근대의 탄생: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이 한 문장 가지고 한 시간을 얘기했다. 


쾌락의 반대가 왜 고통이 아니고 망상인지, 쏟아지는 말들 틈에서 대단히 적합한 예시가 튀어나오자 듣는 사람들과 말한 사람의 격렬한 동의가 담긴 눈길이 부딪친다. 이럴 때 토론 테이블을 감싸는 것은 시원한 쾌락이다. 절정의 여파는 즉시 사라지지 않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윙윙 소리 없는 진동이 몇 시간 동안 이어진다. 이 진동이 자신의 힘을 보존하면서 다른 성질로 바뀌지 않으면 (오늘의) 글쓰기는 건너갔다고 생각해도 좋다. 


말할 때의 에너지와 글 쓸 때의 에너지는 질적인 면에서 다르다고 느낀다. 말하기를 추동하고 유지하는 힘이, 퍼져나가는 원심력이라면 글 쓸 때는 구심력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부터 밖으로 퍼져 나간 힘을 모아들이고, 가만가만 문을 열고 들어와 스탠드를 켜고 마치 화난 사람처럼 말없이 책상에 앉아야 한다. 밖으로의 진동을 내부로 끌어들여 불꽃은 작게 줄이되 절대 꺼지지 않도록 에너지를 분배해서 내보내면서... 


이제 쓸 준비가 되었다.


매일 글을 쓰는 일은

내 몸과 마음에 배당된 유한한 힘을 내 필요에 맞춰 조율하는 법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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