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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한 Oct 27. 2020

#10. 다시 수채화의 손을 잡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전환기가 되는 그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그림은 특별히 잘 그리지 않은 것일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오랫동안의 고민이 일순간 해소되거나 앞으로의 그림의 방향성에 큰 힌트를 줄 수 있는 그림이기도 하죠. 2018년 5월 14일 저 또한 그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다음의 그림입니다.

[나의 그림에 실제로 이정표가 된 이정표 수채화 - 2018.05.14]


 돼지 빵! 그림으로부터 3일 후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요. 이 그림이 제게 실제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잘 그린 그림은 분명 아닌데 이 그림이 왜 이정표가 된 것일까요? 그 이유를 지금 돌아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처음으로 라인이 아닌 면으로서의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배경과 사물의 관계에 대비(contrast - 대비는 명도, 색상, 채도의 다양한 대비가 있지만 일단 여기서는 기본적인 밝고 어두움의 차이를 말하는 명도 대비를 칭하도록 하겠습니다.)가 처음으로 나타났는데 하늘과 이정표의 흰 테두리, 대각선 아래쪽의 이정표와 그림자의 대비. 그리고 이정표 기둥의 밝은 면과 나무 어두움의 대비가 그것입니다. 펜으로 그릴 때는 이미 펜이 분명한 경계를 표현하기에 큰 대비를 주지 않아도 되는데요. 면과 면이 만나는 수채화에서는 적절한 대비가 잘 표현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배경을 표현하는 것을 통해 그리는 오브젝트(object - 사물뿐 아니라 인물 등 그리는 대상 자체)를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2. 더 많은 물과 물감을 사용하였습니다. 기존에는 첫 번째 채색부터가 메마른 느낌이 들고 물감이 마르면 또 연해져서 덧칠들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요. '수채화를 끝내는 김에 물감이라도 많이 써보자. 아껴 뭐하나?'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또한 물을 생각보다 많이 써야 한다고 했던 수채화 선배들의 조언을 기억하며 바로 전 그림보다 2배의 물과 물감을 썼던 걸로 기억합니다.


3. 사용한 물감 수를 3원색 중심으로 제한했습니다. 수채화에 지치다 보니 이 색을 써볼까 저 색을 써볼까 고민하는 것도 지치더라고요. 그래서 가지고 있던 윈저 & 뉴튼 물감들 중 3원색에 해당되는 레드(윈저 레드), 옐로(퍼머넌트 옐로), 블루(프렌치 울트라마린)만 선택, 조색하여 사용했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색이 이전보다 훨씬 살아나는 거예요! 색을 사용하길 포기했더니 색이 살아나는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오히려 이색 저색 많이 고르고 많이 섞다 보니 색이 탁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순수한 3원색의 경우 이들을 섞어 2차 색(위 그림의 그린은 2차 색으로 옐로 + 블루 조합으로 사전 조색하여 만들었습니다.)들을 만들고 이를 섞어 또 3차 색들을 만들 수 있는데요. 3원색 외의 다양한 물감들이 이미 조색된 2차, 3차 색들인데 이를 또 섞어 색을 만들고 하니 색 자체가 탁해지더군요. 색은 많이 섞으면 섞을수록 탁해지고 블랙에 가까워집니다.


 아직도 쓸데없는 덧칠이 많은 상황이었지만 이때 처음으로 '라인 중심의 펜'과는 다른 '면 중심의 수채화'에 대한 이해가 싹트게 되었습니다. 다시 저 멀리서 수채화가 손을 내미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수채화 너란 녀석은... 그러나 이번엔 나도 단단히 마음먹었다고.' 하면서도 이정표 그림을 그리며 이해한 부분들을 생각하며 수채화를 그린다면 어떤 변화가 있긴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라인 중심의 펜과 달리 수채화는 면 중심입니다.


 당시 위에서 정리한 세 가지를 정확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엇비슷하게 이해는 했던 거 같아요. 이러한 부분들을 생각하며 다음 그림들을 그리는데 "엇? 돼지 빵과 다르네?"하고 놀랐습니다. 이정표 바로 다음 그림들입니다.

모두 5월 16일에서 18일까지의 그림인데요. 갑자기 이 전까지의 그림에서 전혀 느낄 수 없었던 빛의 느낌이 그림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불러보는 5월 11일의 돼지 빵 그림입니다.

[충격의 돼지 빵 그림 - 2018.05.11]


그리고 정확히 10일 뒤 5월 21일의 그림입니다.

[꽃과 벌 수채화 - 2018.05.21]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저 그림들이 잘 그렸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사고의 일대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면 중심으로의 사고 전환!' 이는 제게 실로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때의 감흥을 기념하고자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그간의 변화를 생각하며 그림의 제목을 '선'에서 '면'으로(Line to Surface)로 지었는데 이 그림은 제게 기념비적인 그림이 되었습니다.

[선에서 면으로/ Line to Surface - 2018.05.23]


 면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강력한 라인의 존재가 없이 어떻게 형태를 입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까요? 그것은 오브젝트를 감싸는 배경이나 인접한 면에 적절한 대비를 줌으로써 가능합니다. 이를 주인공 '오브젝트'가 아닌 그 외 배경과 같은 '네거티브 영역'을 그려줌으로 오브젝트를 드러낸다고 하여 '네거티브 페인팅(Negative Painting)'이라고 부릅니다. 위의 그림에서는 소의 왼쪽(그림에서의 오른쪽) 뿔 너머의 녹색 배경과 뿔의 하이라이트의 만남. 소의 등 부분과 오른쪽 뿔 하이라이트의 만남, 오른쪽 귀 윗면과 몸통의 만남 등이 그렇게 표현된 것으로 이러한 표현들은 의도한 대로 주 오브젝트를 표현할 뿐 아니라 그보다 정말 중요한 것, 그림을 그리는 데에 있어 핵심일 수도 있는 빛을 표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정표 그림 이후 그려나간 몇몇의 그림에서 제가 빛을 느끼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부분 때문이었습니다. 밑의 그림은 네거티브 페인팅을 활용하여 빛을 드러내려 했던 그림입니다.

[오후의 햇살 수채화 - 2020.07.08]


 당시의 변화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진 못했지만 무엇인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채화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기에 언제 이 느낌이 뒤집어질지 확신할 수 없었죠. 선택의 순간은 왔고 저는 계속해서 수채화의 손을 잡기로 선택하였습니다. 그 길이 아무리 험할지라도 가능성만 있다면 걸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을 저는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선택을 했다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저처럼 수채화로 맨 땅에 헤딩을 시작하신 분들. 뭔가 모를 수채화의 매력에 이끌려 일단 발을 들여놓으신 분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수채화의 매몰참에 고개를 돌려 버리신 분들도 저의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수채화와 화해를 시도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그려도 안 될 것 같던 수채화가 마침내 풀리기 시작할 때 참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실 거예요. 지금 이 순간 수채화에게 손을 내밀어 보실 것을 진심으로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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