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를 알아가는 중입니다.
아침에 친구 h가 서밤님 블로그의 포스트를 링크해줬다. 마음을 돌아볼 수 있게 도와주는 제품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테라피북, 빈칸을 채우며 자신을 돌아보는 워크북 같은 것들. 테라피북이라니! 안그래도 다이어리 살 생각이었는데 후보에 넣어봐야겠다고 답장을 보내다가, 나도 모르게 친구에게 나의 요즘을 마구 털어놓았다.
나는 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인데, 내가 마음을 잘 안 열기 때문일 거다. 속을 꽁꽁 숨겨두고는 타인의 얘기를 듣고 와서, '와, 쟤도 저런 마음이 있네' 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 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h에게는 와다다다 이야길 쏟아냈다. 업무 시간이었는데도. 평소의 나라면 다른 사람 입장을 고려하느라 일과시간에는 가벼운 안부만 물었을 거다. 하지만 뭐 다른 사람 아니고 h니까. 내 마음 속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친구인데다가, 마음에 대한 제품을 소개해주고는 갖고 싶다며 이야기를 건넨 친구니까.
'요새 이것저것 바쁘게 지내고는 있는데 재미가 없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코맹맹이 소리가 난 게 한 두 달은 된 것 같다. 성경공부도 죽 하고 있고, 새로 만난 교회 가족들하고도 잘 지낸다. 불어 공부도 일주일에 두어 번 도서관 다니며 하고, 동사 암기 스터디도 하고 그러는데 기운도 없고 그렇다.'는 내용.
내 옹졸한 마음도 내뱉었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우리과 j가 우리 둘에게 선배언니 소식을 전해 준 일이 있었다. 언니들의 근황과 함께 같은 학번 m이 세바시 강연을 나왔더라고 했다. 창의융합 분야에서 최고의 교사상을 받았다는 거다. 정말 대단하다고 얘기를 주고 받다가, 방학하면 꼭 만나자며 마무리 지었더랬다. 후유증이 있었다. 'm이 세바시 강연에 나올 만큼 치열하게 살고 인정받는 동안 나는 무얼 했을까'가 자꾸 머릿 속을 맴도는 거였다. 몇 해 전에는 <과학동아>인가 <어린이 과학동아>를 보다가 연재글에서 후배 이름을 보고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다. 과내 학회에서 같이 활동하던 아이였는데 'k는 계속 열심히 살고 있구나, 나는 뭘 했나.'하는 생각이 며칠 나를 괴롭힌 건 당연하다. 물론 나는 과학에서 손을 떼어서(붙인 적도 없기는 하다) 그 분야에서 뭔가를 이뤄낼 수는 없다. 하지만 나도 뭔가 이름을 날리고 싶었던 거다. 해놓은 것은 쥐뿔도 없이.
저 아래에서 웅크리고 있던 나의 인정욕이 문득 고개를 들고 서늘하게 나를 본다. 이 욕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상담을 받았을 때다. 집단 상담을 10회씩 두 차례 받은 적이 있다. 같은 선생님으로부터. 두번째엔 개인 상담도 해주셨는데 그 덕분에 나를 더 알게 되고, 투정만 부리던 마음이 조금은 열리게 된 것 같다. 어쨌든 그때 알았다. 내가 왜 자꾸 튀는 옷을 사는지. 남들의 비난에 유독 힘들어하는지.
'm이 세바시에 나왔다는 게 부럽더라. 난 뭘 했나 싶고, 지금도 나는 뭐하나 싶어.' 내 친구, 그런 마음 드는 게 당연하다며 동감해준다. 또 앞서 나의 이런저런 마음상태에 대해서도 요즘에 그런 기분이 들었냐며, 그 상태 뭔지 안다고 공감해 주고. 이 몇 마디 안 되는 톡을 보면서 나는 너무도 고맙고 좋은 거다. 눈이 뜨거워지면서. 글은 쓰고 있느냐, 둘다 자기만 보는 글이니 서로의 글을 다음엔 바꿔 읽자, "나의 빈칸책"도 써서 우리끼리 교환하자. 세상 누구와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싶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이거구나. 다른 사람들이 나와 대화하고 얻어가는 것! 열심히 고개 끄덕여 주고, 평가 없이 공감하려고 하는 대화가 이런 힘이 있구나. 어떤 일이든, 그러니까 그게 논리적이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어도 누군가의 공감을 받으면 큰 위안이 된다는 것. 뭐냐. 내가 지금 파리에 고립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도 만나는 사람들이 있고 남편하고도 대화라는 걸 하기는 하는데. 그렇다면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나는 왜 그동안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쉽사리 털어놓지 못했는가. 고민이라 할 만한 것은 내 안에서 정리하고 합리화하고 나서야 얘길 건네는 경향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생긴 걸까. 내 안에서 자기 얘길 건네지 못했던 내면의 아이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한편으로는 내 안에 있는 자만심에 대해 생각한다. 다른 이들이 건네는 조언을 흘려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판단하던 나에 대해. 다른 사람은 내게 도움을 청해도, 나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 마음을 알아차린 것도 얼마 안되었다. '나는 참 이해를 잘 해, 사람들을 잘 헤아리지'하던 내가 실은 그들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으로 임해 왔다는 것도 인정한다. 어쩌면 그 반대였을지도 모른다. 나에 대한 평가를 받기 싫었던 거지. 그래서 나는 내 얘기를 못하고 듣기만 했던 거고. 이제 좀 이해가 된다.
친구 h에게 m이 부럽더라는 얘기를 하다가 내가 오만한 것 같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친구는 어쩌면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무기력하고 부럽다는 이야기 끝에 오만함이 왜 나오는지. 나 또한 왜 이렇게 뜬금없이 자만과 겸손이라는 단어가 내 안에서 튀어 나왔을까 의아했다. 그 마음을 헤아리는데 이만큼의 글이 필요했다. 나도 모르던 내 마음들. 남들에게는 그렇게 공감하며 들어주면서 정작 나의 마음들에겐 소홀했다는 걸 이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내 안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있는가. 나도 모르는 내가 불쑥불쑥 고개를 들고 나를 또렷하게 바라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 같다. 남들한테는 보이기 싫은 마음들을 내 것이라고 보듬고 인정해주기. 나를 사랑하며 사는 일은 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