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 로댕 미술관
파리 입성 둘째주, 그리고 화요일.
월요일에 쉬는 미술관과 화요일에 쉬는 미술관을 알아놓고 본격적인 미술관 투어에 나섰다. 어제는 퐁퓌두의 근현대미술관을 갔으니 오늘은 로댕 미술관~!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 적당한 규모에 야외 정원도 있으니 딱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에는 오전 내 비가 내리더니, 이번 주 들어 화창한 날씨까지! Musee Rodin, 기다려!
남편이 출근을 하고도 아이들은 한참을 꿈나라다. 어제 엄마랑의 첫 외출이 힘들었나? 큰 아이가 먼저 깨서 티비에서 만화를 골라 틀어주고, 둘째가 일어나길 한참을 기다렸다. 아홉시 반이 되어서야 나온 데이빗. 계란 스크램블을 하고, 즉석국을 끓여서 밥을 먹였다. 김하고 어제 한 어묵볶음도. 할머니가 고이 키워주셔서 밥만 찾아서 큰일이다. 애들 밥을 먹이고 '나가자!' 했더니 좀 놀다가겠다고 해서 나도 다이어리도 쓰고 벼르고 있던 세탁건조기도 사용해 보았다! 작동은 안시키고 준비만 시켰다는 걸 40분 지나고서야 알았다. 계속 돌아가는 소리는 났는데. 동작(depart) 그러니까 '시작'을 안 누른 거였다. 어쨌거나 그렇게 빨래 건조도 하고 거의 열두시에야 출발했다.
14호선 끄트머리에서 가장 끝인 생라자르역까지 가서 13호선으로 갈아탔다. 혼자라면 갈아타지 않기 위해 중간에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이들과 함께라 걷는 길을 줄이기 위해 환승을 했다. 처음 타 본 13호선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생라자르 역이어서 그런가 왠지 눈빛이 무섭게 느껴지는 사람들. 긴장 팍 하고 아이들을 꽉 붙잡고 버텼다.
바헨(varenne)역에서 로댕 미술관은 금방이었다. 십년도 더 전에 왔던 이곳을 오늘, 내 아이들과 함께 다시 오다니 느낌이 새로웠다. 짐 검사를 하고, 어른 표 한 장을 사서 입장!
들어가자마자 생각하는 사람을 보며 큰 아이가 신나 했다. "뭘 생각하고 있을까?" 물어보니 큰아이는 "내가 왜 여기서 생각하지?" 하는 대답 같지 않은 말을 했고 둘째는 '나는 누구지?'하는 뭔가 존재론적인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물론 존재론적이고 뭐고는 모르는 단순한 어린이들의 답변이었겠지. 이런 아이들한테 엊그제 오르세에서, '지옥의 문에 있는 저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하고 질문했는데, 내가 너무 철학적인 얘기를 했을까 혼자 반성하고 오늘은 어린이 수준에 맞추기로 한다.
아이들은 어느새 지옥의 문 앞에 있는 두 개의 망원경을 발견하곤, 생각하는 사람과, 엊그제 오르세 미술관에서 찾았던 해골 등을 찾아보겠다고 달려간다. 나도 예전에 너구리와 예쁘게 차려 입고 와서는 저길 들여다봤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내가 사진 찍었던 장소에 서 있는 아이들을 찍어주면서 어쩔 수 없이 세월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나에게 이제 젊음이 "안녕"하고 인사하는 것 같다.
저택에 들어서니, 우릴 맞이하는 <키스>, "얘들아, 둘이 뭐 하고 있어?" 엄마는 또 이런 걸 묻는다. "어, 뽀뽀" "어 그래서 이거 제목이 '키스'야 le baiser". 막 불어로도 알려주고.. 자세히 들여다보던 큰애가 입이 붙어있다고 한다. "어, 그렇구나" 조금 민망했지만, 금세 관찰력 좋다고 칭찬했다. 어린이와 미술관에 갈 때 해야할 일은 무조건 칭찬이다.
방 하나하나를 지날 수록 감흥이 식어가는 아이들을 재촉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마구 던지고, 2층으로. 카일은 정말 관찰력이 좋게도 계단 가운데서 "엄마, 여기 서 봐. 여기서 보면 저거 보여." 해서 깜짝 놀랐다. 과연 계단 가운데에선 키스가 보였거든. 또 칭찬!
구경하면서 이런 저런 질문을 퍼 붓는 카일. 오르세에 있는 지옥의 문은 가짜냐. "다 진짠데 그게, 틀을 만들어 놓고 뭐를 부어서 만든 거라, 도쿄에도 있고 파리에는 오르세에도 있고 여기도 있는 거야. 재료가 좀 다른 건데" 하면서 답을 하는데 '뭐'에 해당하는 것들을 얘기해주면 좋으련만 확실하게 잘 모르니 미안했다. 둘째는 이게 엄청 옛날 것인지를 궁금해 했다. 로댕의 일생으로 미루어 보아 백년도 더 된 거라고 알려줬더니, "우와~ 정말 옛날 거다" 한다. 그래, 백년의 삼분의 일도 더 산 엄마는 진짜 오래된 사람 같다. 아이들에게 100이란 완전수일까. 궁금한 게 많은 아이들을 위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카페에서 빵을 골라 점심을 먹고 카일에게 임무를 맡겼다. 샌드위치를 다 먹을 무렵, 엄마를 위해 커피 한 잔을 사다 달라고. "커피 한 잔 주세요.(Un cafe, s'l vous plait)"를 해 보라 한 것. 카일은 용감하게 커피를 주문해 왔다. "espresso"도 덧붙였다고 한다. 그 표정이 어찌나 의기양양하던지, 속으로는 걱정하던 나도 마음이 환해졌다.
야외 정원을 한가로이 거닐었다. 아이들은 춤을 추듯 걸었고, 깎아 놓은 나무 문에서 잡기 놀이를 한다고 뛰기도 했다. 나는 금세 사람들 때문에 안된다, 넘어질까봐 안된다 만류했지만. 숲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좋았고, 나중에는 정원만 관람해도 좋겠다 싶었다.
어젯밤 "내일은 로뎅미술관에 가자!" 했을 때에만 해도 둘째가 "오뎅?" 했었는데, '로댕'의 작품을 보고 왔다. 아이들에게 오늘 하루는 어떤 기억일까. 이렇게 마무리 하자니 너무 뻔하다. 아이들에게 미술관은 기념품점 가는 곳이 되어버린 듯. 자꾸만 기념품가게는 언제 나오냐는 이야기를 이후로도 나는 미술관에 갈 때마다 듣는다. 오늘 우리 아이들이 정한 기념품은 로댕 기념 주화다. 2유로 짜리 동전. 지금까지 파리에서 산 기념품 중 가장 저렴한 것 같아 엄마는 그게 뿌듯하다.
2017년 7월 4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