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마이클 솔로브예브 선생님과의 수채화 수업에서 지난 수업 이후 제가 그렸던 그림들을 피드백 주시는데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림들의 투시들이 좋아졌는데 투시가 약하다.
의아해하고 있는 저에게 선생님께서는 "형태의 거리감을 나타낼 수 있는 라인 투시는 좋은데(line perspective) 이와 함께 거리감을 나타내는데 중요한 토널 투시(tonal perspective)가 약하다."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평면적인 종이에 공간감을 담으려면 우리의 경험들에 근거해서 시각적인 착각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라인 투시는 그림 안의 오브젝트를 투시도법에 의해 거리별로 맞는 형태로 그리는 것이라면 토널 투시는 채색과 묘사 수준에 관련된 투시입니다. 토널 투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멀리 있는 원경의 영역이 어떤 식으로 보이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의 사진을 근경과 중경 원경으로 분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근경에는 중경과 원경 대비 각각의 오브젝트들의 형태와 컬러가 모두 뚜렷합니다.
2. 근경과 원경 중간의 위치에 있는 중경의 오브젝트들은 형태가 근경보다 불분명해지며 오브젝트들의 컬러 또한 뚜렷하지 않고 블루 계열 컬러의 간섭을 받습니다.
3. 가장 멀리 있는 원경은 오브젝트의 형태들이 모두 합쳐지고 큰 실루엣만 파악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컬러는 오브젝트 개별의 컬러가 거의 보이지 않고 블루 계열의 컬러만이 보입니다.
밑의 몬트리올 다운타운의 사진도 살펴보겠습니다.
위의 사진도 근경, 중경, 원경으로 나누어 보면
1. 근경은 매우 오브젝트들이 세부 묘사까지 완벽한 상황이고, 컬로도 각각의 오브젝트의 컬러들이 선명합니다.
2. 거리상 중경의 오브젝트들은 형태의 그룹화가 시작되고 단순화되며 오브젝트 자체의 색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블루 계열 컬러가 덮어씌워진 듯합니다. 카메라의 경우 우리의 눈보다 훨씬 더 세밀하게 보지만 그래도 거리가 멀어지면 픽셀이 뭉개지면서 단순화 통합화가 일어나죠? 다리의 교각 모습들은 구분이 되지만 자동차들과 건물의 창문 등 세밀한 부분들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3. 원경의 경우는 빛을 받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구분 정도만 나타나고 형태들은 큰 쉐잎으로 모두 통합됩니다. 색은 거의 블루 계열 컬러로 이루어졌고 대비들이 매우 낮은 것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블루 계열 컬러의 간섭을 받는 것은 공기에 밀도가 있다 보니 멀리 있는 오브젝트 들일수록 많은 공기를 투과하여 바라보는데 보통 낮 시간대에는 햇빛의 산란을 통한 대기의 컬러가 블루 계열이기 때문입니다. 대기의 컬러는 시간대마다 달라지는데요. 그래서 원경이라고 모두 블루 계열의 컬러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석양의 시간대 같은 경우에는 원경에 묻어나는 컬러도 레드 계열의 컬러로 따스하게 바뀝니다.
다시 한번 이 표도 참조해보시면 좋겠어요.
위에서 살펴본 바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토널 투시는 대기의 공기에 의하여 영향을 받기에 '공기 원근법'이라고도 부릅니다. 원경으로 갈수록 묘사를 단순하게! 대비도 약하게! 대기의 컬러가 묻어나게! 그리는 것이 토널 투시의 핵심입니다. 그 당시 제가 그리고 있던 그림들을 살펴보면 확실히 토널 투시 부분이 약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실 때 꼭 멀리 있는 먼 산을 포함하지 않을 경우도 있겠죠? 또 원본 사진이 멀리 있는 영역까지 매우 명확하게 찍힐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림 감독입니다. 그림을 위한 재디자인을 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있습니다. 꼭 매우 멀리 있는 원경까지를 포함한 풍경이 아니더라도 토널 투시적인 요소를 적용하여 거리감이 벌어지도록 재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위의 보트 그림을 토널 투시의 요소들을 고려하여 포토샵으로 수정하여 봤습니다. 위의 그림과 비교해봤을 때 좀 더 거리감이 잘 느껴지시나요?
토널 투시에 대해서 라인 투시를 설명하며 바로 이어 설명하지 않은 것은 채색의 영역과도 밀접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펜 앤 워시 중 라인을 많이 쓰고 채색을 가볍게 할 경우에 토널 투시보다는 라인 투시를 더 많이 신경 쓰시게 될 것입니다. 라인 투시에 주의하며 드로잉을 먼저 충분히 즐기신 후 가벼운 채색을 거쳐 본격적으로 채색에 집중할 때 토널 투시를 신경 쓰셔도 됩니다. 물론 펜 앤 워시의 경우에도 토널 투시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원경으로 갈수록
묘사를 단순하게!
대비도 약하게!
대기의 컬러가 묻어나게!
위의 내용을 기억하면서 작업한 펜 앤 워시 그림인데요. 먼 산이 보일 정도로 거리가 벌어진 곳은 아니지만 원경에는 아예 펜을 대지 않았고 묘사도 단순하게, 대비도 약하게, 원경의 대기의 컬러가 묻어나게 그려 봤습니다.
[브릿지가 있는 거리 - 2020.10.11]
수채화에서 토널 투시를 표현하는 좋은 방법은 첫 워시를 최대한 그대로 살려 약간의 어둠만을 표현하여 원경의 오브젝트들을 단순하게 그려 주는 것입니다.
짧게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전체 워시를 들어갑니다. 하늘에 웜한 컬러를 살짝 섞습니다.
대비가 중경과 근경보다 낮아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여 주시고요. 대비는 주인공들을 돋보이게 해 주기 위해 아껴주세요.
원경에 더 묘사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아주세요. 그 에너지 또한 주인공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발산해주시면 됩니다. 다음과 같이 완성합니다.
[원경을 보다 멀리 수채화 - 2020.07.11]
토널 투시를 알게 된 이후 그림의 계획과 채색 시에 토널 투시를 적용해보고 있습니다. 계획 단계에서부터 토널 투시를 고려하지 않으면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원경을 세밀하게 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실 수도 있습니다.
또한 한 건물 내에서도 토널 투시를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한 건물 내에서 근경~원경까지의 거리를 설정해주는 거죠.
하지만 그리는 이의 의도에 따라 밑의 그림과 같이 토널 투시를 깨고 오히려 정반대로 표현하여 집중하고자 하는 부분을 집중해줄 수도 있죠. 즉 토널 투시보다 그림 감독으로서의 의도에 의해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라인 투시와 함께 토널 투시를 적용하여 2차원 평면에서의 그림에 3차원적인 입체감과 공간감을 듬뿍 넣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