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살겠습니다.
2주 이상 우리집에 머물며 같이 미술관엘 가고, 남부를 여행하고, 벨기에를 가던 사랑하는 b가 떠난 저녁, 허한 마음에 저희 네 식구는 이발을 했더랬어요. 남편이 군대에서 이발을 했다고 해서, 프랑스 올때 이발도구를 갖고 왔거든요.(파리의 컷트 가격은 샵에 따라 다르지만 40~60유로 정도 하는 것 같아요. 남성은 조금더 저렴하고요. 그래도 35유로 이상 쯤.) 파리 온지 삼주만에 아들 둘 머리 자르는 걸 보고 믿음이 갔어요.
저는 원래 짧은 머리를 좋아해서 작년엔 짧은 단발에 항상 볼륨매직, 염색을 하고 지냈었더랬지요. 파리살이하면 머리는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겨울부터 길러서 이제막 어깨에 달락말락 했어요. 여자 머리야 그대로 길러도 되잖아요. 그런데 기르는 중에도 열폄, 염색을 하다보니 끝이 상했고. 여기와서는 물 때문인지 해 때문인지 머리털만 유럽화되어서 거의 매일을 땋거나(짧은 머리를^^;) 틀어 묶고 다녔어요.
지난 주말 밤에 딸같은 작은아이가 제 머리를 빗어주고 싶다고 빗어주는데, 상한 부분이 빗기지를 않는 거예요. 너무 속상하고~ 여기와서 파리지엔느를 보니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바꿔보자는 생각이 갑자기 생겼어요!! 상한 부분이라도 잘라야겠다! 이참에 컷트머리는 어떨까 하고요.
그 마음이 스물스물 커가다가, 급기야는 아이들 머리 자를 때 '나도 같이 잘라봐?'가 된거였어요. 엊저녁, 젋은 그녀의 떠난 자리가 너무 커서 정말 마음이 허전하고 가라앉았거든요~ 라고 변명해봅니다.
헝헝헝.. 중간 생략을 해야겠어요. 너무 길어집니다.(가 아니라 정말, 남편에게 머리를 맡겼어요. 그래선 안되는 거였어요.)
어쨌거나 그렇게 컷트를 하고 이건 그대로 있음 안되겠다, 꼭 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갖고 오늘 아침, 동네 미용실에 갔습니다. 밖에 써있는 가격표를 견주어 보다가 너무 저렴한 곳은 안된다며 고급스러워보이는 곳을 택하고 들어갔습니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다듬지 않을 수 없었기에 들어갔지요. 짧은 불어로 "머리 자르고 싶어요~ ", "네, 지금요. ", 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가능한가요? "했더니 너무도 금방 "그럼요(D'accord)."하는 거예요. 미리 제 길이로 가능한, 사진을 캡쳐해갔어요. 단정하고 여성스러운 컷트스타일인 일명 황정음머리요.
제가 먼저 "어제 집에서 잘랐어요."하고 고백했더니 혼자 잘랐냐고 묻더라고요. ㅠㅠ , "남편이요" 비웃음을 받게될까 떨렸는데 별 반응은 없었어요. 샴푸를 하고, 머리를 자르기 위해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대로 잘 잘라주겠지? 과연 그럴까? 머리칼이 동양인과 서양인이 달라서 잘 못한다고 하던데 괜찮을까 등등 불안했는데, 사진을 다시 보여달라고 해서 넘 기쁜 마음으로 보여드렸어요. 그다음 그다음 사진까지요.(같은 스타일의 다른 사람들 사진을요) 근데 흘끗 보시고는 막 자르셨어요. 허허허.... 이렇게 짧은 걸 원한 게 아니었는데.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언제 또 이런 머리를 해보겠나, 진짜 파리지엔느가 될지도 모른다 속으로 얼마나 되뇌였는지 모릅니다. 나는 지금 파리에서 머리를 자르고 있는 거야. 파리의 미용실에서 언제 머리를 하겠니 계속 주문을 외웠다니까요.
다 한 것 같았는데, 이 언니가 숱을 치기 시작합니다. ㅠㅠ 정말 후회돼요. 그것만은 말렸어야했는데....... 말해 말어 주저하다보니 어느새 저는 남자아이가 되었습니다. 좋게 말해서 남자'아이'지. 삼십대후반 아줌마가 숱친 숏컷트. 그나마 가수 이소라보다는 길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로하며 나오는데, 우리 둘째가 "엄마, 남자 같애~" 합니다.
어제 저녁 이 아이, 저의 자른 머리를 ㅡ한참 들여다보더니 "오래 보니까 괜찮은 것 같아" 자기 전에 또 저를 한참 보더니, 제가 속상해하니까, "머리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했던 아이예요.
그래도 큰아이는 미용실을 나서자마자, "엄마, 우리 선생님 머리하고 똑같다" 합니다. 아, 저 선생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50대의 나이에 엄청나게 세련된 패션을 자랑하시는, 보브 컷트를 하고 다니시는 분이세요. 어찌나 기쁘던지! 하지만 우리 큰아이는 언제나 엄마 마음을 헤아리는 다정한 스타일이랍니다. 네, 위로의 말이었던 것이지요.
집에 와서 자꾸 거울을 들여다보니 기분이 좀처럼 나지를 않아서, 아이라인을 그리고, 큰 링귀걸이도 해주고 외출 준비를 했습니다. 애들을 데리고 노트르담 근처 공원에 갔어요. 광장에서 어떤 중국아주머니가 뭐라고 합니다. "아니오(Non)~." 뭐라는 거야 하고 지나갔어요. 공원에 앉아서 애들 노는 걸 보는데, 또 어떤 중국아주머니가 "니하오~"하는 거예요. 뭐지, 내가 중국스타일인가~ㅠㅠ 퇴근 후 합류한 남편과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기분 전환(은 솔직히 별로 안 되었지만)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엊저녁에도 프랑스맘 카페에서 '미용실'하고 검색했더랬거든요. 다들 말린다는 댓글을 보며 정말일까 의심했는데. ㅠㅠ 그래도 가볼만 ....하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네요.
이 머리가 괜찮아지려면, 좀 걸릴 것 같아요. 한 한두 달? 일단 바캉스부터 떠나고 봐야겠습니다. 머리야 뭐 금세 자라는데요. 그런데 훌훌 털고 잊어버리기엔 세상에 거울이 너무 많습니다. 모자 가게에 가볼까봐요.
2017년 8월 2일.
흐음. 그 후로 한동안 여기저기에서 중국인들의 다정한 미소와 인사를 받았습니다. 베르시 공원 놀이터에서 애들이 놀고있는 걸 보고 서 있는데 어떤 부부가 저에게 자리를 내어주려 벤치에 붙어 앉으시면서 중국어로 옆에 앉으라는 듯 말씀도 해주셨고요. 저 위에 니하오 분, 선교하시는 거였더라고요. 그런분들 꽤 마주쳤었지요. 시간이 조금 흘러 한국분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저를 엄청 센 언니로 보셨더라구요. (물론 이 얘긴 나중에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
그리고 정말 삼주간의 바캉스가 끝날 무렵 저도 새로운 컷트머리에 적응하고, 기분도 조금 나아졌습니다. 그렇게 두달을 중성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며 다니다가 한인미용실을 찾아갔더니 원장님께서 먼저 말씀하셨어요. "뒷머리까지 남자처럼 잘라놨네." 그리고는 제가 먼저 말하지 않는데도, 딱 제가 원하는 스타일을 말씀하시며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해야겠다고 딱 그러시는 거에요.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그 미용실은 파리를 떠날 때까지 제가 염색과 컷트를 하며 두 달에 한번씩 찾아가 위안을 받고 왔던 곳이지요.
이상 파리에서 미용실 가보고, 컷트머리로 다닌 이야기였습니다. 덕분에 한국에 돌아와서, "오~ 역시 파리지엔느!"하는 시선도 받았지만, "왜 잘랐어?"도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제 머리는 아직까지 컷트머리 그대로입니다. 반곱슬이어서 적당한 구불거림과 함께 한번씩 모자도 쓰고 헤어밴드도 하면서 이게 내 스타일, 나만의 시그니처라고 우기며 거리를 활보합니다.
2018년 11월 수정 및 덧붙임.
나의 시그니처를 밀고 나가기가 생각보다 쉽지는 않습니다. 한국에 와서 예쁜 한국인 머리스타일을 바로 장착할 수가 없었는데요. 다들 다른 사람의 머리 모양에 생각보다 관심이 많데요. 사람들을 만나면, 꼭 저의 머리모양에 대해 한마디씩 들었어요. "너니까 어울린다"는 칭찬도 듣지만, "이제 기를 거지?"라는 얘기도 만날 때마다 하는 분도 계시고요. 오자마자 미용실 선택을 잘못해서 마음에도 안 들고, 머리칼마저 상해서 속상한 적이 있었어요. 만나자마자 저대신 그 미용실을 맹비난해주는 분이 있는가 하면, '나라면 집 밖에도 못 나가'라는 말씀으로 저를 주눅들게 한 분도 계셨습니다.
그해 겨울, 그러니까 파리에서, 한국 알리앙스프랑세즈에서 선생님이었던 C를 만났어요. 차 한잔을 마시며 파리에서 살기가 어떠한가 이야기를 나눴지요. 저의 첫 원어민 선생님답게 제 불어 말하기를 기다려주어, 다행히 어색한 침묵 없이 대화를 할 수 있었어요. 제가 여기서 머리를 잘랐다 말하고 어떤 머리모양에 더 나으냐, 물었어요. 그런 이야기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C, 당황하는 표정으로 지금도 좋고 전에 머리도 예뻤다는 거예요. 되물을 수 없었지만, '왜 이런 걸 물어보지?'하는 반응이었어요. 파리에서는 외모나 옷차림, 머리모양에 대한 피드백을 거의 못들었던 것 같아요. 파리에서 오래 살아온 친구도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아이 친구 엄마와 얘기했을 때에도 언젠가 한국인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얘기하다가, 그제서야 저의 짧은 머리가 어울린다는 얘길 들었지, 겉모습에 대한 평가는 잘 하지 않는 것 같아요.
파리에서 음악 공부하는 친구가 방학을 맞아 한국에 왔었어요. 이미 와 있던 친구와 갓 돌아온 저까지 같은 어학원을 다니던 셋이 서울에서 뭉쳤습니다. 이야기는 금세 한국에서 불쾌했던 경험에 대한 것으로 흘렀어요. 우리가 한 목소리로 말한 것은, 사람들이 너무 훅 내 인생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불평이었어요. 남의 인생을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고, 조언을 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쑥 자기 의견을 내놓는다는 거지요. 듣는 우리 또한 그 자리에서는 뭐라 대꾸도 못 하지만, 타인의 공격에 놀라다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내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는 경험을 한국에 돌아와서 한 거지요.
그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낯선 곳에 다녀와서 그런가, '정'이라는 이름으로 주고받는 대화들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게 이제야 인식이 되는 거예요. 외모에 대한 발언은 칭찬이라도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말 또한 이제는 너무 잘 알 것 같고.
내 삶에 대한(그것이 삶의 방식에 대한 것이든 나의 취향이든, 무엇이든) 애정어린 충고는, 내가 원하는 상대에게만 듣고 싶어졌어요. 머리모양에서 출발한 거지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좀더 따스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해나가야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2019년 1월 덧붙였어요. 제목을 바꾸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