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튈를리 정원, 오랑주리 미술관
파리의 더위를 실감하고 있다. 34도를 찍었던 7월 6일 목요일의 일기를 써볼까.
남편은 이번주부터 대학의 연구소로 출근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고, 지하철은 갈아타는 게 오히려 돌아간다며 운동 삼아 걷겠단다. 출근하고 좀 지나서 큰아이가 깼을 때부터 쏟아지는 폭우! 새벽에도 한 차례씩 비가 내리더니, 우산도 없이 출근한 남편이 걱정됐다. 연락해보니, 도착할 때쯤부터 비가 내리더니 사무실 들어가자 마자 퍼붓더라는! 파리에 와서 일기예보를 수시로 확인하는데, 새벽엔 오전 한때 비였다가 이제 보니 11시까지, 오후 4-5시에도 '뇌우'란다. 지난 주 파리 도착하고 이틀은 날이 좋더니, 그 이후로는 비 오고 흐려서 긴팔 옷을 꺼내입었는데 다시 엊그제부터는 덥다. 또 이렇게 비가 쏟아붓고! 여기 날씨는 알 수가 없구나 싶었다.
오전에 아이들이랑 비 오는데 어딜 가나 고민했다. 오후 해 반짝할때 오랑주리 미술관엘 가야겠다! 지난 주말에 갔던 튈를리 정원을 산책하고, 거기 놀이터에서 좀 놀려야지. 아침 먹고 난 아이들은 레고 테크닉을 만드느라 바쁘다. 실내에서 슬리퍼를 신고 생활하는 게 처음인 아이들은, 소파를 자기들 공간인 듯 레고 천지를 해놓고 만들고 있다. 이 집에 있던 침대시트를 한 방 바닥에 깔아주고, 여기서 만들어라 했다.
점심 때가 되니, 날이 개었다. 점심을 나가서 먹을까 하다가 애들과 번거로울까 싶어 피자를 데워 먹었다. 까르푸 냉동 피자였는데 오전 내 해동했다가, 전자렌지에 데우고, 프라이팬에 데웠더니 정말 맛있었다. (아직 오븐을 못 닦았다.) 배를 채우고, 오늘은 아이 배낭도 채웠다. 물 한 통과 과자.
지하철을 타고 갈아타지 않으려고 피라미드 역에서 내렸다. 튈를리 정원 쪽으로 걸어 안으로 들어가니 우리를 맞이하는 햇빛! 매우 강렬한 햇빛이 우릴 맞았다. 이미 셋 다 선글라스를 썼음에도 너무 뜨거워서 얼굴이 마구 찌푸려졌다. 공원 초입의 카페로 곧바로 피신했다. 아이스크림 하나랑 커피 한 잔. 여기 와서 나는 처음에는 다 불어로 시작한다. (비겁하게 중간에 영어를 말하기도 하지만) 메뉴판을 읽고 "S'il vous plait"하는 걸 잊지 않는다. 영어의 'please'로, 부탁할 때는 꼭 덧붙여줘야 예의있는 사람이다. 파리 도착 첫주에는 '실부쁠레' 하는 걸 잊고 지냈다. 아이들은 어제처럼(베르시 빌라주에서, 천사아이스크림을 줄 서서 먹었는데, 그 많은 맛 중에서 바닐라, 초콜릿, 딸기맛을 고르더라.) 바닐라, 초콜릿, 딸기맛을 맛있게 먹었다. 그러고는 먹자마자 옆으로 달려가서 땅을 파고 논다. 오리도 구경하고, 땅에서 보석을 발견했다며 하나씩 파서 가지고는 슬슬 걸었다. (보석이라니! 한국 땅에서는 볼 수 없는 다른 종류의 돌멩이일 뿐인데, 보석이란다!)
저 멀리 보이는 놀이터! 아이들은 놀이터 안에 들어서자마자, 놀이터 본능이 살아나서 엄청 뛰어다니며 놀았다. 금세 땀 범벅. 안그래도 더운 날. 우리나라와는 다른 놀이기구에 낯설어서 넘어지기도 하고, 다른 애들이 노는 걸 보고 덩달아 놀기도 하는 아이들. 나는 여느 부모들처럼 의자에 앉아 그들을 기다렸다. 맨발로 뛰어다니며 노는 애들도 있고,(처음엔 부모가 옆에 없는 줄 알았다. 부모는 그늘에서 샐러드를 먹으며, 서로에게 집중하며 대화하고 있어서 몰랐다.) 우리 애들 노는 걸 보는 여자아이도 있었다.
한구석에는 수동 펌프 같은 게 있었는데, 운동하던 여자분이 달려가서는 물을 마시고 가는 거다. 놀던 애들도 펌프 위 손잡이를 열~심히 돌려서 물을 틀어서는 마시고 가고.(나중엔 공원이며 놀이터에 갈 때마다 이용하였다. 물맛 괜찮아요.) 나는 가지고 있던 손수건에 물을 적셔오라고 아이들에게 시키고, 아이들 얼굴이며 목, 팔의 땀을 닦아 줬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어떻게 작동시키는지 몰라 물을 틀지 못하자, 어떤 남자아이가 대신 물을 틀어줬다. 큰아이에게 "Merci"하라고 시키자 아이도 대답을. "De rien" 그러더니 큰아이랑 둘이 서로 어색해하며 같은 놀이기구에서 놀더라. 여기 자주 와야겠다. 다른 아이들이랑도 어울리면서 말도 해보게.
점점 얼굴이 달아오르는 아이들을 달래서 물을 먹이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마침 비가 한두방울 떨어져서 우리는 시원하게 오랑주리까지 걸었다. 오늘 오랑주리는 줄이 거의 없었다. 10년 전 10월 말에는 비를 맞으며 한참을 기다렸는데.
티켓을 사면서 나는 또 불어 연습한다고 "Ils sont gratuits?(쟤들은 무료입니까?-사람이 무료일리가! ㅋ)" 이렇게 물으며 내 티켓을 샀다. 일단 아이들과 화장실에 갔다. 미술관 내에서는 마음 놓고 아이들(남자남자ㅜㅜ)끼리 화장실도 보낸다. 엄마는 이쪽, 너희는 이쪽. 주로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는데 여기 화장실 옆엔 신발 닦는 기계가 있어서 아이들이 신기해했다.
-1층부터 관람. 여기 오려고 너희를 놀이터에 데리고 간건데, 우리 아이들은 엄마 마음은 아랑곳 없이 그림엔 관심이 없다. 둘째는 언제 집에 가냐 연신 묻는다. 화가 이름을 따라 읽히고, 엄마가 좋아하는 거다 강조한다. 마티스 알지? 하면서. 모딜리아니의 인물들은 고개가 삐뚜름하다고 했더니, 따라하길래 찰칵! 아이들이랑 미술관은 이런 재미가 있다. 도쿄 특별전도 볼 거리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보채는 아이들과 빠른 스피드로 0층으로 갔다. 아이들에게 놀랄 준비하라고, 엄청 큰 그림이 나타날 거라고 했다. 모네의 수련 그림 앞에서 우리 아이들은 입을 벌렸다! 큰아이는 엄마 사진도 찍어주고, 할머니 보여드린다고 동영상 촬영도 했다. 둘째는 앉혀놨더니 정말 가만히 앉아만 있고.
둘을 앉혀놓고 나는 한 바퀴 천천히 돈다. 너무 예쁘다를 연발하며. 더 오랜 시간을 머물고 싶었으나 나가야하는 운명. 남편이 마침 일찍 퇴근한다고 이쪽으로 오기로 했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또 그동안 기념품 너희 많이 샀으니 이번엔 엄마 거 골라보겠다고 아트샵으로 갔다. 에코백이 하나 필요한데 하며 보고 있는데, 그때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연주차 파리에 온다던 언니 k였다! 통통 튀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여기 내 앞에 있네. 파리서 만나자 했으면서도 막상 약속은 못했는데 너무 신기하게도 딱 마주쳐서 정말 반가웠다. 언니는 며칠 후에 프랑스 남부로 연주하러 간다고 한다. 우리는 무슨 인연일까. 알리앙스 프랑세즈 수업에서 만나서 같이 밥먹고, 언니 불어과외 선생님이 우리 애들 과외 선생님이어서 신기해 했다. 연주하러 도서관 간다는 데가 우리동네 도서관이어서 언니 차를 타고 오고, 얘기하다보니 언니도 서울서 살았구나. 나중에 언니 카톡을 보니 이 언니, 나랑 대학 동문이다. 게다가 학번도 한 학년 차이! 같이 학교 다녔나보다. 이런 인연에 반가워하던 언니를 오랑주리 미술관 아트샵에서 보다니. 반가운 언니랑 사진도 같이 찍고 같은 에코백을 골라들고 헤어져 미술관을 나왔다.
땀흘리고 여기까지 온 남편이랑 튈를리 공원에서 이번에는 아까와는 반대로 공원의 저 쪽 끝, 첫번째 카페에서 시원한 걸 마셨다. 해가 너무 뜨거워서 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늘만 골라 디디며 집으로 오는 길, 한인 마트에 들러 식료품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프랑스식 여름나기 비법이라며, 집을 중개했던 한국분이 보내주신 카톡 - '아침 8시 전에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켜라! 낮에는 문을 꽁꽁 닫아 놓고 햇빛도 가리면 시원할 거다. 저녁 때엔 8시 전엔 문을 열지 말라!' 과연 그럴까 반신반의하며 어제 처음 해봤는데, 과연 그런 것 같다! 저녁 7시 무렵 창문을 여니 바낕에서 후끈한 열기가! 그래도 선풍기 하나 없이 이 여름을 날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이 더위와는 별개로 우리는 며칠 전 솜이불을 샀단 말이다! ㅠㅠ 긴팔 겉옷을 꺼내입던 지난주, 이불없이 여름을 나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고, 모노프리에서 솜이불 커버와 솜이불을 골랐던 것이었다. 계산대에서 아줌마가 이불 비싼데 괜찮냐고 물었던 그 이불! 아니, 비싼데 왜? 뭐? 의아해했더니 모노프리카드가 없는데 사느냐는 거다. 덕분에 모노프리 카드를 만들었다. 필사적으로 불어로 말하도록 입을 트이게 해주신 아주머니, 카드 어떻게 만드냐고 묻고, 빠른 속도로 집 주소며 카드 작성에 필요한 걸 적었었었지. 그런데 이런 더위가 찾아오다니 조금 슬프다. 그래도 푹신푹신한 이불이 좋기는 하다.
파리 날씨는 변덕스럽다. 이불이 금방 꼭 필요할 거다 암시를 걸며, 오늘 일기는 여기서 끝.
2017년 7월 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