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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한 Dec 15. 2020

#27. 썸네일 스케치를 통한 이해

 그림을 그리기 전 사전 계획이 중요하지만 누가 주인공이고, 카메라는 어떠하며 조명은 어떤지를 일일이 적으며 계획하기는 좀 애매할 수 있겠죠? '하늘의 명도를 건물보다 밝게 하고, 포컬 포인트를 위해 좌측 하단 9분할 구도의 접점에 자동차와 피규어1,2를 배치하도록 한다. 빛은 우상단에 위치하여 그림자는 우상단에서 좌하단으로 흐르고...' 즉각적으로 잘 이해가 되시나요? 기껏 생각해놓은 그림에 대한 계획을 기록하다가 잊기도 쉬울 것입니다. 이보다는 시각적인 레퍼런스가 있다면 계획을 세울 때 도움을 많이 얻을 수 있는데요. 영화를 제작할 때도 '컨셉아트'나 '스토리보드' 등의 시각적인 레퍼런스들을 통해 보다 직관적으로 장면을 계획합니다. 그림의 계획 단계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각적 레퍼런스는 바로 '썸네일 스케치(thumbnail sketch)'입니다.


  본래 썸네일은 엄지손톱을 의미하는데요. 영상 컨텐츠에 익숙하신 분들은 동영상을 대표하는 작은 미리보기용 이미지를 썸네일 혹은 썸네일 이미지라고 부르기에 친숙한 단어일 것입니다. '썸네일 스케치'는 본래 계획한 그림 사이즈보다 작게 그림 전반의 계획들을 간단하게 미리 적용한 참조용 스케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썸네일 스케치를 습관화하면 다음과 같은 다양한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직관적이고 효과적인 시각적인 레퍼런스의 획득

2. 장면을 그림으로 해석하는 능력 강화

3. 사전 리허설을 통한 그림의 장애요소 제거

4. 쉽고 재밌어 계속 그리게 됨


 썸네일 스케치는 그림을 그리기에 유용하고 중요한 시각적 정보들을 담게 됩니다. 어떤 장소나 이미지를 그림으로 옮길 때 우리는 해석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림으로 바로 옮길 경우 해석 과정에 오류가 있어도 수정하기가 참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썸네일 스케치를 통해 미리 그 길을 가보면 어떤 것이 중요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자연스럽게 트레이닝이 되겠죠? 이들이 반복될수록 그림을 그리기 위한 주요 해석 능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썸네일 스케치는 실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비해 그리는 과정을 단순화하여 주요 요점만 정리하여 표현하기에 쉽고 부담도 훨씬 적습니다. 그리고 그림의 전반적인 느낌을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기에 참 재밌습니다.


 그럼 썸네일 스케치는 어떤 정보들이 담기는 것이 좋을까요?


1. 주인공 그룹인 포컬 포인트

2. 빛의 방향과 이로 인한 어두움의 영역 및 그림자의 방향

3. 눈높이 투시와 구도에 따른 장면 구성

4. 명도(Value)에 따른 그룹화, 단순화 정보


 1~3번의 경우는 그림 감독으로서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던 바로 그 부분들입니다. 주인공, 조명, 카메라에 대한 부분인 것이죠. 여기에 실제로 그림으로 옮길 때 그림의 중심을 잡아 줄 4번 명도 관계의 정보가 들어가 있으면 유용합니다. 실제 예를 통해 설명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언젠가 그려보려고 찍었던 몬트리올 거리들을 썸네일 스케치로 그려 볼 것인데요 우선 첫 번째 장소입니다. 올드 몬트리올 지역에 있는 몬트리올 은행을 배경으로 한 거리 모습입니다.


 이를 눈을 반쯤 감고 보면 명도 관계만 남고 디테일이 사라집니다. 

 바로 이런 느낌으로요. 이 상태에서 3가지 명도만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밝음, 중간, 어두움의 세 가지 명도이죠. 다만 여기서 고려하시면 좋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윌리엄 로렌스(William B. Lawrence)님은 그분저서 'Painting Light & Shadow in Watercolor'에서 명도를 밝음, 중간, 어두움의 3단계로 균등하게 나누는 것보다는 면적의 명도 그룹 vs 나머지 명도 그룹의 관계로 명도 단계를 구성할 것을 제시하셨는데요. 이 부분에 저도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세 가지 명도 그룹을 비슷한 비율로 배치할 경우 뭔가 강, 강, 강의 리듬만 존재하는 것처럼 뚝뚝 나눠지고 리듬감도 없으며 그림의 전체적인 통일성도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는 중간 명도 그룹이 제일 면적이 크고 밝고 어두운 명도가 약간씩 배치되는 것이 그림이 안정적이면서도 재밌는 리듬감이 생겨서 좋은 것 같습니다. 또한 중간 명도 그룹이 클 때 그림 전체에 걸쳐 그룹화하고 연결하여 주는 것이 용이합니다.


 수채화 마스터이신 '앤디 이븐슨(Andy Evansen)'님도 중간 명도 그룹을 연결하여 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하여 많이 강조를 하시는데요. 저는 앤디 이븐슨님의 수업시간에 배운 밸류 스터디에 대한 부분을 썸네일 스케치로 적용하여 활용하고 있습니다.


 눈을 반쯤 감고 확인한 명도 관계를 기억하며 프레임을 먼저 잡은 후 눈높이를 잡아 줍니다. 사진을 보시면 제가 몬트리올 은행 건물의 살짝 측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럴 경우 건물의 모서리가 드러나며 2점 투시가 생기게 됩니다. 여기서 주의하실 것은 건물이 3점 투시로 그려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것인데요. 이전에 라인 투시에 대한 글에서 고개를 들어서 위를 본 경우가 아닌 이상 화면상의 건물은 3점 투시로 설정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었죠? 다만 요즘은 핸드폰 카메라의 기본 화각이 약간 광각으로 설정되어 3점 투시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3점 투시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면 건물의 세로라인들은 모두 지면에서 수직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고려하며 눈높이 라인과 주요 투시 라인들을 잡아줍니다.


 스케치는 최대한 단순하게 진행합니다. 명도 그룹 군으로 묶어 최대한 그 경계들만을 실루엣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이 단계에서 구도적으로 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적합한 지를 테스트 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주요 포컬 포인트가 무엇인지도 유념하는 것이 좋습니다.


 스케치를 완성한 후 어두운 단색 물감으로(저의 경우는 인디고 수채물감 한 색만을 사용하였습니다.) 모든 중간 명도들을 연결하며 칠해줍니다. 이때 중간 명도에 해당하는 물감물을 매우 많이 만들어야 마르지 않고 기분 좋게 채색이 가능합니다. 이를 통해서 실제로 그림을 그릴 때도 중간 명도의 물감물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물감물을 쓰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전체 그림에서 색에 대한 면적을 칠하고도 약간 여유가 있을 정도로 물감물을 만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모자라서 다시 만들게 경우 참 안타까운 상황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밝은 명도는 모두 칠하지 않은 상태로 둡니다. 하늘의 경우는 보통 밝은 명도일 경우가 많아 채색을 하지 않고 화이트 그대로 두도록 합니다. 만약 빛을 받는 건물의 명도가 하늘보다 확연히 밝아 명도 관계가 전환될 경우에는 하늘을 중간 명도에 포함하고 건물의 받는 면을 칠하지 않습니다.

 마치 연결하기 게임을 하는 것처럼 될 수 있는 한 많은 부분들을 연결해주세요.


 중간 명도의 채색이 모두 끝나면 이를 잘 말려 준 후


 좀 더 짙은 농도로 어두운 명도 그룹군을 칠해 줍니다.


 이때 통합되었고 연결되었던 중간 명도의 오브젝트들은 어두움을 묘사함으로 형태가 드러나게 됩니다.


 피규어 또한 중간 명도 바탕 안에 밝음과 어두움이 살짝씩 배치되면 조화롭고 안정감 있게 표현됩니다.


 상세한 오브젝트의 형태를 묘사하고 그에 맞는 색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명도를 표현함으로 오브젝트를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완성입니다.


 다음은 저희 집 근처의 거리 사진입니다. 역광이 만들어내는 빅 쉐잎들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그림으로 그려보고자 찍어 봤습니다.


 또 반쯤 눈을 뜨고 사진을 바라보시면 아래의 이미지와 같은 느낌으로 보이실 것입니다.

 디테일은 사라지고 명도 별 그룹화가 진행됩니다. 이를 캐치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썸네일 과정은 좀 더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간단히 프레임을 잡은 후는 눈높이 라인을 설정해줍니다.


 적절한 구도가 어떠할지를 생각하며 중간 명도 그룹의 실루엣 중심으로 스케치해줍니다. 눈높이 라인도 필요에 따라 수정해줍니다. 주요 구도의 장애요소들을 실제로 그림으로 그리기 전에 썸네일 스케치를 단계에서 발견 수정한다면 그 유익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중간 명도를 최대한 연결하며 칠해줍니다. 하나의 빅 쉐잎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 하이라이트 부분들과 밝은 명도는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잘 남겨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도 하늘은 밝은 명도라서 채색하지 않습니다.


 어두운 명도들을 채색합니다.



 이렇게 완성입니다.

 썸네일 단계에서 사인의 위치도 테스트해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몬트리올 다운타운 거리 모습입니다.

 엇 그런데 눈을 반쯤 감고 봐도 하늘이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위에서 이야기 한 건물의 밝은 면이 하늘의 명도보다 더 밝은 경우입니다. 하늘을 중간 명도에 포함하기로 결정합니다.



 프레임을 잡고 눈높이 라인을 잡아 봅니다.


 이번에도 상대편 거리의 건물 반측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2점 투시인 것을 알 수 있는데 원본의 사진의 경우는 3점 투시로 찍혀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눈으로 관찰하고 그릴 경우는 자연스럽지 않은 투시입니다. 그래서 2점 투시로 변경합니다.


 건물의 세로 라인들을 모두 지면에서 수직으로 변경합니다. 이번에는 하늘을 중간 명도로 포함합니다. 땅에도 많은 부분 어두운 그림자가 져서 이전 두 그림들과는 달리 중간 명도로 포함합니다.


 건물의 창들도 기본적으로 중간 명도로 잡아 주셔야 합니다. 그 후 일부 어둠을 더하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잡아줍니다.


 좌측의 나무는 그림에 포함할 경우 멋진 포인트가 되면서 동시에 하늘을 재밌게 분할할 것 같아 포함합니다.


 다음과 같이 완성하였습니다.


 세 곳을 썸네일 스케치로 표현해봤는데요. 그림의 사전 계획을 막연하게 머릿속에만 정리해 놓거나 글로 정리하는 것보다 썸네일 스케치를 활용하면 그림의 방향에 대해 간단하면서도 직관적이고 효과적인 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명도 관계는 채색이 들어가게 되면 의외로 혼돈하기가 쉬운 부분입니다. 썸네일 스케치로 명도 관계를 확인해보는 것은 이를 실제 그림으로 옮길 때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간단한 썸네일 스케치를 통해 어떻게 그릴 지 고민하고 있는 풍경을 좀 더 쉽고 재밌게 접근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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