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뻔한 말을 깨부수는 사람

12월 34일에 사인을 해주신 김동식 작가 탐구

by 조이아

실시간 쌍방향 원격수업으로 동아리 시간을 진행했다. 올해 내가 만든 반은 '작가탐구반'이다. 김동식 작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는 날 부랴부랴 학습지를 준비해 나눠주었다. 학습지에는 소설 한 편(첫 번째 소설집 <<회색인간>>에 나오는 <운석의 주인>은 인터넷 게시판 버전으로 구할 수 있었다. 마지막엔 '복날은간다'라는 작가님 닉네임까지 적혀 있었다.)과 활동 기록을 할 빈칸 종이를 묶어 일일이 전달했다.


먼저 2018년에 'TV책방 북소리'라는 TBS에 출연한 앞부분을 함께 보았다. 김동식 작가를 발견해 책을 내보자고 제안한 기획자이자 편집자 김민섭 작가님과 함께 출연한 거였는데, 작가의 초창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란히 앉은 두 작가님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다른지, 긴장을 장착하신 분과 여유를 장착하신 분. 프로그램 초반에 작가님의 작가 탄생기가 간단하게 나오지만, 유튜브로 검색해 '국제신문'에서 '청년과, 나누다' 인터뷰를 한 동영상을 찾아 함께 시청했다. 3개월 전의 것이라 김동식 작가의 좀 더 편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 작가가 되었는지부터 나와서 학생들은 흥미롭게 보았(을 것 이)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본인의 시급이 너무 적은 것을 알고 공장에 취직해 아현동 주물공장에서 십년 간 일을 했다는 김동식 작가. 잠들기 전 읽던 '오늘의 유머' 게시판의 글을 보다가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첫 소설을 반으로 잘라 앞부분을 올려놓고, '재미있으면 댓글을 써주세요. 다음 편을 올리겠습니다'라 추가했다. 카페 회원들의 반응을 기다리기 위해 새로고침만 몇 번을 하다가, '재미있어요'란 반응에 소설 뒷부분을 올린 것이 첫 경험이었고, 그 후로는 칭찬 댓글에 힘입어 소설을 무슨 공장에서 생산한 것처럼 쏟아냈다는 놀라운 이야기.

공장에서 단순 작업을 하는 내내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굴려서 소설을 창작하셨다는 그는 꾸준히 300여 편의 소설을 올렸고 그때마다 독자들의 반응은 엄청났다고 한다. 작가 특유의 속도감 있는 전개와 반전이 재미있어서! 하지만 그런 반응만 있던 것은 아니다. "작가님, 왜 자꾸 그렇게 쓰세요? 그건 이렇게 써야 합니다." 하는 맞춤법에 대한 지적과, "작가님, 느낌표 열 개 쓰는 건 좀 너무 해요, 두 번만 하세요." 하는 조언을 김동식 작가는 늘 겸손하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수용했다고 한다.

김민섭 작가가 김동식 작가를 발굴하게 된 것도 유머 게시판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소설이 눈에 띄었고, 누가 썼나 보았더니 '복날은간다' 님의 것이었고, 또 재미난 소설이 있어서 누가 썼나 보면 '복날은간다'였다고. 2-3일에 한 번 꼴로 소설이 올라오자 도대체 이 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싶어서 연락을 하고, 책을 출판하게 되었단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작가에 대한 인상을 주고받다가 그의 소설 <회색인간>을 함께 읽었다. 실시간 원격수업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미리보기로 소설을 맛보기 참 좋다. 글씨를 키워서 우리는 돌아가며 낭독을 했다. 인간에게 예술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볼 수도 있고, 그냥- 이렇게 짧은 소설도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는 미리 나눠준 <운석의 주인>을 또 돌아가며 읽었다. 그러고는 나는 깨달았다! 우리 작가탐구반에 있는 네다섯 명의 남학생들은 학습지를 집에 안 가져갔다는 것을. 흑흑. 그렇지만 준비성 있는 학생들과 나의 낭독으로 열여섯 명 모두가 소설을 끝까지 감상할 수 있었고,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나서 나는 학생들의 표정을 살폈다. 줌으로 하는 수업이라 입모양까지 볼 수 있어서 어찌나 좋은지, 그들은 벌써 눈부터 웃고 있었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했다. 김동식 표 반전 덕분이다.

최근 나온 딜레마를 나온 소설 한 편을 더 읽어보는 게 원래 내 목표였지만 줌 낭독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남은 몇 분 동안 빈 학습지에 김동식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난 소감을 적어보자고 했다. 소감을 나누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학교에 오거든, 학습지를 제출하자고 했다. 그런데 난 지금 그 소감을 알 수가 없다. 그다음 동아리 시간은 오프라인에서 진행되었지만, 2주 전에 집에서 활동한 학습지를 가져온 사람은 없었거든. 그렇게 가져오라고 했건만!(동아리 시간에 활동한 학습지는 학생마다 개별 클리어 파일을 마련해서 모아 두고 있다. 활동 소감도 들여다보고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기도 한다. 일 년 치를 돌려주리라 말해두었다.)

교과서 '설득의 힘' 단원에는 논증 방법을 배우기 위한 글로, 과학자의 글이 실려 있다. 남들이 다 믿고 있는 상식에 의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 다양한 과학자의 사례가 근거로 나온다. 기존의 이론이나 학설에 의심을 품고 가설을 세워 실험으로 입증하는 파스퇴르, 갈릴레이, 코페르니쿠스의 사례에 나는 김동식 작가를 넣고 싶다. 과학을 안 좋아하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만 우리 중학생들에게도 저 과학자들은 너무 멀고 큰 사람들이다. 김동식 작가 역시 대단한 능력자다. 소년원 아이들과의 국어수업 기록이 담긴 서현숙 작가의 <<소년을 읽다>> 를 읽으면, 책과 친하지 않던 아이들이 <<회색인간>>에 코를 박고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들이 책을 너무 재밌게 읽은 나머지 김동식 작가한테 물어볼 게 많다며 만나고 싶다고 혼잣말처럼 했던 말로 시작된 ‘작가와의 만남’! 만남이 성사되자 김동식 작가를 만나기 전부터 '동식이 형'이라 부르며 신나게 독서행사를 준비했다던 소년원 아이들의 들썩들썩한 마음을 나도 다 알 것 같다. 그만큼 학생들에게 김동식 작가는 너무 멀고 큰 사람이 아닌, 내 주변의 멋진 형아인 것이다. 우리 학생들에게도 그런 형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들어가는 반마다 상식이나 뻔한 믿음에 의심을 해봐야 한다는 또다른 근거로 이 멋진 작가를 열심히 소개했다!


어른들이 뻔히 하는 말, '책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 글을 잘 쓰려면 맞춤법도 잘 알아야 한다' 등의 말들을 깨부수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또 그런 사람이 있다고 내가 학생들에게 전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김동식 작가는 그전까지 읽은 책이 열 권도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이 다 맞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 학생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구나 같은 과정으로, 선행학습으로, 같은 과목을, 같은 내용을 달달 외는 게 삶의 교본이 아니란 것을- 그들이 알고 삶으로 살아냈으면 좋겠다.


친구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에 김동식 작가가 초대되어 학생들에게 강연을 했었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건네는 그의 마음이 참 곱다. 학생들은 김동식 작가의 존재만으로 살아갈 힘을 낼 것이다. 친구가 나를 위해 받아준 사인본은 아래와 같다. 12월 34일이라는 어느 미지의 날에 내게 건네진 선물 한 권으로, 나는 학생들에게 작가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가 하나 더 있어서 기쁘다!


@ <<회색인간>>, 김동식, 요다

@<<소년을 읽다>>, 서현숙,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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