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그리는 수채화를 통해서도 화실에서 그리는 수채화를 통해서도 저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는데요. 펜 드로잉의 경우는 뭔가를 그리는 느낌이 착 달라붙는다면 수채화는 마치 허공에 삽질을 하는 듯한 느낌이더라고요. 마음에 드는 수채화 느낌을 계속 찾아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갔지만 그것은 저 멀리 은하계 밖에 있는 무엇이었고, 결코 제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채색에 자신이 없어져가고 펜이 없이는 수채화 단독으로 그림을 그리기를 참 꺼려했죠.
그렇게 펜과 수채가 결합된 펜 앤 워시(Pen & Wash) 그림만을 주로 그리면서 이에 또 만족하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펜 앤 워시로 그린 그림을 보며 '이 그림에서 펜을 걷어내면 도대체 어떤 느낌이 남는 거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군요.
'이래선 계속 펜에만 의지하겠구나.'라는 우려가 쌓이자 마음의 결단을 하고 펜을 잠시 내려놓았습니다. 펜을 걷어낸 저의 수채화는 디지털에서 손 그림으로 넘어왔을 때 제 라인의 민낯을 만났던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녹음이 우거진 숲은 입체감 없이 평면적일 뿐이었고 (좌하단의 그림을 그린 후부터 그린 노이로제에 걸렸습니다. 그린 그린한 풍경을 그릴 때마다 이때의 그림이 생각나며 어쩔 줄을 몰랐죠.) 야경은 밤의 느낌은커녕 추상화에 가까웠습니다.(우하단)
그리고 터치는 왜 그리 많은지... 투명함이라고는 찾아보기가 힘들거나 혹은 고체 물감의 잘못된 사용으로 아예 색이 칠해지지 않은 것처럼 되어 버리는 극과 극의 연속이었죠. 밑의 아이는... 아이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당시 위드로 주제로 흑백의 아이 사진이 제시되며 '무채색의 아이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세요'라는 타이틀이 붙은 주제였는데 아이에게 생명은커녕 절망을 불어넣어준 거 같은 그림이었네요.
[위드로 1기 3주차 주제/ 무채색 아이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세요 - 2017.06.20]
투명하고 물이 풍성한 느낌의 수채화가 아니라 가뭄에 쩍쩍 갈라진 땅과 같은 마르고 텁텁한 수채화... 제가 그리고 싶은 수채화의 정 반대에 있는 저의 그림을 바라보자면 '수채화를 내가 감히 그릴 수는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딱 한 번! 화실에서 그린 수채화가 마음에 들었던 적이 있는데 수채화를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밑의 그림인데요. 그간 거의 매일 수채화를 그렸는데 이 때서야 처음으로 수채화처럼은 보이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죠. 그간의 좌충우돌을 알고 계셨고 "드로잉과 달리 수채화는 왜 이렇게 안 풀릴까요?"라고 걱정도 해주셨던 수경 선생님께서 "드디어?!" 하고 기뻐하셨을 정도였어요. 이 그림도 사실 제가 좋아하는 물 느낌이 풍성하고 투명한 수채화는 아니었습니다. 불필요한 터치들이 너무 많고 색도 탁하죠. 그래도 이 그림을 그렸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바퀴 사이의 고양이 수채화 - 2017.12.04]
6월 5일 첫 수채화 수업을 받았고 위의 그림을 12월 4일에 그렸으니 정말 반년만에 그나마 마음에 드는 그림이 한 번 나온 것이네요. 아마 수채화가 생각하기에 제가 정말 불쌍해 보였나 봅니다. 항상 퇴짜를 놓다가 이날 한 번 마음을 열었던 거 같아요.
그러나 시간이 흘러 2018년 5월이 되었습니다. 또다시 반년의 시간이 되어가려는 시점에서 지난 고양이 그림 이후 수채화로 마음에 들었던 그림은 거의 없다 싶은 상황이었고요. 저는 저의 수채화에 많이 지쳐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저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준 세 그림이 있습니다.
푸른 괴물처럼 보이는 하늘과
황홀한 석양과 분위기 있는 가로등을 그리려 하였으나 그러한 석양은 쌈 싸 먹은 그림
마지막으로 텁텁함의 끝을 보여 준 돼지 빵!
이 그림들을 끝으로 수채화는 고이 보내 주려 했습니다. 1년 4개월의 손 그림... 그리고 11개월의 수채화의 여정을 끝으로 수채화는 제 길이 아니라 여기고 펜 드로잉에 전념하고자 하였습니다. 더 이상 수채화를 그릴 여력과 마음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