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패스 삼일차

루브르, 개선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by 조이아


전날 케브랑리 한 군데만 쓴 패스가 아까워서 오늘은 가장 비싼 티켓가를 자랑하는 루브르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오늘은 네 명이서. b가 있으니 아이 하나의 손을 잡고 걸어줘서 참 든든하다.


10시 전인데도 사람들로 꽉찬 루브르. 단체관광객이며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 틈에 끼어 내부로 들어갔다. 실은 좀 헤맸다. 뮤지엄패스 입구를 찾다가, 한 한국남자분이 "패스 전용입구 이제 없어졌대요~"라는 제보를, 우리 아이들을 보고 "너희는 어렸을 때 여행다녀서 좋겠다"하면서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루젤 쪽으로 갔는데, 그나마 줄이 짧던 단체관광객 쪽에 줄을 잘못 서는 바람에 퇴짜맞고 다시 피라미드 입구로 가서야 입장했다.

루브르는 생각만으로도 방대함과 큰 규모에 압도되는 박물관이다. 그래서 갈 생각만으로도 지치고, 언젠가는 갈 건데 오늘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주말에 튈를리 놀이공원서 놀 때에도 바깥 피라미드만 구경하고, 또 튈를리 놀이터서 놀 때에도 바깥만 보곤 했다. 뮤지엄패스가 있을 때 루브르에 가지 않으면 밑지는 기분이었으므로 큰맘 먹고 들어간 것이다.

한국어 지도를 들고 여기 오면 다들보는 그녀들을 만나러 부지런히 걸었다. 일단 처음 만난 그녀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천사상. 나는 참 감동을 할 줄 알았는데 다들 입장하느라 지쳐 그런지 심드렁하다. 우리 둘째는 다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작품을 감사하는 틈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허공을 응시하기도 했고, 우리 첫째는 이탈리아 회화관의 보티첼리 그림 앞에서 사탕을 빨았다.

보석 같은 작품들을 그저 스쳐가면서, 모나리자가 있는 전시실에 들어가니 사람들의 밀도가 대단했다. 십년도 전에 여기 왔을 땐 없던 모나리자 전용 가디언과(그것도 양쪽에 두 명이나) 더 가까이 갈 수 없게 만든 바리케이드를 보며 그녀의 인기를 실감했다. 저렇게 철통보안을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끄는 힘이 도대체 뭘까. 또다시 궁금해진다.

모나리자를 봤으니 이제 됐다고 하기에 너무 아쉬운 건 나뿐이었다. "그래도 루브르에 왔는데, 밀로의 비너스 정도는 봐줘야 하지 않겠어?"라고 루브르 세번째 입장인 내가, 루브르 초행자들에게 말하고는 또 막 앞장 서서 걸었다. '실은 아까 여기 올 때 우리가 지나쳤거든.'하면서.

가는 길에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도 봐주고. 이 그림은 단체관광객들의 셀피 혹은 기념사진의 배경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조금 안타까웠다. (내가 왜?)

밀로의 비너스는 예전보다 더 손상된 듯한 느낌을 주었는데, 정말 내 느낌일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아이들에게 이게 엄청나게 오래된 - 이렇게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내가 속상하다- 비너스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재미나게 읽은 큰 아이에게는 좀 와닿았겠지만, 둘째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리스의 조소 작품에서는 헤라클레스를 발견하고는 아이들이 기념 사진을 찍었다. "저 사람이 뭘 두르고 있는 걸까?"라고 묻자, 큰 아이가 헤라클레서가 머리에 쓰고있는 건 바로 사자머리라며 사자가죽이라고 신나게 이야기 한다. '만화책으로도 지식을 쌓을 수 있구나.' 엄마는 오랜만에 어깨가 으쓱했다.

지친 아이들에게 늘 힘이 되어주던 기념품점에서 내가 그들을 제지하자, 우리 큰 아이는 눈물이 핑 돌았다. 연필 한 자루나 엽서 한 장처럼 기념이 되는 걸 사면 좋을텐데 자꾸 인형이나 값비싼 만년필 이런 것을 사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그 전 기념품점에서 모나리자의 앞치마를 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설거지할 때 앞치마가 필요한데 (배가 젖으면 차가우니까) 그동안 보았던 앞치마들은 죄다 무겁고, 뒤에서 끈을 묶는 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 가볍고 끈을 앞에서 묶을 수 있고 게다가 머리 넣을 때의 끈도 조절가능한 아이가 있었다! 그것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핫핑크의 끈과 깔끔해 보이는 흰색의 앞치마가! 그런 이유로 나는 내 앞치마를 샀고. 아이들은 엄마는 샀으면서 우리는 왜 안 되냐며 속상해 했다. "얘들아, 엄마는 그동안 아무 데서도 기념품을 사지 않았단다. 이건 엄마에게 꼭 필요한 거야."라고 부드럽게 말하면 될 것을, 그만 폭언을 하고 말았다. 아름다운 작품이 가득한 전시실에서, 둘을 양 옆에 앉혀놓고, "자꾸 이렇게 뭘 사달라고 때 쓸 거면 이렇게 엄마랑 구경 다니지 말고, 학교나 가"라고!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교육적이지 않은 발언을 하고 만 것이다. 이렇게 학교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심어넣어 주다니. 내가 말해놓고도 금방 후회가 되어서 다시 조곤조곤 타일렀다. 정말 사고 싶으면, 용돈 모아서 다시 와서 사자고. 큰아이가 사고 싶은 물건은 다름 아닌 미라 인형. 이집트관이라도 보고 왔으면 내 마음이 흔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큰 아이는 내 타협안을 받아들였다. 같이 있던 b에게 민망할 정도로 정말이지 한참 만에.

루브르는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박물관임에 틀림 없다. 전시관을 나와서 둘을 화장실 보내놓고, 나랑 b는 이제 나왔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곧 식당 찾다가 또 지치고 말았다. 푸드코트를 보고 저기는 말고, 하다가 조금 걷게 되었는데, 결국엔 그곳으로 갔다. 스페인음식을 주문해서 빠에야와 아이들의 치킨너겟, 또다른 사이드디쉬들과 샹그리아 한 잔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반나절 만에 루브르를 돌고 나온 나는 너무나 아쉬웠다. 파리에서 지내는 어느 날, 다시 루브르에 오리라. 그땐 혼자 와서 정처없이 걸어다니며 감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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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내가 계획한 아이들과 나의 오늘의 일정이었다. b는 혼자 개선문에 오르기로. 나는 생각만으로도 루브르 하나면 지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파리까지 와준 그녀더러 혼자 가라고 하기도 맘이 편칠 않다. 일단 개선문 앞까지 같이 가보고, 마음이 내키면 오르기로 했다. 개선문 앞. 아이들에게 도너츠 하나와 마카롱 하나를 먹이고 나서 바라본 개선문은 너무나 파란 하늘과 함께 우뚝 서 있다. 다른 게 아니라 파란 하늘이 마음을 흔든다. 아이들에게 계단 오르기 자신 있냐 물으니 할 수 있단다. 난 자신 없지만 그래, 같이 오르기로 했다.

여기서는 뮤지엄패스가 제 할 일을 했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오래지 않아 들어갈 수 있었던 것. 큰 아이는 누나랑 앞서 가고, 나는 또 둘째를 부추기며 계단을 올랐다. 지난번 노트르담 종탑 때처럼, 작은 아이의 앙증맞은 엉덩이를 응원하면서. 여기는 모든 계단이 원형 계단이다. 아이가 혹시나 헛디딜까 손을 꼭 잡고, 혹은 등 뒤에 꼭 붙어서 계단을 올랐다. 중간에 기념품도 팔고, 용사들을 위한 월계수 잎이 전시되어있는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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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꼭대기! 시원한 바람과 쨍한 하늘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에투알거리도 보고 에펠탑도 보고. 저어멀리 라데팡스까지 시원하게 뚫린 길을 내려다봤다. 눈이 부셔 잔뜩 찌푸려가면서도 여유롭게 파리 시내를 감상할 수 있었다.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집으로 가서 아이들을 맡겨두고. b와 단둘이 서둘러 베르시로 향했다. 문닫기 전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가보려고. b는 고등학교, 대학교 때 영상, 영화 공부를 한 학생이자 방송국에서 촬영일을 했던 아이. 함께 영화의 역사를 살피고, b의 이야기를 듣고 호젓한 내부와 작은 규모의 전시가 마음에 들었다. 5층에서 하는 아이들 눈높이의 원화 전시도 좋았고. 찰리 채플린인가 했던 아래 아저씨는 무슈 윌로(Monsieur Hulot - 겨울에 있었던 책박람회에서 아저씨 그림책을 보고 귀여워서 구입했는데, 또 나중에 아이들 학교에서 영화관람 동반해 달라고 해서 따라갔더니 이 아저씨가 주인공인 흑백영화를 본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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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해가 내리쬐는 베르시 공원을 가로질러 베르시 빌라주 Partie de Campagne에서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저녁을 먹었다. 익히지 않은 고기인 타르타르와 주황색 스프리츠 아페롤을 빨대로 마시며. 마침 행사를 한다며 이 음료를 주문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어서, 주황색 모자와 주황색 선글라스를 받았다. 주황색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며 흥겨운 주황색 목요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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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동반이 아닌 둘만의 시간, 우리는 그녀의 중학생 때 이야기, 그러니까 나의 빛나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추억에 젖을 수 있었다. 그녀의 호주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도 듣고, 다음주에는 뭐할까, 어디를 여행할까 하는 이야기로 주황색을 무르익혔다. 그리고 곧 그 주황색 모자는 우리 아이들이 프랑스 남부를 여행할 때 훌륭한 소품이 되었다.


2017년 7월 10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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