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내친구

Ma solitude

by 조이아

나는 뭐하는 사람이지? 스스로에게 되묻곤 하는 질문이다. 파리에서 집과 어학원을 오가면서도, 일없이 쇼핑몰을 거닐면서도, 나는 뭐하는 사람인데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제 다시 우리집에 와서도, 도서관엘 다니고, 불어를 공부하는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불안함과 함께 다시금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일을 하지 않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아침마다 출근하던 곳으로 향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때 나는 좀 무기력해지는 편이다. 그래서 무엇이라도 하려고 애쓴다. 조조영화라도 보러 가고, 도서관에라도 가고.


나는 나의 정체를 타인을 통해 알아가는 것 같다. 특히 단 둘이 대화하고 난 후, 그 사람의 반응으로부터. "아, 내가 왜 이런 얘기까지 하지?", "목 아파. 너무 내 얘기만 했네." 상대로부터 이야기를 뽑아내는 능력이 내게 있는 걸까. 잘 맞장구 쳐주고, 평가하지 않으면서 적절하게 공감해주는 능력.(에 대해 배웠던 적은 있다. 아이들과 학생들과의 관계를 위해 배웠는데 우리 애들에게는 잘 안되어서 그렇지, 그러나 성인에게는 쫌 통하나보다.) 가끔은 힘들기도 하다. 정말 작정하고 우리집에 찾아와서 우리가족의 일과는 아랑곳 않고 하고싶은 이야기를 다 쏟아내는 그녀도 있었으니 말이다.

가끔은 이럴 때도 있다. 본인 이야기만 너무 늘어놓았다는 생각에, 마음은 담기지 않은 채 "이제 너도 좀 얘기해 봐." 하고 갑작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요구하는 것. 참 난감하다. 이것은 물론 내가 고민 없이 사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가 들려준 무게만큼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상대방과 나와의 거리를 가늠해보며 이런 얘기를 해도 될까하는 조심스러움으로 망설이기도 하지만, 뻔히 보인다.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나 늘어놓은 후에,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느라 혹은 자기 마음을 추스리느라 그다음에 내가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더라도 그리 공감하지 못하리라는 게.

나와 함께한 시간 덕분에 마음이 후련하고, 이해받은 느낌이라 좋다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들 덕분에 나의 자존감은 약간 올라가고, 또한 나는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좀더 선명하게 갖게 된다, 그날 저녁에는. 그러고는 곧 나의 양면성을 들여다 본다. '이 사람에게 나에 대한 요구는 못했어' 하는 서운함과 타인의 아픔을 딛고 위로받는 느낌들. 그리고 그자리에서는 표현하지 못했던 그 사람에 대한 나만의 평가가 내 마음에는 남아있다.

만나면 나의 이야기와 너의 이야기가 적절하게 이루어지는 친구가 있다. 관심 갖는 주제 또한 비슷해서 우리는 심리 이야기, 아이를 대하는 시선이나 태도에 대한 이야기, 일 이야기와 미래의 우리 이야기를 나눈다. 같은 책을 읽기도 하고, 같은 팟캐스트를 듣고 소감도 나누고 정말 가끔씩은 손편지도 쓰곤 하는. 만나고 가는 길이 설레고 돌아오는 길은 마음 뿌듯한. 허나 그런 친구는 너무 멀리 있고 드물다.


해외에서 1년을 지내면서 나는 고독을 친구로 데려왔다. 홀로 있는 시간이 얼마나 분주한지 모른다. 책도 읽고 팟캐스트도 듣고, 산책도 하고, 예약도서를 빌리고, 도서관에 앉아 공부도 하고, 이렇게 일기도 쓰고. 한번씩은 사람이 그리워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도 머뭇거리는 건, 내 평화의 시간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인데 그게 내맘대로 안 된다. 내 주위에는 아직도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또 기꺼이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겠지만 이제는 이렇게 내 공간을 가지고 나를 돌아보려 한다. 언제까지고 친절한 사람의 가면을 쓰고 지낼 순 없다. 인생의 후반을 준비하면서 나는 사람을 가려만나고 싶어진다. 홀로 있는 시간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고독과 함께. "Non~ Je ne suis pas jamais seul avec Ma solitude~"하며 노래하는 조르주 무스타키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곧 오는 마흔 이후의 삶을 위하여.


2018년 여름 내 묵혀두었다가 가을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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