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번쩍 베르사이유와 지갑 가벼운 우리

번쩍번쩍 베르사이유와 지갑 가벼운 우리

by 조이아

파리에서 보내는 두번째 주말이다. 이번엔 교외로 나가보자며, 몽생미쉘 부근 호텔도 검색해보고, 벨기에에 가볼까 브뤼셀까지 얼마나 걸리나도 찾아본 금요일 저녁.

밤에 배가 불편하다는 큰아이에게 약손을 해주고, 따뜻한 물을 주고, 결국엔 소화제를 먹이고는 늦게 잠들었다. 그 밤에 둘이서 프랑스판 체력장(?) 티비도 보고, 11시부터 5분간 하는 에펠탑 반짝반짝도 창문 너머로 보게 되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야경을 감상하다가 늦게 잠든 나는, 토요일 아침 눈만 겨우 뜨고는 남편에게 아침상을 부탁했다. "다니면서 보니까 빵집은 7시부터 열더라. 어느 집은 매일 연다고도 써있었어! 윈 바게뜨 실부쁠레~(Une baguette, s'il vous plait-바게트 하나 주세요)" 하면 되잖아!"하면서 빵집 심부름을 시킨 것! (그러고 보니 눈만 겨우 뜬 게 아니라 입은 잘도 열렸다. 저 윈느 바게뜨에 얽힌 남편의 사연도 있는데 지금은 패쓰) "바게트 트하디쇼날(baguette traditional)로 부탁해, 크로아상도!" 덕분에 쫄깃한 바게트와 바삭바삭 크로아상을 아침으로 먹고 늦게 잠든 큰아이를가 깨기를 기다렸다. 애들도 크로아상을 먹이고, 사과를 주고. 배가 편안해진 큰 아이의 볼일 보는 것도 기다려서 집을 떠나니 거의 11시. 베르사이유 궁전에 가보자며 집을 나섰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베르사유로 가니, 이미 인근 주차장엔 차가 가득. 짐검사를 하고 들어갔더니, 와! 줄이 겹겹이! 표 미리 예약하길 잘했다며 득의양양 신나게 가다가 스텝에게 물으니, 표 있는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거라고! 허걱. 줄 끄트머리에 선 게 11:20분부터였을까 12시가 넘어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궁전 내부로 들어갈 때 또한번 짐검사를 하고, 거울의 방을 향해 걷는 길. 오디오 관람 하는 사람들을 헤치며 눈으로 흘깃, 왕족의 초상화와 그들의 물건과, 방들을 지나쳤다. 우리 두 아이들이 어디가 거울의 방이냐며 벌써부터 (줄설 때부터 지쳤겠지) 물었기 때문이다. 기념품점도 하나를 지나고(아이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자기 이따가 저걸 사겠다고 만지작거리고 지나갔다.) 드디어 거울의 방. 사람이 한 가득이다. 이때 만난 중국 단체관광팀이 자꾸 뒤돌아서서 기념사진을 찍으셔서 몇번이나 그들의 웃는 얼굴을 마주친 것 같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번쩍번쩍이는 방을 구경하고는 건물 내부의 레스토랑에 잠깐 들렀다가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 놀라 나왔다.

이제는 정원으로. 소싯적에 배낭여행으로 왔을 때에도 너무 큰 규모의 정원에 놀라 걸어가볼 생각도 못했던 곳이다. 날씨는 너무 좋고, 그래도 우리는 점심도 먹어야하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농가까지만 가보자며 정원으로 향했다.

예약해 온 표는 어른 두 명의 자유관람권이었는데, 정원은 어린이는 5살까지만 무료라며 표를 사라고 했다. 8유로씩 더 내고 어린이표를 샀다. 예전엔 이런 정원 티켓박스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 넓은 데를 관리하려니 돈이 많이 드나보다 짐작했다.


내리쬐는 햇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정원의 레스토랑을 향했다. 물론 첫번째 레스토랑이다. 그 첫번째도 한~~참을 걸어내려가야 한다는 거. 식당 입구의 메뉴판을 들여다보는데, 우리 남편! 여기서 먹자며 식당바깥의 노점으로 나를 부른다. 저 안에서 편하게 먹으면 좋겠구만. 치즈바게트 하나, 감자튀김 치즈버거 세트, 어린이를 위해 마르게리타 피자를 시켰다. 물하고 남편의 라이트콜라, 어제 자연사박물관 공원서 먹었던 칼리포 콜라맛 두 개(우리나라 폴라포다). 그늘 자리에 벤치에 아이들을 미리 앉혔으나, 우리보다 먼저 주문하던 가족이 우리부부가 음식을 받는 사이에 슬그머니 탁자에 음료수를 놓았다. 같이 사이좋게 먹었으면 좋았을 걸, 우리 아이가 탁자에 팔꿈치를 대고 기댔다가 몸을 세우자, 그들의 콜라가 쏟아졌고. 나는 아임쏘리를 연발하며 탁자를 마구 닦았다. 다행히 그들도 괜찮다 하고 수습도 되었지만 거기 앉아있기가 좀 그랬는데, 마침 옆 벤치 아저씨들이 자기들 다 먹었다며 우리 가족에게 자리를 비워주시고, 그 덕분에 우리는 햇빛의 축복을 받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어린이들은 감자튀김을 집어 먹고, 나는 바게트를 뜯어 먹고, 남편은 햄버거를 먹었다. 시켰던 피자는 한 조각이려니 생각했는데 미니 피자 한 판을 주셔서 남편이랑 나는 포식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힘이 난 우리는 다시 햇빛 속으로 용감하게 걸어다녔다!

아이들은 파리에 온 후로 땅에서 보물을 찾듯이 돌멩이들을 주워 담는다. 키가 엄청나게 큰 나무 숲에 앉아서 그늘에서 땀을 식히고, 아이들은 나무껍질을 주워서 논다. 바람이 시원해 다행이었다. 이 주변에는 자전거 대여소도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저런 건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하며 여왕의 별궁을 찾아 갔다. 그런데 이게 왠일. 여기선 금방이라 생각했던 petie trianon도 꽤 멀었다. 그늘만 골라디뎌도 이미 지친 우리들. 겨우 마리 앙투아네트의 공간에 들어섰다. 아, 그런데 너무나 예쁘게 꾸며놓은 것! 크림색의 벽도 예쁘고, 잔잔한 꽃무늬의 왕비 침실도 예뻤다. 본궁(?)의 왕의 침실하고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이런 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이 별궁의 기념품점은 너무나 소녀 취향의 것. 우리 남자 어린이들은 다 여자애들 것만 있다면서도 오르골을 만지작 거렸다. 나도 비누며, 향기나는 포푸리, 거울 등에 마음을 빼앗기고 싶었으나, 얼른 다른 기념품점으로 가자고 노래하는 아이들 덕에 빈손으로 나왔다. 더이상 다른 곳엔 갈 수 없다며 우리는 베르사유를 벗어나자고 했다. 단, 기념품점은 들러야 했다.

너무 지쳐서 즉석에서 짜주는 오렌지주스를 마셔야겠다며 아이들을 끌고 주스 아저씨에게로 향했다. 그사이 남편은 지친 아이들과 미니기차를 타고 가자며, 저 티켓을 문의하러 갔다. 주스는 4유로. 우리 아이들은 저렴한 맛의 주스를 좋아하므로 자기들은 물을 달란다. ㅠ물은 3유로였다. 지갑에 얼마나 남았나 동전을 세어서 7유로를 냈다.



현재 우리 부부는 현금이 거의 없는 상태. 파리 오자마자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고 카드를 만들었으나, 아직 카드가 나오지 않았다. 미리 준비해온 현금은 야금야금 쓰고 있었다. 어느 날은 남편이 통크게 식당에서 현금으로 계산하고 너무 많은 거스름돈을 "Keep the change"하며 호기롭게 웨이터에게 줬던 적도 있다. 그때부터 나는 그일을 두고두고 얘기하며 아까워했는데 막상 이런 날이 올 줄이야. 그동안 왜 우린 현금을 막 써왔던가. 커피 한 잔 마실 때도 현금, 과일 가게에서도 현금, 기념품 점에서도 현금. 남편이 출근길에 사가는 점심 거리도 죄다 현금으로 구입했던 것. 오늘 아침 빵도 물론 현금을 썼다. 현금이 떨어져간다는 생각을 하며 며칠 전부터는 카드만 쓰자 결심했더니, 길거리 아이스크림 같은 건 어쩔 수 없이 현금만 받으셨다!


베르사유 오는 길에도, 통행료를 내야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왔더랬다. 아차! 오늘의 이런 상황을 만든 데에는, 어제 저녁-금요일- 베트남식당이 한 몫 했다. 백종원 님이 극찬했다던 Pho14를 찾아가서(우리 동네다! 야호! 파리에서 가장 많이 간 식당 후보였으나 곧 그 옆 pho13이 더 맛있다고 혀가 결론 내어 나중엔 거기에 자주 갔다.) 쌀국수 두 개, 분짜, 스프링롤, 맥주 두 잔을 시켰는데 앞 거울에 "크레딧 카드는 받지 않습니다"라고 불어로 적혀있는 거다! 내가 당황해서 남편에게 저거 봐, 카드 안 받는 거 같애, 했더니 그럴 리가 있냐며 괜찮다고. 우리 남편은 이렇게 써있는 글도 안믿는구나. 내 해석이 불안한가 하고 나는 다시 불어사전을 검색해서 '신용카드'를 안받는다고 써있다고 알렸다. 우리에겐 50유로(?) 정도만 있었거든. 이런 우리 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쌀국수 하나는 주문이 안들어가서 국수가 하나만 나왔다. (이럴 땐 유창하지 않은 불어가 고맙구나.) 혹시 국수 하나를 마저 더 줄까봐 얌전히 조용히 먹었다. 얼마나 나올까를 연발하며. 그동안 밖에서 외식할 때, 처음엔 100유로 정도 나왔고(중국계 주인 아주머니가 수완이 좋았다), 70유로나 60유로는 거뜬히 넘었는데. 남편이 "여기 쌀국수도 얼마 안 해, 걱정마." 한다. 물론 나는 메뉴판을 봤었었지만, 숫자에 약한 나(에 대해서는 또 계속 얘기할 기회가 많을 것이다.)는 기억할 수 없었다.

옆자리 여성분이 계산할 때 카드를 꺼내는 걸 보고, 남편이 "거 봐." 한다. 우리 남편은 참 느긋한 성격이다. 나는 계속 그 분을 예의주시했다. 영수증 접시에 카드를 놓자, 종업원이 우린 카드 안된다 했고, 그분은 바로 현금으로 계산했다! 우리도 급한 마음에 영수증을 요청해 받고, 총액을 확인했다. 40유로가 채 안되었다! 베트남 음식점이 참 저렴하니 좋구나를 완전 깨달았다. 1유로의 팁도 남길 수 있었으니!

(이 집 음식은 과연 맛있었다! 국물이, 국물이, 끝~~내 줘요! 그러나 우리 애들은 특유의 냄새에 반응하며 죄다 도리도리 입을 다물다가 스프링롤 하나를 겨우 먹고, 집에 가서 밥을 먹겠다 외쳤고, 집에 와서 나는 밥을 새로 해서, 볶음밥을 해 바쳤다! 그걸 맛있게 두 그릇 먹고는 그 밤에 소화가 안 된다던 큰 아이였던 것이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우리 수중에는 지폐가 10유로, 동전 몇 닢 정도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딱 주스를 맛 보려는 순간, 남편이 달려와 미니기차가 일인당 4유로라는 거다. 그러면서 "애들 요금은 저 사람도 모르겠대~ "한다. 운전사에게 직접 확인하랬다면서 ㅠㅠ 애들도 그 값을 받으면 돈이 부족한 우린 미니기차를 탈 수 없다. 아무리 동전을 세어봐도 1유로만 더해질 뿐. ㅠㅠ나는 왜 주스를 사먹었던가. 아이들은 이런 우리의 심정은 아랑곳 없이 갑자기 주스가 맛있다며, 그 순간 입맛이 고급스러워졌다. 나는 몇 방울 맛 보지도 못한 이 주스가 원망스러워진다.

미니기차가 도착하고, 우린 차례가 될 때까지 입이 말랐다. 그깟 미니기차가 뭐라고, 그냥 걸어가면 되지~하기엔 다들 지치고 베르사이유 정원은 너무나 크고 해는 뜨거웠으므로. 게다가 둘째는 옆에서 계속, "나 저 기차 타고 싶어"를 연발하고 있다. 다급하게 "Kids free?" 묻고, "Free!" 대답을 듣고나선 휴우~. 얼른 기차에 올라탔다! 어제까지 갔던 미술관이나 박물관 모두 어린이들은 무료였는데, 베르사유 정원에선 어린이요금을 받고, 이런 것도 받으면 어쩌나. 혹시 반값이라도 우린 탈 수가 없는데...하면서 속으로 얼마나 걱정했던지! 이제 우리에겐 3유로가 남았다!


바람을 가르며 베르사이유 정원가 멀어지고, 너무 커서 덜 아름다운 베르사이유 궁전과도 안녕했다. 기념품점에서 한참을 고르던 아이들, 큰 아이는 베르사이유의 상징인 태양 문양의 황금빛 마그네틱을 골랐고, 작은 아이는 성 카드를 골랐다. 카드로 결제하고 나오는 길. 설마, 주차장은 카드 되겠지? 새로운 고민을 하다가 프랑스의 주차장 결제시스템에 빙그레 웃었다.

근처 스타벅스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카드로 사서 집으로 가는 길 마셨다. 어찌나 입이 바짝바짝 마르던지. 이건 어른들의 기념품 같은 거다.


오자마자 씻고 나서 보니, 오늘의 나들이로 우리 모두 벌~겋게 달아올랐다.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곳만!! 남편의 옆 목, 나의 양 어깨! 아이들은 그나마 선크림 덕분에 갈색으로 잘 익었으나, 나는 아직도 어깨가 따끔거린다.

저녁을 먹으면서 또다른 갈 곳을 상의하고 계획한다. 이렇게 햇빛으로 고생을 하고도 우리가 떠올린 곳은 프랑스 남부! 액상 프로방스를 가볼까, 그 전에 돈은 생기겠지?


파리에서 돈 없이 지내는 체험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갑에 현금이 없으면 불안한데, 낯선 곳에서 이렇게.

월요일인 내일은 남편이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오겠단다.

그동안은 왜 안 갔냐고!


2017년 7월 8일



아아 덧붙일 게 더 생겼다. 빵집에서의 경험. 이건 쓰지 말까? 흑. 아껴두겠어요. 이게 다 외국에서 현금인출하는 일을 두려워해서라는 걸 이제는 안다. 프랑스카드가 아님 안되는 줄 알고, 아님 엄청난 수수료가 나올 줄 알고. 이래서 사람이 경험이 중요하다는 거다. 바보 같은 경험은 이걸로 끝일까? 과연? 바르셀로나의 인출기 앞에서 스페인어로 끙끙댄 경험도 있는데? ㅎㅎㅎ

계속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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